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Talk] '명당' 조승우 "잘 먹고 잘 쉴 수 있는 곳이 명당"
2018-09-20 19:34:07 , 수정 : 2018-09-20 20:42:35 | 이민혜 기자

[티티엘뉴스] '관상'(감독 한재림), '궁합'(감독 홍창표)에 이어 역학 3부작의 피날레를 장식할 마지막 시리즈 '명당'(감독 박희곤)이 추석을 앞두고 19일에 개봉했다.


널리 알려진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위치한 남연군 이구의 묫자리에 관한 일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명당'은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천재 지관 '박재상'(조승우)이 명당을 이용해 나라를 지배하려는 '장동 김 씨'(백윤식, 김성균) 가문의 계획을 막다 가족을 잃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13년 후 복수를 꿈꾸는 '박재상' 앞에 몰락한 왕족 '흥선'(지상)이 나타나 '장동 김 씨' 세력을 몰아낼 것을 제안하고, 뜻을 함께하여 '김좌근' 부자에게 접근한 '박재상'과 '흥선'은 두 명의 왕이 나올 천하명당의 존재를 알게 되고 서로 다른 뜻을 품게 된다. 개봉을 앞두고 극 중 천재 지관 '박재상' 역을 맡은 배우 조승우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Q. 3년 만에 복귀이다. 보통 어떤 작품을 위주로 고르는 편인가?
 

A. 재미도 좋고 멋있는 것도 좋지만, 작품이 사람의 삶에 영향을 조금이나마 줄 수 있는 메시지가 있는 작품을 하는 게 바람이다. 배우로서 어떤 연기 생활을 해나가야 할까 생각하던 중에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주면서 살아야 되지 않나 하는 막연하고 거창한 생각으로 선택하고 있다.



Q. 이번 작품은 어떤 영향을 줄 거라고 기대하나?


A. 캐릭터만 보면 개인의 복수심도 있지만, 세상을 조금만 좀 더 좋게 움직이고 싶어 한다. 한 개인의 아주 작을지라도 큰 움직임들이 있다. 이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 목적이 무엇인가를 보면 사람 묻을 땅이 아니라 살리는 땅을 찾고 싶어 한다. 재능과 모든 능력을 그런 곳에 쓰고 싶어 하는 점이 있다. 중간중간 13년이 흐른 뒤에 나오는 장면을 보면 다 쓰러져가는 시장 상인들을 위해서 무보수로 일해주기로 하고 처지가 딱한 분에게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런 역할에 묻어있는 특유의 선함이 있다. 그래서 지금 시대에도 이런 인물이 많아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Q. 제작사에서는 조승우 씨가 왜 했는지 의아했다고 했다. 주인공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어떤 이유였는지?

 

A. 겉으로 드러나는 역할이 아니라서 후반으로 치고 갈수록 '김 씨' 세력과 '항선' 군의 본래 목적 자체가 드러남으로써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른다. 그 안에 나는 '항선'의 뜻이 다르다는 걸 깨닫고 엄청난 상실감을 가지고 어떻게든 그 터를 못 건드리게끔 막으려고 하는 데 힘이 없다. 그 구간으로 갈수록 그들에게 초점이 맞춰줘야 된다는 건 맞는 것 같다. 임팩트가 실려야 하는 건 맞고 그런 계기로 인해서 '박재상'이 전환될 수 있는 부분이 인생의 목적을 찾는 계기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할 자체가 임팩트가 있다거나 강한 걸 보여줄 수 있다는 건 없지만 전체적으로 축을 잡는데는 꼭 필요한 역할이 아닌가 싶었다.

