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엘뉴스] 최근 한국에서 위스키는 명품백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백화점이며 편의점에 한정판 위스키가 들어온다는 소식만 들려도 오픈런(Open_Run)을 하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다. 그만큼 위스키는 MZ세대에게 새로운 트랜드이자 플랙스(Flex) 문화의 중심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그중에서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스코틀랜드 위스키(Scotch Whisky; 스카치위스키)는 명품 중의 명품 위스키로 통한다. 스카치위스키 중에서도 싱글몰트(Single Molt) 위스키는 특유의 맛과 향으로 최고급 위스키 반열에 올랐다.
대학시절부터 20여년간 위스키를 즐겨온 기자의 눈에도 최근의 위스키에 대한 광적인 기현상은 신기할 정도다. 쉽게 먹던 10여만원대 스코티쉬 싱글몰트 위스키는 어디를 가도 찾기 어렵게 됐으며, 남대문 시장에서는 출처 미상의 위스키들이 몇 배에 팔린다는 소문까지 들린다.
기자는 늘 이러한 현상이 궁금했다. 스코틀랜드 위스키의 어떤 맛과 매력이 전 세계 사람들을 매료시키는지 자세히 알고 싶었다. 그리고 마음속 로망으로 간직해 온 스코틀랜드 위스키 투어를 직접 다녀왔다.
▲발베니 성(Balvenie Castle)
스코틀랜드, 위스키의 전설이 시작된 곳
스코틀랜드는 위스키와 골프의 본향이다. 특히 스카치위스키는 현재 전 세계 몰트위스키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며 막강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야 스카치위스키를 쉽게 즐기지만, 스코틀랜드는 거친 역사를 거치며 위스키의 대명사로 거듭났다. 내전과 독립전쟁 등 다양한 역사의 소용돌이와 불법과 합법의 시기를 거치면서도 위스키에 대한 자부심과 정통성을 잘 유지해온 탓이다.
스코틀랜드에는 지역마다 다양한 위스키 증류소들이 위치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스페이사이드(Speyside), 하이랜드(Highland), 로우랜드(Lowland), 아이라(Islay), 캠벨타운(Campbeltown) 지역으로 증류소를 분류하고 있다.
▲글렌코(Glencoe) 근처에 흐르는 강
신(神)의 물방울은 와인 만이 아니다. 스카치위스키는 ‘생명의 물’로 불린다. 스코틀랜드의 깨끗한 자연환경은 위스키를 만들기 위한 최적의 물을 공급한다. 그만큼 스코틀랜드인들에게 스카치위스키는 최고의 자랑거리이자 오랜 문화유산이다.
스카치위스키는 무조건 스코틀랜드에서 병입(Bottling)해야만 인정되며, 법적으로 5가지 종류로 구분되어 있다. 싱글몰트 위스키가 대표적이며, 싱글그레인 위스키는 물과 몰트 그리고 그 외 곡류와 발아시키지 않은 보리로 만든 위스키를 말한다. 블렌디드 몰트위스키는 최소 2곳 이상의 증류소에서 생산된 몰트 위스키를 혼합해 만든 것이다. 블랜디드그레인 위스키는 그레인위스키를 혼합해서 만든 위스키이며, 블렌디드 위스키는 몰트위스키와 그레인위스키를 혼합해 만든 것이다.
▲발베니&글렌피딕 양조장 전경
맥켈란·글렌피딕·발베니가 작은 시골에 모여 있는 이유
위스키는 보리, 옥수수, 호밀 등의 곡물을 가지고 발효과정을 거쳐서 증류시킨 후 오크통에 숙성을 시킨 것이다. 현재 위스키는 다양한 나라에서 생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스코틀랜드의 스카치위스키가 세계 최고 판매량과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위스키 제조는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몰팅-매싱-발효-증류-숙성의 과정을 거친다. 몰팅(Malting)이란 보리를 맥아(Malt)로 만들기 위하여 발아를 관리하는 것이다. 매싱(Mashing)은 다음 단계인 발효에서 전분, 당분, 효소 등 분쇄된 맥아의 내용물이 가능한 한 최대로 용해될 수 있도록 당화조(Mash Tun)에서 당분 용해액을 만드는 과정이다. 발효(Fermentation)는 맥아즙의 당분 속에서 효모가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알코올과 이산화탄소 등을 생성하는 과정이다.
▲글렌피딕 양조장 워시백
매싱 과정에서 생성된 맥아즙을 워시백(Wash Back)이라는 커다란 통에 담은 뒤 효모를 첨가한다. 증류(Distillation)는 워시에 열을 가하여 효모의 활동을 멈추게 하며, 물과 알코올의 끓는점 차이를 이용하여 높은 도수의 알코올을 추출하기 위한 과정이다. 순수 몰트 위스키의 경우 구리로 만든 단순한 구조의 단식 증류기로 증류한다.
