[칼럼] 소소함에 담긴 즐거움- 춘천 의암호
2018-02-28 15:22:20 | 이우형 작가

(사진설명= 춘천 의암호의 아침풍경. 안개가 차분하게 내려앉은 겨울호수는 쉼터다. 호수를 가르던 카누도, 하늘을 날던 오리에게도 선착장은 몸을 기댈 수 있는 안식처다.)

 

소소함에 담긴 즐거움- 춘천 의암호

사진은 여행과 떼놓을 수 없는 단짝이다. 어디를 가든 ‘인증샷’은 필수고, 여행의 목적이 마치 거기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이 이처럼 보편화한 것은 디지털카메라, 더 나아가 스마트폰에 디지털카메라가 장착된 덕분이다. 물론 과거에도 소형 필름카메라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누구나 쉽게 들고 다니지는 않았다. 지금의 인증샷 풍년은 한마디로 ‘사진이 참 쉬워진’ 탓이다.
 

사진이 쉬워졌다고 모든 사진이 쉬워진 것은 아니다. 여행사진이 나의 여행기록이고, 명소에 내 얼굴이 들어간 사진이어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여행도 덩달아 쉬워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가 멋지다고 느끼는 여행사진은 아마도, 영원히 촬영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여행사의 여행프로그램 대부분은 짧은 시간에 많은 곳(또는 것)을 보도록 설계되어 있다. 당연히 디테일은 무시된다. 여행이 인증샷으로만 기억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때로는 얼굴이 나오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운 여행사진이 있다. 나에게는 이 사진이 그렇다.
 

특별한 이유 없이 쉬고 싶었던 날이었다. 그냥 쉬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지금의 자리에서 조금 옮겨 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쉬고 싶었던 그런 날이었다. 긴 여정이 싫어 비교적 짧은 춘천을 택했고, 인터넷을 뒤져 호텔을 예약했다. 
 

저녁 늦게 도착한 호텔은 깔끔했고 생각대로 이유 없이 쉬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주변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조금 늦게 일어나 호텔 뒤로 난 산책길을 따라 올라갔다. 그곳에서 아담한 전시장과 커피숍, 그리고 기념품을 파는 작은 상점이 있는 건물과 만났다. 커피숍 앞으로는 잔잔한 호수가 보였다. 흐리고 안개 낀 아침의 풍경은 말 그대로 ‘쉼’을 그려내고 있었다. 혹시 몰라 들고 나섰던 소형카메라의 전원이 깜빡거려,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찰깍!’ 커피숍 내부의 이국적인 풍경은 전원이 살아난 소형카메라로 담았다. 그렇게 내 여행의 기억은 내가 없는 몇 장의 사진으로 남겨졌다. 
 

좋은 여행의 기억은 소소함에서 나온다.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에서 의미를 발견해내는 일이 소소함을 놓치지 않는 비결이다. 그리고 그 소소한 기억의 순간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면 완벽한 여행이라 부를만하지 않을까?
 

숲 앞에서 촬영한 내 얼굴도 좋지만, 나무 위의 도토리가 여행의 기억을 훨씬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여행은 디테일이다.

 

이우형 작가는···
역마살 가득한 잡지장이. 지금은 사진과 글 쓰는 일로 소일하고 있다. 25년간 만든 10여종의 잡지들을 제외하고는 두어 번의 사진전과 사진집 한 권이 오롯이 그의 이력이다. 

이우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