 

Q. 천재 지관으로서 용어라던가 준비 많이 하고 노력했을 것 같다. 말타기 위해 승마 등도 했을 텐데 작품을 준비하면서 어땠는가?

 

A. 촬영하기 전에 감독님이 자료를 많이 주셨다. 조선 후기에 지관들, 관상관, 상지관들이 어떻게 했는지 자료를 뽑아주셨는데 사용하는 도구들, 지도를 보는 방법들에 대한 책도 주셨는데 그건 어려워서 못 보겠더라.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잘 볼 수 있는 과학적으로 접근한 소도구들이 있었는데 나침반같이 되어 있고 해시계도 있었다. 배산임수라고 해서 좋은 곳 앞에는 뭐가 있고 천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있고 좌청룡 우백호처럼 정해진 부분이 있는데 처음에 이러한 도구를 사용하려고 하다가 이거 들고 다니면 천재 지관이라는 설명이 안 되는 거 같았다. 과거에 수염이 없던 시절에 책을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장면 빼고는 이 사람은 모든 감각이 이쪽에 살아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어떤 공간을 보더라도 우물이 솟을 걸 알고 살기가 돈다는 걸 안다. 능력이 높고 큰 것을 표현하기 위해 눈으로 보고 느끼되 도구를 쓰지 말자고 얘기했다.

 

Q. 해시계나 나침반을 덜자고 한 건 승우 씨 의견이었나?

 

A. 맞다. 작업 스타일이 좋았다. 시원시원하고 디테일 한 부분에서 굉장히 디테일했다. 배우들의 의견도 잘 들어주고 얼마 전에 '헌종' 역 했던 원근이라는 친구도 기자 간담회에서 촬영 때 감독님 괴롭혔다고 얘기했듯이 문자도 자주 보내고 궁금한 거 물어봤다. 격식 없이 배우들하고 소통을 많이 해주는 분이라서 작업하는 데는 완벽한 현장을 마련해주고 배려도 많이 해주셨다. 감독님의 작품인 '인사동 스캔들'(2009) 되게 재밌게 봤다. 특유의 역동적인 부분이 있다. 감독님 스타일이 사전에 조사를 엄청 많이 하는 스타일이다. '퍼펙트게임'(2011) 때도 그랬다. 그래서 그분한테 뭘 물어보면 박사 수준으로 다 습득을 해놓으셨다. 물어보기도 편하고 워낙 친하니까 현장에서 친구처럼 잘 지냈다. 신뢰감 없으면 작업 못 한다. 미리 만나보고 믿음이 생기고 그래야 하는 거다.

 

Q.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는지?

 

A. 극 중 호흡을 맞춰본 배우는 지성 형하고 재명이 형밖에 없었다. 백윤식 선배님은 한두 장면 밖에 안 만난다. 지성 형은 정말로 열정 그 자체이다. 책임감이 엄청나고 현장에서도 너무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줬다. 배우의 본 모습은 진짜 저런 거라고 생각했다. 부지런하고 흐트러짐 없고 항상 모든 씬에 대한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고 찍기 전까지의 과정이 혼자만의 루틴이 있는 것 같다. 대기 시간에도 항상 준비하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현장에서 사적인 대화를 나눠보지는 못했다. 항상 준비하고 계셨다. 형은 연기할 때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연기한다. 아마 감독님이 "당신이 원할 때까지 만족할 때까지 해봐"라고 하면 그 형은 끝을 안 낼 사람이다. 배우로서 배울 점이다. 엄지 척이다. 재명이 형은 워낙 세 작품째 같이 하니까 현장에서 농담 따먹기로 하다가 우리 것 하자고 들어가면 리허설 없어도 그냥 죽이 척척 맞는 그 정도의 호흡이 됐다.

