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과 이별의 두려움에 대한 소고' - 이탈리아 베로나
2018-05-28 02:55:52 , 수정 : 2018-05-28 07:26:19 | 권기정 기자

'거절과 이별의 두려움에 대한 소고' -이탈리아 베로나

 

이탈리아 베로나에는 줄리엣의 집이 있다. 세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바로 그 줄리엣의 집이다. 물론 소설 속의 정확한 집은 아니지만 줄리엣의 집과 무덤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어쨌든 많은 관광객과 비극으로 끝났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영원한 사랑을 소망하는 연인들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 각자의 이름을 쓴 쪽지들과 낙서들을 보면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사랑의 성지에서 40대 후반의 나이먹은 한 남자는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내 나이대가 돌잔치는 이미 십년전후로 끝났고, 이제는 친구나 지인들의 결혼소식보다는 이혼소식을, 그리고 부고를 많이 듣게 된다. 세월이 지났음을 알지만 그럼에도 알콩달콩 연애해서 결혼하는 커플의 지난한 과정을 보면서 속으로 많이 부러워한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못한다는 것도 그렇고 매번 [기승전여친]을 말하지만 제대로 된 연애를 진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운 순간이다. 분명 나도 썸이라 불리는 과정을 겪어보았다. 내 성정체성은 분명 동성애자나 양성애자는 아니다. 그러나 여성성이 많이 느껴진다는 말을 듣는다. 사실 별로 인기가 없는 남자 중 하나이다. 한두번 만나기는 해보지만, 오래만나기에는 부담스러운 존재,

 

▲ 사진은 이탈리아 베로나에 있는 줄리엣의 집이다.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의 배경이 되어 더욱 인기를 끄는 곳이다. 특히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 특히 영원한 사랑을 위해 연인들이 찾는 곳이다.

 

물론 그 썸의 결과가 내가 원하는 대로 연결되지 않아 아직도 기승전여친 이런 글을 좀 예민하게 쓰고 있을 뿐이다. 물론 나의 이성에 대한 사랑과 갈구는 여전하다. 특히 페북이든 인스타에 공개를 하지 않을 뿐 뭔가를 계속 시도하고 있었다. (내가 노력을 하지 않아 여친이 없다는 말은 한낱 허구일 뿐이다.)

 

요즘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탄다. 더 정확히 말하면 혼자있기 싫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고 싶고, 지지고 볶아도 그 과정이 부럽기만 하다. 사실 이제 위로의 말은 별 의미가 없다. 굶주려 아사직전에 있는 사람에게 '괜찮아 질거야' 하는 말은 소용없다. 뭔가 먹을 것을 주는 것 하다못해 탈수방지용 소금 한줌이라도 주는 사람이 고맙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한다. 맞다 사람이 중요하다. 결혼, 이혼, 연애 여부를 떠나 가슴이 떨리는 사람을 만나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나와 맞는지 찾아보는 것,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품고 받아줄 수 있게 되는 과정이 소중한 것이다. 그 사람의 민낯을 보았을 때 그 조차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가슴이 떨리고 미치도록 보고 싶은데, 그 사람은 자기가 가슴이 떨리지 않고 연애의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고 밀어낸다면 그처럼 비극적인 일이 어디있을까?

 

그럴 땐 내 인연이 아닌 것 같다고 물러나야하지만 그럼에도 그 사람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을 땐 차마 물러날 수 없는 것이다. 비굴하더라도 그 옆에 붙어있게 된다. 그저 바라만 볼 수 있어도 행복하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은 이 상황이 불만스럽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 충족되지 않으니 자꾸만 다가간다. 그 여자는 선을 긋고 밀어내지만 그 선은 점점 그 사람 쪽으로 좁혀진다. 그리고 나서는 해자로 둘러쌓인 성 하나가 남는다. 분명 전에 보다 가까워졌지만 큰 간격이 존재한다. 여기서 남자는 고민을 한다. 더 밀고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을 존중해 그 해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다릴 것인지,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 이탈리아 베로나에 있는 줄리엣의 집에 붙어있는 수많은 낙서와 쪽지들

 

꽃이 필 때까지, 열매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순리지만 글쎄?


그런데 마음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 나온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공주가 있었고 호위병사가 공주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분명 두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신분의 차이가 있었고 어느 날 진심어린 병사의 구애에 감동한 공주가 병사에게 말한다. 자신의 발코니 앞에서 100일 밤낮을 기다리면 문을 열어주겠다고 그리고 결혼하겠노라고 말을 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공주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던 병사, 그리고 매일 매일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공주는 99일째 되던 날 병사를 보면서 내일이면 문을 열어 당신을 맞이 하겠노라 마음을 먹는다. 100일이 되던 날 병사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단 하루를 앞두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전에는 이 이야기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병사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신 시네마천국>에서 다시 나온다. 성인이 된 토토가 ‘알 것 같아요. 그 병사가 두려웠던 거예요’라고 말한다. ‘100일째 되는 날 공주가 안 나올거라는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99일 동안 겪었던 신체적인 고통보다 더 큰 것이 마음의 고통이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멈추고 떠난 것이라는 것이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거절에 대한 두려움, 소외에 대한 두려움,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기다린다 말해놓고 기다리지 못하고, 내 마음은 변하지 않을거야 하면서 변한 마음을 확인하고는 이내 한눈을 팔았던 것 같다. 지금도 끊임없이 상대를 찾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눈을 파는지도 모른다.

 

상대를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확인하려하고 결국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방 안의 공주는 이미 마음이 정해졌는데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한 병사는 그런 결정을 했다. 나도 살아가면서 혹시나 그런 결정을 할까 불안해진다. 스스로 잡을 수 없는 어려운 마음의 결정, 그런 마음이 생기지도 않은 열매를 상상하면서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나와 크고 작은, 혹은 짧던 긴 인연을 맺은 사람이 남자의 이런 불안하고 불완전하기 이를데 없는 마음을 안다면 그럼에도 마음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권기정 기자 john@ttlnews.com

이전 기사  ‘천년의 길, 천년의 빛’ 2018 전라도 방문의 해 본격 개막
다음 기사  눈과 혀가 즐거워지는, 그동안 몰랐던 독일의 미식을 경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