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의 효심과 애민정신이 살아 숨 쉬는 ‘수원’
수도권 관광 1번지ㆍㆍㆍ볼거리, 먹거리, 체험거리 가득
로데오거리ㆍ전통시장ㆍ통닭거리ㆍ순대타운 인기
2018-12-19 22:00:19 , 수정 : 2018-12-19 22:19:06 | 이상인 선임기자

[티티엘뉴스] 상상 이상으로 다채롭고 즐거움이 가득한 관광도시가 서울 근교에 있는 ‘수원’이다.

 


조명으로 더욱 아름다운 수원화성 팔달문의 모습  

 

‘수원(水源)’은 조선 22대 정조대왕의 효심으로 만들진 효의 도시이며, 백성들을 보다 편리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한 애민의 도시요, 강한 왕권과 개혁 정치 실현을 위한 힘이 넘치는 도시다. 정조대왕의 효심과 애민정신, 그리고 꿈과 힘이 담겨있는 수원은 이젠 세계가 인정하는 세계문화유산의 도시로 발돋움했다.

 

사실, 수원은 수도권과 가까워 관광 목적지로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예상외로 가 볼 만한 관광 명소가 많은 곳이 수원이다. 수원의 대표적인 관광지로는 ▶근세 건축 기술이 빚어낸 걸작, 수원화성 ▶정조대왕이 행차할 때마다 머물렀던, 화성행궁 ▶예술적 감성과 젊음이 넘치는, 공방거리와 로데오거리 ▶다양한 테마를 가진, 박물관과 전시관 ▶수원의 음식문화가 담긴, 수원갈비와 통닭과 순대 ▶도심 속에서 만나는 특별한 수변 공간, 광교호수공원 등 다양한 볼거리, 색다른 먹거리, 독특한 체험거리가 가득하다.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역사와 문화의 고장 수원은 반나절도 좋고, 며칠을 봐도 좋다. 상상 이상으로 다채롭고 즐거운 수원의 관광 명소 몇 곳을 다녀왔다.

 

 


●유네스코(UNESCO)가 인정한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水源華城)

 


수원화성 전도

 

‘수원화성’은 조선 22대 정조대왕이 아버지 장헌 세자의 묘를 수원의 화산으로 옮기면서 화산 아래 지은 성곽과 궁으로 이뤄진 수원을 대표하는 곳이다. 정조가 한양 다음가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축조한 수원화성은 우리나라 성곽 건축 중 가장 자연친화적이고, 과학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장엄하다.

 

벽돌로 아름답고 견고하게 지은 수원화성은 주 출입문인 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 등 4대문을 비롯해 비상시 군사들이 이용했던 5개의 암문, 그리고 물이 흐르는 북수문과 남수문 등 총 11개의 문이 있다. 

 


수원화성의 4대 문 중 정문인 장안문 모습

 

4대 문 중 최고의 문은 장안문이다. 임금이 사는 북쪽 한양을 향해 세워진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은 가장 크고 화려하며, 높은 성곽 출입문 위에 2층 누각으로 되어있다. 장안문은 출입문인 동시에 군사 시설로 장안문 바깥에는 반원형의 성벽인 옹성으로 되어있다. 옹성은 적으로부터 장안문을 보호하고, 진입한 적군을 사방에서 포위하여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군사 시설이기도 하다.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

 


동북공심돈

 


서북공심돈

 

남쪽에는 장안문에 비교해 조금 작지만 화려한 모습의 팔달문이 있고, 동쪽과 서쪽에는 창룡문과 화서문이 있다. 수원화성 성곽을 따라 총 48개의 시설물이 있는데, 그중 군사적인 특징을 잘 나타낸 것이 공심돈이다. 적군을 감시하도록 높은 곳에 설치된 공심돈은 망루와 비슷하지만, 기존 망루보다 더 웅장한 모습의 건축물이다. 화성에는 동북공심돈, 서북공심돈, 남공심돈이 있었는데, 남공심돈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북수문-화홍문

 


동북각루

 

화성에 세워진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는 북수문과 동북각루를 꼽을 수 있다. 화홍문으로 더 잘 알려진 북수문은 물이 흐르는 수로 위에 지어진 것으로 아치와 어우러진 건물이 아름답다. 북수문 위쪽 구릉에는 동북각루가 있다. 각루는 높은 곳에 설치하여 성곽 주위를 감시하던 곳이며, 휴식 공간으로도 사용되어 경치가 뛰어난 곳에 지어졌다.