 

Q. '명당'이 재미있었던 게 뿌리, 가문의 영광에 집착을 보이는 영화이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집착하는 부분이 있다면?

 

A. 내 공간에 대한 집착은 있다. 내가 생활하는 곳에 대한 어떤 명확한 기준이 있다. 인테리어 했을 때도 아시는 분한테 맡겼는데 오래된 집을 뜯고 했는데 인테리어 해주신 선생님께 내가 원하는 사진을 280장인가를 줬다. 이런 사람 처음 봤다더라. (웃음) 내가 살아가야 할 곳이니까 신경을 많이 쓴 거다. 집돌이이기 때문에 집 안에 있는 걸 좋아한다. 심지어 강아지 한 마리, 고양이 두 마리랑 같이 사니까 더 신경 썼다. 겨울 되고 난방 들어오면 반려동물이 너무 더울까 봐 거실이 있으면 가장자리 부분에 보일러를 안 돌게 했다. 주로 강아지가 자주 있는 곳에 열선을 뺐다. 난방 들어오면 털북숭이니까 더울 수 있다. 시원한데 찾아가서 배 대고 앉아있을 중간중간 그런 부분을 뒀다. 되게 신기해하셨다. 어머니 집에 강아지가 떠나면서 가슴 아파서 못 키우겠다고 하셔서 키우던 고양이 두 마리를 드렸다. 아주 잘 지내고 있어서 어머니께서 돌려주지 않으신다. (웃음)

 

Q. 배우 조승우가 생각하는 명당은?

 

A. 철저하게 개인 위주로 보았을 때 자기가 잘 먹고 잘 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공간이 식상할 수 있지만, 그거 자체가 명당 아닐까 싶다. 편집이 돼서 없지만 이런 대사도 있었다. '흥선'이 그 터를 차지하고 나서 '김병기'가 날 찾아와서 저걸 누를 수 있는 더 좋은 도시 혈을 잡아달라고 한다. 시신이 사라져버리는 흉당 터를 주면서 복수를 하는데 그 뒤에 '흥선'이 '박재상'을 찾아와서 "과거에 사사로운 일은 잊고 같이 일을 해보세" 하는데 미래가 정해져 있는 사람과 길을 함께 가고 싶지 않다고 거절하는 장면이 있다.

 

Q. 명당은 부동산, 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 게 바람직한지에 대한 메시지를 주는 영화인 것 같다.

 

A. 약간 부족할지 몰라도 행복한 삶 같다. 넘치는데 뭔가 부족한 거 같은 삶, 그 경계 속 중간에 있는 삶이 가장 안정적인 게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런 대사가 나온다. 잘못된 권력에 대해 뭘 그렇게 가지려고 저 난리인가에 대한, 저걸 가지려고 부모 아비 자식도 없는 상황에서 그게 어떻게 명당이고 삶에 가장 중요한 거라고 정의할 수 있냐고 하는 거에 '박재상'에 대한 주관은 이미 섞여 있는 거로 생각한다. 개인적인 건 찾아보겠다.

 

Q. 화엄사에서 최초 촬영이었다. 많이 조심스러웠을 텐데 어땠는지?

 

A. 스탭들이 전부 다 진짜 앞발 뒷발 띄고 걷는다는 느낌이다. 모든 것을 소중히 생각하면서 최대한 절에 계신 스님들 방해 안 되게 했다. 세시가 되면 예불을 드리는데 아침 예불을 드리면 촬영 올스탑하고 조용히 기다리다가 끝나시면 촬영했다. 그렇게 허락해주셔서 그림 멋있게 나왔다. 실제로 처음 봤을 때 압도당했다.

 

Q. 스스로 볼 때 배우가 천직이라고 생각하는지?

 

A. 나는 할 줄 아는 게 진짜 하나도 없는 학생이었다. 중학교 때 배우의 꿈을 꿨는데 사람들이 "쟨 너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애다"라고 싶을 정도로 존재감 없고 꿈도 없던 시절이었다. 연극 한 편 보고 예고에 진학하게 되고 뮤지컬에 빠져서 뮤지컬만 바라보면서 오다가 생뚱맞게 영화로 데뷔했다. 영화 하고 나서 아무 일도 들어오지 않을 때 소극장 뮤지컬 해서 진짜 꿈을 이뤘다. 지금 생각해봐도 연기하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이게 천직이라는 생각보다 할 줄 아는 게 이거 밖에 없고 내 가슴이 뛰는 일도 이거 밖에 없다.

