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제 외박했다.^^
613 지방선거 개표참관인 활동기
2018-06-15 08:14:25 , 수정 : 2018-06-15 08:32:00 | 이미경

< 또다른 관전포인트 >

 

나 어제 외박했다.^^

 

며칠 전 우연한 기회로 <시민의 눈, 이하 시눈>에 끼어 사전투표함 지킴이 활동을 잠시 해보고 힘겨운 감시활동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뜻 있는 젊은이들을 보고 느끼는 바가 많았다. 그래서 개표참관인 활동을 의뢰받자마자 기꺼이 승낙의사를 밝혀 오늘에 이르렀다.

 

전날 시눈 관계자의 사전 교육이 있었고 당일에도 약식의 교육이 있었지만 세 편의 동영상 자료집을 숙지했음에도 동아대 체육관에 본투표함이 접수를 위해 모여들기 시작하자 혼이 둘러빠지는 기분이었다. 그 와중에도 베테랑인 시눈 관계자가 친절하게 포인트를 알려줘서 어떤 지점에서 투표함의 어떤 부분을 살펴야 하는지 감을 잡은 후 이상 유무를 확인하며 사진을 찍었다. 16개 동에 적게는 네 개부터 많게는 일곱 개 투표소의 1, 2차 투표함이 접수를 마치는데 거의 두 시간이 걸렸다.

 

투표소 오후 참관인은 투표함을 개표장까지 전달하는 차량에 동승해서 접수완료까지 동참하면 본 활동비 외에 2만원의 수당을 더 받는다. 하지만 각 정당의 추천인으로 참여하는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참관인의 본분을 알고나 계신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어제 본투표장에서 본 대학신입생 아가씨도 모친 덕에 이름을 올렸는지 당원이냐고 묻는데 우물쭈물 하면서 '이름만 말하면 된다던데요 '하는데 진짜 자기가 어떤 일에 동원됐는지도 하나도 모르는 눈치였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다. 드넓은 체육관에 개함부 12곳, 투표지분류기가 15대 정도, 그리고 분류된 투표지를 꼼꼼히 체크하는 심사 집계부 16개 테이블이 투표율 70% 수준에 맞추어 사전준비 된다고 한다. 개표 사무원, 참관인, 진행 요원, 선관위 직원 등 개표에 동원된 인원은 약 600명 가량. 전국 개표소의 수를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인원이 동원되는 국가행사인 것이다.

 

5시 넘어 제공된 도시락을 먹고 6시부터 참관인 활동을 시작하는데 사무원들의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매의 눈을 뜨고 돌아다니며 조금이라도 수상한 점이 있으면 지체 없이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한다. 모든 상황이 쉴 새 없이 숨가쁘게 진행되기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사람들의 소중한 한 표가 어느 방향으로 샐지 모르기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초예민모드로 살피며 돌아다녔다.

 

개표는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내가 느끼기엔 엄청 정신없이 돌아간다 생각했는데 투표율이 저조해 예전 같으면 빡빡했을 부서별 진행도가 상당히 느슨하다고 시눈 회원들이 말했다. 11시에 본죽이 밤참으로 나오고 세 시쯤 개표함이 다 정리되어 그쪽 인원이 빠질 무렵 빵과 우유가 간식으로 제공되었다. 19대 총선 때는 12시에 빵과 음료만 줬다는데 간식비가 여유있게 나온 거 같다고 베테랑 사수가 알려주었다.

 

한 시를 넘어갈 즈음부터 사실 잠시라도 쉬지 않으면 다리는 끊어질 것 같고, 허리는 부서질 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긴장해서 그런지 어깨까지 막막 쑤셔오는 통에 피곤을 삼키며, 서 있는 동안에도 운동 삼아 발끝을 빙빙 돌리게 되는데 그래도 눈은 백 장 단위로 넘어가는 계수기에서 뗄 수가 없다.

 

투표 현장에 반 나절만 있어보면 알게 된다. 문맹률이 세계에서 제일 낮다는 대한민국의 선거 현주소가 어떤 모습인지. 고령의 노인들에게 일곱 장의 투표지를 들고 한 장에 하나씩만 찍어야 한다고 아무리 미리 말씀드려도 소용이 없다. 젊은 세대야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서 마음만 먹으면 정보에 접근할 수 있지만 관심이 없고 노인 세대는 웬만하면 투표장에 가지만 번호만 외워갔다가 그마저도 순번이 없는 교육감이나 비례 대표에 이르면 투표지를 꽃밭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개표 현장에서 쏟아진 무수한 사표와 무효표들을 보면 문맹률과 상관없이 독해력 증진과 철저한 선거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밖에 없다.