 


동암문

 


서암문

 

동북각루 동쪽에는 동암문이 있다. 암문은 평상시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적군이 성으로 침입해 오면 군사들이 몰래 성을 빠져나가 적을 공격하거나 필요한 식량과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세운 군사용 출입문이다.

 


봉돈

 

성곽 동남쪽에는 봉돈이 있다. 봉돈은 봉화(연기와 불)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았던 곳으로 서울 남산 봉수대와 같은 기능을 했다. 봉돈에서 밤에는 불을 피워 소식을 전했고, 낮에는 연기로 위급한 소식을 알렸다. 불이나 연기의 숫자에 따라 위급한 정도와 내용이 달랐다.

 

봉돈 하나에서 연기가 나면 이상이 없다는 것이고, 2개는 적군이 나타났다는 것, 3개는 적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 4개는 적이 안으로 들어온 것, 5개 모두에서 연기가 나면 전투가 벌어졌다는 뜻이다.

 


서남암문

 

화성 건설에는 유명한 실학자 정약용이 참여했으며, 건설을 위한 거중기를 만들어 무거운 돌을 옮기는 데 활용했고, 공사가 끝난 후에는 공사 보고서 격인 ‘화성성역의궤’란 책자를 남겨 현재는 수원화성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화성이 세워지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성곽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마을에 쌓은 읍성과 전쟁에 대비하여 건설한 산성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주민들은 읍성에 살다가 적군이 침입하면 삶의 터전을 포기하고 산성으로 이동하여 적과 싸웠다. 하지만 화성은 읍성과 산성을 모두 갖춘 성곽 도시로 조성됐다. 즉 생활 공간이면서 적군을 상대로 전쟁도 치를 수 있었다. 우리 전통 성곽과 서양의 도시 개념을 접목한 새로운 개념의 계획도시였다.

 


서남각루

 

수원화성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자연환경을 활용해 과학적으로 축조된 성이란 평가를 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미국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곳’, ‘2012년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될 만큼 뛰어난 관광지이며, 역사와 문화적 가치도 높은 곳이다.

 

 


●정조대왕의 효심이 그대로 베어 있는 화성행궁(華城行宮)

 


화성행궁 전체 모습

 

화성의 대표적인 곳은 화성 한가운데에 자리한 행궁이다. 행궁이란 임금님이 지방을 둘러보거나 전쟁이나 재난으로 궁궐을 떠나 지방에 머물 때 임시로 사용했던 궁궐을 말한다. 화성 행궁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행궁으로, 정궁 형태로 완성되어 자그마치 600여 칸에 이르렀다.

 


화성행궁의 정문 모습

 

화성 행궁도 정조 때 세워졌다. 효심이 지극했던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옮긴 이후 1800년(정조 24년) 1월까지 12년간 13차례 걸쳐 수원에 내려왔으며,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렀다.

 

1789년(정조 13년) 건립 당시 21개 건물 576칸 규모의 정궁(正宮) 형태로 국내 행궁 중 가장 큰 규모였으며,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깃들어 있다. 정조는 아버지 세도 세자의 무덤을 이 지역으로 옮긴 후 여러 차례 참배했는데, 그때마다 행궁에 머물면서 다채로운 행사를 치렀다. 화성 행궁에 가면 정조가 어머니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던 장소와 정조가 업무를 보았던 곳, 옛날 과거 시험을 치렀던 현장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성곽 건축 중 가장 독보적인 건축물로 우아하고 장엄하다.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원형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으나, 다행히도 ‘화성성역의궤’를 토대로 1975년부터 5년에 걸쳐 대부분 원형에 가깝게 복원됐다.