새로 증류한 알콜 원액을 스피릿(Spirit)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오크통에 넣어 숙성(Maturation) 과정을 거친다. 스카치 위스키는 법적으로 적어도 3년간 창고에 봉인된 채 숙성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보통 3년보다 오랜 시간 동안 숙성 창고에 넣어두게 된다.
▲글렌피딕 양조장 증류기
모든 과정이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기본이 되는 물이다. 위스키 제조에 있어서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세계 최고 위스키 증류소들이 위치한 곳만 봐도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맥켈란(Macallan), 글렌피딕(Glenfiddich), 발베니(Balvenie) 증류소는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지역의 더프타운(Dufftown)에 모두 몰려있다. 이 마을은 전체 인구가 2000여명 밖에 안되는 완전 시골이다.
이 지역의 물은 깨끗한 1급수 인데다가 물의 경도가 낮아 위스키 제조 시 균형 잡히고 깊은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인데, 증류소들이 이곳에 모두 모여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증류소들이 무조건 경도가 낮은 연수로만 위스키를 만들지는 않는다. 아이라(Islay) 지역의 증류소들은 중간 정도의 경도를 가진 물을 사용하는데 각 지역의 위스키 특성을 반영해 증류소들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보면 된다.
싱글몰트(Sigle Malt), 그 원형의 맛
더프타운 주변에는 10여개가 넘는 증류소들이 둥지를 트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맥켈란·글렌피딕·발베니 증류소는 차로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서로 가깝게 위치해 있다. 작은 시골 외각에 위치한 거대한 위스키 증류소 시설은 가히 장관이다. 전 세계 싱글몰트 스카치위스키 60%를 이곳에서 생산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예상을 뛰어넘는다.
이 세 가지 위스키는 한국에서도 인기 1·2·3위를 다툴 정도로 인기가 폭발적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위스키의 공통점은 모두 싱글몰트 위스키라는 점이다. 그리고 글렌피딕과 발베니는 브랜드만 다를 뿐 엄밀히 말하면 같은 기업이라 볼 수 있다. 윌리엄그랜트앤선즈(WGS)라는 가족 경영기업에 의해 5대째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양조장이 생산하는 싱글몰트 원액만 전 세계 소비량의 9%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맥켈란&이스테이트 전경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발렌타인(Ballantine). 조니워커(Johnny Walker) 등은 대표적인 블렌디드 위스키(Blended Whisky)이다. 이 위스키들은 다양한 증류소의 원액을 섞어 최고의 맛을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발렌타인 30년산에는 글렌버기와 밀톤더프 증류소 및 아이라 섬의 라프로익 증류소의 30년 숙성 위스키가 혼합되어 있다. 결국 싱글몰트는 블랜디드 위스키를 구성하는 원액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다.
최근의 싱글몰트의 인기는 혼합되지 않은 위스키의 원형의 맛을 느끼고자 하는 욕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입맛에 따라 부드러운 블랜디드 위스키를 즐기는 사람도 있고, 싱글몰트의 정직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뿐 고급과 저급의 차이는 무의미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최근 위스키 트렌드는 확실히 싱글몰트를 선호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거기에 셰리(와인) 오크통이나 버번 위스키 오크통, 꼬냑 오크통 등에 싱글몰트를 숙성시켜 위스키 풍미를 극대화하며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글렌터렛(Glenturret) 양조장 테이스팅 바
피트(Peat), 위스키 향의 비밀
스카치위스키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위스키와는 달리 독특한 훈제향이 난다. 스카치위스키를 상징하는 이 향기는 호불호가 나뉘지만 인기의 비결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향이 오크통에 오래 절여지면서 알아서 생성된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는 큰 오해다.
이 향기는 이탄(피트; Peat)을 말려 태워서 몰트를 건조시키면서 향이 입혀진 것이다. 제조과정에서는 피팅(Peating)한다고 말한다. 피트의 정의는 죽은 식물 등의 유기물이 습지의 수분과, 산소 결핍, 무균상태, 산성 성질을 가지고 석탄화가 되지 못하고 땅속에 축적되어 있는 재료를 말한다. 지구 표면의 3% 정도는 이 피트가 덮고 있는데, 지역마다 서식하는 식물과 환경이 달라 각기 다른 특징을 보인다. 아이리쉬위스키는 위스키를 만들 때 거의 피팅 작업을 거치지 않는데, 스카치위스키는 풍미를 위해 대부분 피트를 사용한다.
