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는 금문고량주의 고향, 금문도
타이완관광청 초청 7개 매체 타이난/금문도 팸투어 2일 차
2018-05-31 09:24:30 , 수정 : 2018-05-31 09:25:57 | 이상인

[티티엘뉴스] 오랜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는 금문고량주의 고향, 금문도 

 

- 타이완관광청 초청 7개 매체 타이난/금문도 팸투어 2일 차
 


타이완관광청 서울사무소 주최로 지난 29일부터 6월 1일까지 3박 4일간 국내 7개 관광 매체 초청 ‘타이난/금문도 팸투어’ 행사 2일째를 맞는 30일에는 본격적인 진먼다오(金門島) 투어로 시작됐다.

 

■진먼다오((金門島. 금문도)

 

타이중 공항에서 출발한 진먼다오행 ATR72-600 쌍발 터보프롭 항공기는 승객 70명을 태우고 이륙 약 1시간 만에 진먼다오에 도착했다. 진먼다오의 면적은 150.3397㎢이며, 동서는 약 20Km, 남북 폭은 5∼10Km의 땅콩 또는 담뱃잎 형상이라고 한다. 중국 곡운 섬과는 1.8Km, 본토인 푸젠성 하문과는 1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을 정도로 타이완 땅이면서도 중국 본토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 이러다 보니 진먼다오의 근대 역사는 전투로 얼룩져 있다.

 

국민당과 공산당이 대치하던 1949년부터 진먼다오는 타이완의 최전방 격전지였다. 중국이 진먼다오 상륙을 위한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고, 상륙에 실패한 중국은 1958년 8월 23일부터 10월 5일까지 44일간 진먼다오에 무려 47만 발의 포탄을 쏟아부었다. 이후로도 21년간 대치 상황을 이어오면서, 1979년까지 약 100만 발이 넘는 포탄이 진먼다오에 떨어졌다고 한다. 진먼다오 섬의 중국을 접한 바닷가는 거의 지하벙커로 되어 있어 마치 우리나라의 DMZ를 떠올리게 한다. 콘그리트와 철 갑판으로 된 지하벙커, 포탑, 포대들이 그대로 남아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진먼다오는 지난 1992년 군사통제가 해제됐고, 2001년부터 중국과 타이완 간의 양안관계(兩岸關係)가 개선되면서 일반인들의 관람이 시작됐다. 진먼다오는 본 섬 외에 례위 등 15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고, 인구는 약 15만 명으로 등록되어 있지만 실지로는 약 6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진먼다오에는 이곳에서 재배한 수수와 고량을 원료로 만든 금문고량주, 진먼다오의 우수한 품질의 땅콩을 이용해 만든 땅콩과자 꽁탕, 일명 고량우라고 불리는 금문고량주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로 키운 소고기 등이 이곳의 특산품으로 손꼽힌다.

 

타이완이 점차 세계적인 관광지로 떠오르면서 진먼다오에도 중국 본토로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진먼다오에는 요소요소에 전쟁유적지들이 즐비하다. 당시 전투장면의 사진과 그림, 그리고 전시에 사용됐던 용품과 자료 등이 보존된 구링토우 전사관, 중국 본토를 향해 홍보전을 펼쳤던 고성능 방송시설, 하문섬과 최단거리에 있는 지하 갱도로 이어진 마산 관측소, 각종 군사위장과 방어시설, 용감한 군인들을 기리는 기념관 등이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금문고량주(金門高粱酒)

 

▲ 다양한 금문고량주

 

진먼다오는 금문고량주의 고향이다. 전쟁으로 얼룩졌던 금문에 처음 금문고량주를 만들어 금문도를 일으켜 세운이가 바로 금문고량주의 창업자인 후롄 장군으로 그를 현대판 은주공이라 칭한다. 진문공항에서 금문고량주 공장까지는 버스로 약 5분 거리에 있다. 입구에는 금문고량주를 대표하는 커다란 고량주 병 모양의 탑이 있다. 깨끗한 환경에 화학 첨가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마셔도 머리가 아프지 않으며, 숙취가 없는 금문고량주는 맛과 향을 인정받아 세계적인 고량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금문고량주 공장