 

화성행궁은 평상시에는 화성유수부 유수가 집무하는 관청으로도 활용됐다. 박물관에 보관된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되어있는 ‘화성행궁’ 현판은 금색이 보이는데 이는 ‘필질금자’라고 하며, 조선 왕실 궁궐 건물 현판 중에서는 가장 최상급 현판으로 이는 행궁의 격이 다른 곳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낙남헌을 제외한 모든 시설이 일제의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 정책으로 파괴됐다. 1980년대 말, 뜻있는 지역 시민들이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적극적인 복원운동을 펼친 결과 화성축성 200주년인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됐으며, 2003년 482칸의 1단계 복원이 완료되어 일반에게 공개됐다. 현재 2단계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다.

 


# 신풍루(新豊樓)

 


신풍루 모습


신풍루는 화성행궁의 정문이다. 1790년 정조 14년에 누문 6칸을 세우고 진남루(鎭南樓)라 했다. 1795년 정조는 신풍루로 고치라고 명하여 조윤형이 다시 편액을 쓰게 했다. '신풍'이란 이름은 일찍이 한 고조가 '풍 땅은 새로운, 또 다른 고향'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조에게 있어 화성은 고향과 같은 고장이라는 의미로 편액을 걸게 한 것.


1795년 정조가 행차했을 때 신풍루 앞에서 정조가 친히 화성부의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굶주린 백성에게는 죽을 끓여 먹이는 진휼 행사를 베풀기도 했다. 가운데 문은 어도(御道)로, 임금만 지나갈 수 있다.

 


# 좌익문(左翊門)

 


좌익문


좌익문은 내삼문(內三門)을 바로 앞에서 도와 행궁을 지키는 중삼문(中三門)으로 1790년 3칸 규모로 완공하였다. 행궁의 본전인 봉수당(奉壽堂)에 이르는 두 번째 문으로 중양문(中陽門) 앞에 있다. 문의 이름인‘좌익(左翊)’은 '곁에서 돕는다'라는 뜻이며, 편액은 정조의 명으로 정동준(鄭東浚)이 썼다. 남쪽 행각의 끝은 외정리소와 연결된다.

 

 

# 중양문(中陽門)

 


중양문


중양문은 궁궐 건축의 삼문 설치 형식에 따라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을 바로 앞에서 가로막아 굳게 지키는 역할을 하는 내삼문(內三門)이다. 1790년 정조 14년에 완성됐다. 가운데 정문과 좌우의 협문이 있고 좌우로 행각을 두어 출입을 통제했다. 1795년 봉수당 진찬례 때 봉수당 앞으로는 정조와 혜경궁을 비롯한 왕실의 종친과 대신들이 자리했다. 중양문 밖으로 대문을 활짝 열어 승지와 사관, 각신이 반열을 이루었던 바 있다.

 


# 봉수당(奉壽堂)

 


봉수당


봉수당은 화성행궁의 정전이자 화성 유수부의 동헌 건물로 장남헌(壯南軒)이라고도 한다. 봉수당은 정조의 성품으로 ‘전’자를 붙이면 건물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당’자를 붙여 건물의 격은 조금 낮췄지만, 사용하기 좋은 건물로 만들도록 했다.

 

정조는 1795년에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진찬례'를 이 건물에서 거행했다. 진찬례는 조선 최대의 궁중 행사로 당시 커다란 화젯거리였으며, 왕실의 종친과 신하들 외에도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대표적인 행사가 1795년에 치러진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다.

 

정조는 1795년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념하는 진찬연을 열었다. 정조는 혜경궁의 회갑연을 성대하게 치렀으며, 이에 앞서 행궁 각 전각의 이름을 회갑연에 걸맞게 고쳤다. 즉 정당(正棠)인 장남헌은 봉수당(奉壽堂)으로 고치고 봉수당에 연접해서 건물 뒤에 모친이 연회 시 거처할 수 있는 전각을 지어 장락당(長榴堂)이라고 했다.

 

정조는 혜경궁의 장수를 기원하며 '만년(萬年의 수(壽)를 받들어 빈다'라는 뜻인 봉수당이라는 당호를 지어 조윤형이 현판을 쓰게 했다. 또 혜경궁 회갑연을 마치고 9년 뒤 1804년에 혜경궁의 70수연(壽宴) 진찬을 봉수당에서 갖겠으니 사용할 물건을 잘 보관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긴 수명을 봉헌한다는 ‘봉수’나 오래도록 복락을 누린다는 ‘장락(長榴)’은 모두 회갑을 맞은 정조대왕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이름이다.


