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르포] 평양에서 백두산까지 대한민국 여권으로 간 2021년
2018-10-07 23:42:21 | 편성희 기자

[티티엘뉴스]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남북관계에 장밋빛 희망을 품게 한다. 무엇보다도 최근 산업 구조 및 트렌드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관광업계에 희소식이다. 청와대에서도 문화 및 관광·체육 교류가 우선이라고 공언한 상황이다. 본지는 머지않을 한국인의 북한관광을 주제로 픽션 여행르포를 만들어봤다. 이를 위해 새터민과 실향민을 만났다. 또 북한을 여행한 외국인의 리뷰를 참조했다. 북한의 주요 관광인프라는 트립어드바이저, 위키피디아 등을 참조했다.
 

 

 

 

이스라엘에만 디아스포라가 있지 않았다. 가까이 우리 이웃 중에도 디아스포라가 있다. 약간 강원도와 경상도 사투리를 된소리로 섞어놓은 듯한 말투를 쓰는 실향민, 새터민이 그들이다. 이 땅 어디에서도 마음 편히 존재하지 못했던 나그네들. 오늘 도라산역을 지나는 경평선 열차를 타고 고향을 찾아가는 그들과 평양 관광을 하러 가는 사람들 모두가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들 틈에서 난 여행기자로, 동네 어르신의 유지 아닌 유지를 마음에 담은 배달부로 앉아 있다. 3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군인들에게 대통령 각하라는 호칭을 듣고, 김정은 위원장이 백두산천지에서 손가락 하트포즈를 취한 추석 때, 평소보다 더 긴 한숨을 내 쉰 양반이었다.

 

 

금년 추석도 임진각에 가네. 집에서 상 겨우 차려놓고 답답한 심정을 어쩔 수가 없어서 가려고. 너는 나 같은 실향민 마음 알 수 없어. 쭉 늘어서서 술 한 잔 따라놓고 절 올리고 눈물한번 찔금 흘리고 돌아서는 거야. 그리고 임진각 철조망 넘어 한 번 보고, 철다리 넘어 먼 산 한번 보는 거야. 갈매기는 너훌너훌 넘어가는데 우리는 언제 넘어 가보려나.”

 

 

한강이나 대동강이나 치맥파티

 

입국심사는 상당히 까다롭다. 마치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국제공항이나 가자지구에 들어가는 검색 수준이다. 평양에서 가장 익숙했던 스폿은 주체사상탑이었다. 북한 자료화면을 볼 때마다 스쳐지나갔던 주체사상탑을 직접 보니 평양여행의 체감이 더해진다. 170m 높이로 우뚝 선 주체사상탑 아래로 대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왼쪽부터 주체사상탑 ⓒBelmont Lay, 평양 중앙동물원 ⓒJeremy Koh

 

평양 거리에는 깃발을 든 안내원(가이드)을 따라다니는 중국인, 같은 모자를 쓴 유럽인 단체관광객들이 눈에 띈다. 남북 종전협정 및 북한의 비핵화선언 이후 중국국제항공, 중국남방항공, 아에로플로트 등이 다시 취항해 북한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났다. 체제의 특수성으로 인해 아직까지는 단체관광만 가능한 게 아쉽다. 북한 관광당국이 정해놓은 코스만 다닐 수 있지만 그게 어디인가.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가 북한을 여행하고 있다는 지금이 감사할 뿐이다.

 

북한 최대 규모의 중앙동물원 입구는 대형 호랑이의 입 모양으로 꾸며 놓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하늘을 날아다니는 익룡이 있고 공룡 뼈도 많이 보인다. 270만 ㎡의 자연동물원에서는 다양한 동식물이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어린이를 데려온 평양의 가족들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왼쪽부터 평양 지하철, 지하철 개찰구 ⓒThe Velvet Rocket

 