 

금문고량주 회사 내 VIP 홍보관에는 이곳에서 생산된 특별한 고량주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마영구 전 총리가 행사 때 이곳 금문고량주 회사에 들러 직접 사인을 한 도자기 형태의 고량주를 비롯해 다양한 고량주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금문고량주에 대한 홍보영상을 시청할 수 있으며, 간단한 시음도 가능하다. 특히 진먼다오의 중심으로 동서를 이은 중심도로는 고량주의 창업자인 후롄 장군이 잘사는 동쪽 사람들과 가난하게 살던 서쪽 사람들을 다 같이 잘살게 하려고 동서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 마산관측소(馬山觀測所)

 

▲ 마산 관측소 입구

 

▲ 마산관측소 벙커에서 보이는 중국땅

 

▲ 마산관측소 벙커 내부

 

진먼 북쪽에 있는 마산관측소에서 중국과의 거리는 불과 2,100m~1,800m에 불과하다. 터널은 지하로 되어 있으며, 터널 총 길이는 174m다. 터널 끝에는 중국을 관측할 수 있는 지하 관측소 벙커가 있다. 관측소로 가는 통로는 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정도의 넓이로 되어 있다.
진먼의 중요한 관광지로 이곳 관측소 벙커 위쪽에는 바라보이는 방향에 있는 중국 지명이 적혀 있다. 콘크리트로 단단히 지어져 있는 벙커와 통로는 암울했던 당시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 사산포진지(獅山砲陣地)

 

▲ 사산포진지(獅山砲陣地), 포신이 외부로 나와있다.

 

▲ 사산포진지(獅山砲陣地), 포사격 퍼포먼스

 

사산포진지 입구에서는 초소 경비병(마네킹)으로부터 거수경례를 받고 입장하게 된다. 지하 갱도로 이어진 지하 포진지는 화강암을 뚫어 만든 굴로 내부로 들어가는 통로가 상당히 넓게 뚫려 있다. 지하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중앙의 통로 좌,우편에 포탄을 쌓아 놓았던 화약고와 작전회의실, 무기고 등이 있고, 더 들어가면 대포가 설치된 사자산포진지가 있다.  대포의 포신은 밖으로 약간 노출되어 있으며, 몸체는 지하에 은닉된 상태로 중국을 겨냥해 설치되어 있다.

매일 포사격 재현 퍼포먼스가 펼쳐져 관광객들에게 당시의 긴박감을 느끼게 한다. 절도 있는 동작으로 마치 군인 같다. 전에는 포 소리가 제법 크게 났는데 지금은 작은 소리가 나 막상 포격 소리에 관광객들의 웃음이 터진다.

 

■ 산후민속문화촌(山后民俗文化村)

 

 

 

▲ 산후민속문화촌(山后民俗文化村)

 

18채의 푸젠성(복건성) 식 전통가옥이 있는 곳이다. 1900년 왕씨 집안이 일본에서 성냥공장으로 많은 돈을 벌어 이곳에 18채의 집을 한꺼번에 지어 친척들에게 나눠주어 같이 살았던 곳. 집 대문 위에 세제서원이라고 써진 집은 왕씨 집안의 집이라고 뜻이라고 한다. 현재 화장실로 사용하고 있는 곳은 당시 마구간이었으며, 집 내부에는 물을 모으는 물 저장고와 어른들 방과 자식들 방, 그리고 사당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요소요소에는 당시의 발전된 시설을 짐작케 한다.  

집 앞 마당에는 반원식의 우물이 있는데 화재에 대비하면서, 화살처럼 반원으로 되어 있는 것은 배워서 출발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큰 아치 형태의 문을 통과해 집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면, 식음료 판매점과 선물 용품을 파는 곳이 있어 이곳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다. 

 


이상인 선임기자 lagolftime@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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