 

분당 350~400장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투표지분류기를 보고 있으면 우리의 기술이 어디까지 와 있나 새삼 놀라게 된다. 후보별로 100장 단위로 카운팅이 되면서 스캔과 후보별 집계가 동시에 가능한 시스템을 처음 본 나로선 그 분류기가 사람 이상의 대단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만히 지켜보니 기계는 기계일 뿐 사람을 대신하긴 버거운 '물건'에 불과했다. 열두 시가 넘어가자 먼지나 약간의 오물에 수시로 잼이 걸리고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면 제 힘을 못 이기고 표를 튕겨내기도 했다. 이러니 잘못 끼어드는 투표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수가 생기고 그런 오류를 깨알같이 잡아내는 건 다 심사를 맡은 사무원들의 몫이 되어 그들은 가장 늦게 퇴근하는 부류가 된다.

 

4시를 전후해서 대략의 당선구도가 확정되고 개표사무원들 대부분이 교사, 공무원 그리고 동아대 학생들이라 당일의 일정에 따라 대부분 개표활동을 마무리하고 귀가할 때쯤 '마' 선거구 표를 분류하는 기계 한 대에 문제가 생겼다. 이미 집계한 ○○동의 재검표에서 다수의 표차가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2만여 장을 표를 다시 돌리기로 하고 선수표들을 우선 집계한 결과 오차를 줄이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면 적어도 한 시간 반은 족히 더 움직여야 하므로 그 테이블을 맡은 책임사무원의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모두 밤을 새워 높은 강도로 긴장해서 일했기 때문에 피로도가 최고로 쌓이는 시점에 이런 일이 벌어지니 다들 표정이 어두운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다른 기계로 옮겨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개표 전체의 신뢰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점이다. 다행히 옮긴 분류기는 정상 작동하는 걸로 결론이 나서 최대한 빨리 속도를 내서 다섯 시 반쯤에 집계가 종료되리라 예상하고 있을 때였다.

 

해당 조의 사무원과 참여인들과 관계자 모두 그 기계 부근에 모여들어 눈과 귀가 한 곳으로 쏠려 있을 때, 시민의 눈 최고 연장자인 멋쟁이 아저씨가 은갈치 수트를 입은 남자를 가리키며 비표 없이 어떻게 개표장에 들어왔냐고 지적했다. 오홧! 다들 지쳐서 정신 없고, 피곤해서 누가 들어오나 나가나에 신경쓸 여력이 없던 상황에서 당선 결정 소식을 알려주지 않고 가버린 참관인들 핑계를 대며 자유한국당 후보가 직접 개표소에 난입을 한 것이다. 비표(출입 허가용 패찰) 없이 개표장을 드나드는 행위는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2년, 벌금 최고 400만원에 해당하는 중징계를 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본인은 궁금해서 별 생각 없었다고 말하지만 어불성설일 뿐이다. 마침 마지막 개표결과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당사자였고, 근소하게 앞서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30분만 참았으면 기분 좋게 당선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을 텐데 이건 뭐 자기가 자기 눈 찌른 격이다. 앞선 더불어민주당 당선자에 이어 2인을 뽑는 구의원 선거였는데 당선이 무효화 되면 그다음 순위자인 더불어민주당 사람이 나란히 당선권으로 들어서게 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선거법에 의거한 선관위의 판단 여하에 따라 당선 무효가 될 수도 있는 사안이 돼버렸다. 두 당 모두에게 아주 민감한 사안이 될 전망이다. 향후 이 일이 어떻게 해결되는지 귀추를 주목해볼 만하다.

 

지쳐서 언제 개표가 마무리되나 그것만 바라고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이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사건이었다. 그 사실을 발견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동시에 동영상 찍으면서 채증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시민의 눈> 회원들, 와, 정말 대단했다. 엄중하면서도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하며 잘못을 저지른 상대를 압박해들어가는 <시민의 눈>의 열의와 순발력에 감탄과 존경을 금치 못하겠다. 나야 어중잡이로 끼어 따라나선 참이었지만 그들과 그 과정을 마지막까지 함께 했다는 사실에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피 흘리며 하는 투쟁도 가치 있겠지만 남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 아무도 그들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음에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투표함을 지키고 부정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들의 깨어 있는 시민의식에 다시금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소중한 경험으로 남은 하루였다. 가슴에 이는 벅찬 감동에 흐뭇해하며 타고 오는 16번 버스에 아침 햇살이 기분 좋게 내려앉고 있었다.

 

 

글 이미경

정리 : 권기정 기자 john@ttlnews.com

본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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