 

Q. 연기할 때 철칙이 있나?

 

A. 보통 주변 상대 배우들한테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액션이나 리액션 호흡을 교류하고 감정을 교감하면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 욕심을 담아 주관적으로 해석한 캐릭터를 보여주기식이나 과한 에너지는 철저히 피하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다. 혼자 돋보이려고 하는 거는 원하지 않는다. 좋은 상대 배우들을 만나면 굳이 연기하려고 하지 않고 구상했던 걸 하려고 하지 않아도 전혀 다른 새로운 것들을 느끼게 된다. 운 좋게도 그런 상대 배우들을 만나왔다. 그 상대 배우들과 앙상블, 교류, 교감이 없으면 내 역할도 아무리 좋은 역할도 별 볼일 없는 역할이 된다.

 

Q. 상대 배우 중에 최고는 누구?

 

A. 다 좋았다. 콕 짚자면 배두나 씨가 떠오른다. 연기할 때 내가 연기하는 건가 실제인가 착각하게 하는 특유의 내추럴한 호흡이 있다. 대사를 대사 같지 않고 진짜 말처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배우이다.

 

Q. 배우 조승우의 좌우명은?

 

A. 옛날에는 무대에서 했을 때도 그렇고 심할 정도로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었다. 저녁 8시 공연이면 2시쯤 극장에 갔다. 아무도 없을 때 가서 혼자 계속 집중하고 모자란 거 전날 실수한 거 연습하고 그래야 성에 찼다. 안 풀리는 거 있으면 연출을 괴롭히는 스타일이었다. 실수하면 억울해서 잠을 못 자고 스스로 자책하고 못살게 구는 스타일이었는데 지금은 정해진 연습 시간에 남들보다 더 연습하고 더 부지런하게 하려고 한다. 연습 과정을 끝낸 다음에 어떤 공연이나 작품에 들어갔을 때 그날그날 하루하루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이 들면 잘 잘 수 있다. 잘했고 못 했고의 판단은 스스로 하는 게 아닌 게 됐다. 항상 최선을 다하면 그거로 됐다.

 

Q.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A. 옛날에 했던 욕심 완벽주의는 내가 해낼 수 없는 너무 큰 목표를 잡았던 것 같다. 초인적인 걸 스스로 원했던 것 같다. 내 한계는 여기까지인데 내가 나 자신을 모르다 보니 여기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혹사가 되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만 받고 놓지를 못했다. 이제는 나 자신 너무 괴롭히지 말고 객관적으로 봐주는 사람들한테 조언을 통함으로써 주관 반, 객관적인 거 반 섞어서 해보자고 했다. '지킬 앤드 하이드' 예전 재공연하고 성대결절 됐을 때니까 10년 됐다.

 


Q. 딛고 도약할 수 있던 건?

 

A. 관객이다. '지킬 앤드 하이드'가 예전에는 앵콜을 오픈하면 5분 만에 매진됐다. 그 당시 연습 안되어있을 때인데 성대결절이 났다. 보통 같으면 공연을 하면 안 된다. 병원에서 말하지 말라고 하는데 소리 지르고 노래해야 했다. 이미 표는 다 나갔고 관객들이 그만큼 원한다는데 목 아파서 하차 하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책임감으로 버티면서 하다가 젖먹던 힘까지 내서 하는데 반응해주는 거 보는데 이렇게 못하고 엉망진창인데도 내가 한 작품을 보겠다고 미리 예매도 하고 암표까지 도는 그 자체가 그냥 감사했다. 감사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욕심부리다가 그런 거니까 그때부터 정도껏 하기로 놓기 시작했다.

 

사진ⓒ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이민혜 기자 cpcat@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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