봉수당은 1789년 정조 13년 8월 19일 상량하고 9월 25일 완공됐다. 그 후 일제강점기에 파괴된 봉수당은 1997년 복원됐다.

 

 

# 화령전(華寧殿)

 


화령전


화령전(華寧殿)은 정조대왕의 어진(초상화)을 모셔놓은 영전(影殿)이다. 정조대왕의 아들인 순조는 49세로 일생을 마친 아버지 정조대왕을 위해 1801년 순조 원년 행궁 옆에 화령전을 건립했다. 정조의 초상화를 모셔놓은 영전은 보통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위를 모신 사당과는 구별되는 건물로, 선왕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살아있을 때와 같이 추모했다. 화성에서 ‘화’자와 ‘시경’의 ‘돌아가 부모에게 문안하리라[歸寧父母]’라는 구절에서 ‘령’자를 따서 이름 붙였다. 화령전은 정조대왕의 뜻을 받들어 검소하면서도 품격 있게 만든 조선시대의 대표적 영전이다.

 


# 낙남헌(洛南軒)

 


낙남헌


하성행궁에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시에도 파괴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된 유일한 건축물이 낙남헌이다. 1794년 정조 18년에 완공된 낙남헌은 후한의 광무제가 낙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궁궐 이름을 '남궁(南宮)'이라 한 것에서 따온 이름이다.


1795년 정조 19년 을묘원행 때 각종 행사가 이곳 낙남헌에서 치러졌다. 정조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념하여 군사들의 회식과 함께 61세 된 수원부 백성이 모두 참여한 양로잔치를 이곳에서 열었다. 이때 자신과 백성의 음식 수를 같게 했고, 참여한 백성들에게 지팡이와 비단과 기름종이를 하사했으며, 남은 음식을 모두 싸 가지고 가게 하는 등 백성에 대한 사랑을 보여 줬다. 또한, 특별과거시험을 치러 문과 5명과 무과 56명을 선발했는데 급제자에게 합격증을 내려 주는 행사도 이곳 낙남헌에서 진행했다.

 

 


유여택

 


경륭관

 


장락당

 


복내당

 


노래당

 


득중정

 


집사청

 


북군영

 


남군영

 


서리청

 


비장청

 


미로한정

 


외정리소

 
이 외에도 화성행궁 내에는 ▶평소에 화성 유수가 기거하다가 정조가 행차 시에 머물며 신하들을 접견하는 건물로 사용했던 유여택(維與宅) ▶장락당의 바깥문으로도 사용했던 부속건물 경룡관(景龍館) ▶혜경궁의 침전인 장락당(長樂堂) ▶행궁의 내당으로 정조가 행차 시에 머물던 곳인 복내당(福內堂) ▶정조가 왕위에서 물러나 노후생활을 꿈꾸며 지었다는 건물, 노래당(老來堂) ▶활을 쏘기 위해 세운 정자, 득중정(得中亭) ▶잡다한 사무를 보던 집사들이 사용하던 건물, 집사청(執事廳) ▶장용영 외영의 기마병이었던 친군위(親軍衛)가 좌, 우열로 각 100명씩 입직숙위하는 건물, 북군영(北軍營) ▶북군영과 같이 장용외영 친군위 200명이 살면서 지키는 건물, 남군영(南軍營) ▶문서의 기록 및 수령, 발급을 담당하는 아전인 서리들이 사용하는 건물, 서리청(書吏廳) ▶화성 유수부의 비장들이 사용하던 건물, 비장청(婢將廳) ▶행궁 후원(後苑)에 만든 정자, 미로한정(未老閒亭) ▶역대 임금이 행차할 때 행사를 준비하는 관청, 외정리소(外整理所) 등이 있다.