▲스모키향을 내는 재료 피트(이탄)
피트는 위스키에 두 가지 방식을 영향을 끼친다. 내린 비가 땅으로 흡수되어 피트 지대를 통과하면서 지하수가 되고 증류소는 이 물을 사용해 발아를 시킨다. 또, 보리를 발아 건조시키는 과정에서 수분을 제거하기 위해 피트를 태워 연료로 사용하는데, 자연스럽게 훈연향이나 그을린 흙냄새가 위스키에 스며들게 된다.
이 피트의 향은 지역마다 달라 다채로운 위스키 맛을 만들어 낸다. 보통 숲이나 들이 가까운 곳에 위치한 증류소에서 채쥐해 사용한 피트는 스모키하고 은은한 향을 내지만, 아드백(Ardbeg) 위스키 같이 섬이나 해안가에 위치한 증료소에서 제조한 위스키는 해초류와 바다의 유기물질이 뒤섞이며 강렬하고 샤프한 향이 난다. 다채로운 피트향을 선택해 즐길 수 있는 것도 스카치위스키의 매력이다.
▲발베니 양조장의 저장소(50년이 넘은 위스키도 보인다)
천사의 몫과 쿠퍼리지
보통 위스키는 오랜 시간이 지날수록 비싸진다고 알고 있다. 오래 묵혔으니 당연히 맛은 진해지고 저장을 위한 수고가 들어간 탓이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에서는 이것에 대해 천사 탓을 한다. 일명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위스키가 숙성되는 동안에 증발되는 양을 의미한다. 위스키가 대부분 물로 이루어져 있으니 아무리 오크통에 밀봉을 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적으로 알콜과 물이 증발하게 된다.
천사의 몫은 숙성 기간에 따라 달라지는데, 스코틀랜드에서는 보통 10년간 숙성한 위스키의 경우 2~3%가 증발하게 된다. 위스키 양과 숙성 환경에 따라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발베니 양조장 오크통 제작 수리소
위스키는 숙성 기간이 길어질수록 풍부한 맛과 향을 내는데, 양은 줄어들지만 위스키의 가치가 계속 올라가는 이유다.
위스키 제조 시 물만큼 중요한 것이 오크통(쿠퍼리지; Cooperage)이다. 오크통은은 위스키가 숙성되는 동안 향과 맛을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스카치위스키에서 사용하는 오크는 화이트 오크나 유럽 참나무로 만들어진다. 이 나무들은 산소를 흡수하고 노후되면서 내부에 작은 구멍들이 생길 때까지 몇 년 동안 건조시켜 사용한다.
숙성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크통에서 나오는 물질의 양이 증가하며 더 복잡한 위스키 풍미를 자아낸다. 오크통은 여러차례 사용되며 그 전에 숙성된 와인이나 위스키의 향이 덧입혀지면서 새로운 향과 맛을 만들어 낸다. 스카치위스키는 오크통에서 최소 3년 이상 숙성시켜 맛을 극대화한다.
▲글렌피딕 양조장 여행자 센터
스카치위스키 투어 매력 급부상
최근 스카치위스키의 인기가 오르면서 스코틀랜드 위스키 증류소를 직접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늘고 있다. 평소 잘 모르고 마시기만 하다가 직접 방문해 해당 위스키의 역사와 제조과정을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하는 것은 위스키 마니아들에게는 꿈과 같은 일이다. 스코틀랜드의 자연환경은 골프와 트래킹에 최적화되어 있다. 수많은 소설과 영화의 배경이 됐던 장엄한 자연환경을 직접 관람하고 위스키 증류소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힐링을 느낄 수 있다.
▲글렌터렛(Glenturret) 양조장 투어 시음
스코틀랜드 전역에 있는 위스키 증류소들은 그 규모와 관계없이 방문객들을 위해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해당 위스키의 역사부터 시음까지 1시간에서 2시간30분 간 진행되는 투어 프로그램은 예약이 늘 가득차 있을 정도다. 양조장 홈페이지나 여행 플랫폼 등을 통해 미리 데이투어로 예약이 가능하며, 스코틀랜드 관광청을 통해 위스키 그랜드 투어 정보를 받을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다양한 단품 여행 상품이 출시되고 있고, 대형 여행사들도 대세가 되고 있는럭셔리 관광으로서 위스키 투어 상품을 개발하고 출시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최근 에딘버러 중심가에 생긴 조니워커 익스피리언스(Johnny Walker Experience)의 경우 연간 수만명이 찾을 정도로 성황 중이며 여행사들도 이 상품을 패키지 투어에 적극 삽입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축구(EPL), 골프, 위스키 인기에 힘입어 런던 중심이었던 영국 관광이 다채로운 고급 테마 여행 트렌드를 반영하며 재부상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취재협조 = 영국관광청/스코틀랜드관광청
양재필 여행전문기자_ryanfeel@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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