잠시 체험한 평양의 지하철투어. 교통카드를 이용해 지하철에 탑승했다. 노약자나 장애인, 임산부를 위한 좌석이 보인다. 여성 안내원이 빨간 표지판을 들고 호루라기로 힘차게 신호를 보내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내가 평가하는 평양 투어의 백미는 치맥 파티였다. 어둑해진 저녁 7시부터 대동강변을 따라 노점이 열린다. 일곱 가지의 대동강맥주를 마시며 야경을 즐기는 모습이 남한의 한강 분위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히 치맥(치킨+맥주)을 즐기는 커플과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평양시민들을 보며, 우리는 사실 배달의민족이 아닌 한민족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대동강 야경1 MAPLOGS, 아래는 대동강맥주   

 

낮에는 북한의 현 체제를 실감하게 했던 주체사상탑은 밤이 되니 역할이 달라진 모습이다. 불꽃 모양의 꼭대기에 환한 불이 들어와 대동강변을 불야성의 무대로 만들어 버렸다. 강변 한쪽에서는 예술소조원의 멋진 공연이 펼쳐진다. 보는 사람들도 흥에 겨워 연실 어깨춤을 춘다.

 

평양에서 민족의 성산까지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삼지연공항으로 향하는 고려항공 비행기를 탔다. 두 공항간 거리는 약 370km, 1시간가량 걸렸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이동했던 그 코스, TV로 봤던 그날의 생경한 상황이 떠올랐다. 당시엔 감격스러우면서도 과연 남북길이 열릴까라는 학습된 의심에 이질감을 느꼈었다.

 

평양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항공편은 하루에 두 편씩 주 14회 운항한다. 새로 짓는 국제공항이 열리면 인천, 부산, 베이징, 상하이, 블라디보스토크 등에서 직항 노선이 열릴 전망이다.


 

백두산 부근으로 갈수록 새로 지어 올리는 건축현장을 종종 볼 수 있었다. H건설, D건설 등 우리나라 리조트 사업의 한축을 담당하는 건설사들이 발 빠르게 대북경협 TF팀을 구축해 부지를 확보했다. 하이난, 완다그룹 등 장백산(백두산의 중국식 표현)에 종합리조트를 운영하던 중국 기업이나 유럽, 베트남의 럭셔리 호텔리조트 기업들보다 먼저 북한의 마음을 움직였다. 통일비용 절감, 남한의 실업률 개선 등에 일정 부분 기여한 공로가 크다는 평가이다.

 

스키장과 스파, 골프장, 동식물원, 테마파크 등 4계절 종합리조트를 목표로 1단계 오픈을 앞둔 백두산호텔앤리조트를 둘러보고 숙박했다. 다음날, 이른 새벽부터 출발해 백두산에 오르는 일정을 앞두고 있어서 기사 송고는 미루고 조금 일찍 잠을 청했다.
 

 

 

 

고원을 붉게 달군 백두산 여명

 


아직은 캄캄한 개마고원의 넓은 구릉을 버스 행렬이 완만하게 S자를 그리며 오른다. 백두산이다. 일행은 묵묵히 창밖만 바라보며 말을 아낀다. 조는 사람도 없다. TV로도 보기 힘들었던 낯선 풍경을 담고 싶은 마음으로 똘똘 뭉친 듯하다. 일행 중에는 아직도 불안하다. 워낙 부침이 많았던 남북관계 아닌가.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하며 일정을 치르고 있다고 했다. 사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른쪽 하늘로 구름이 붉어진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백두산의 일출을 본다.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고향 얘기를 하며 눈을 감았다는 그분, 저승길 나서기 전에 이곳에 잠시 들렀으면 좋으련만….

 

어느새 환해진 고원 곳곳에서 보라색 꽃들이 보인다. 보랏빛 꽃 틈에 연노란색 꽃이 눈에 띈다. 두메양귀비. 백두산 자생식물이다.

 


▲왼쪽부터 두메양귀비, 문재인 대통령(청와대 홈페이지)

 

천지에 다가가 쪼그리고 앉았다. 그때 문재인 대통령이 손을 적시고 생수병에 담은 것처럼 말이다. 생수병 두 병에 맑은 물을 가득 채웠다. 다가오는 어르신 제삿날에 천지 생수로 밥 말아 드시라고 전해드려야겠다.

 

 

2021년 평양·백두산= 편성희 기자 psh4608@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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