 

 


● 용주사(龍珠寺)


용주사

 

용주사는 854년 신라 문성왕 16년 갈양사로 창건됐다. 정조대왕은 경기도 양주 배봉산(서울 시립대 뒷산)에 있던 부친 사도세자의 묘를 천하제일의 길지라는 이곳 화산으로 옮겨와 현륭원이라 했다. 정조대왕은 비명에 숨진 부친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보경스님을 전국 8도 도화주로 임명하고 정조대왕의 지원과 백성들의 시주로 7개월 만인 1790년 용주사를 새로 건립했다.

 


용주사 입구

 

대웅본전 낙성식 전날 밤 정조대왕의 꿈에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고 하여 절 이름을 갈양사에서 용주사로 바꿨다. 그 후 용주사는 효행의 본찰로 불심과 효심이 한데 어우러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호성전은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의 위패를 모신 전각으로 유명하다.
다른 사찰과 달리 용주사에 홍살문이 있었던 이유는 정조대왕이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용주사를 창건하고 호성전을 건립하여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이다. 지금의 홍살문의 2008년 복원된 것이다.

 


용주사 입구의 홍살문


홍살문은 왕실의 정면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붉은 칠을 한 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기둥을 연결한 보에 붉은 살을 쭉 박은 형태로 세워 경의를 표하는 곳이란 의미를 가진 문이다.

 


삼문

 


천보루

 


천보루와 5층 석탑

 


대웅보전

 


호성전

 


부모은중경탑

 


관음전

 


범종각

 

용주사에는 ▶불법을 보호하고 악귀의 출입을 막기 위해 세워진 사천왕문 ▶왕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에 경건한 마음을 지니도록 하기 위한 홍살문 ▶용주사가 소장하고 있는 격조 높은 문화재를 전시하는 효행박물관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궁궐 양식의 삼문 ▶궁궐 건축과 유사하며, 부처님 사리 2과가 봉안된 천보루와 5층 석탑 ▶1790년 창건 당시 지어졌으며, 보물 제1942호로 지정된 대웅보전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정조대왕과 효의왕후의 위패를 모신 호성전과 부모은중경탑 ▶스님들의 요사로 쓰이고 있는 나유타료 등을 비롯해 ▶마수리실 ▶천불전 ▶시방칠등각 ▶지장전 ▶범종각 ▶요사채 ▶관음전 ▶효행문화원(템플스테이 전용관) ▶전강대종사 사리탑 ▶스님들의 수행정진이 계속되고 있는 중앙선원 등이 있다. 

 

 


● 행궁동 공방거리


행궁동 공방거리의 모습

 


행궁동 공방거리의 모습

 

화성행궁 광장에서부터 팔달문으로 이어지는 행궁로에 있는 행궁동 공방거리는 잔잔한 재미로 가득하다. 화성행궁에서 팔달문에 이르는 약 500m 길 좌우로 이어진 공방거리는 수원의 인사동이라 불린다. 각양 각색의 공예품점 30여 개소와 맛집, 갤러리 카페 50여 개소가 모여 있다. 다양한 공예품들을 판매하고 있고, 도자기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거리도 즐길 수 있다.

 

 

●통닭거리

 


수원천 주변 통닭거리 입구 모습

 


통닭거리에 있는 통닭집의 모습 

 

1970년대부터 수원천 주변으로 하나둘씩 들어서면서 시작된 통닭거리는 이제 수원 관광에서 꼭 들러봐야 할 먹거리 촌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수원에서 통닭을 맛보지 않으면 제대로 된 즐거움을 놓치는 것. 통닭의 고소하고 달콤함, 그리고 시원한 맥주로 이어지는 치맥의 향연은 수원의 먹거리 중 먹거리다.


팔달로 100m 거리에 약 10여 개의 통닭 전문점이 있다. 신선한 닭을 대형 가마솥에서 튀겨 내 고소하고 바삭한 식감을 자랑한다. 가격대비 양이 많아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 각지의 관광객들로 언제나 붐비고 있다.

 

 

 

 


● 수원시티투어


수원을 편안하게 관광하고 싶다면, 수원시티투어가 그만이다. 전문 해설사까지 동행해 주요 코스에 대한 설명까지 곁들여 깊이 있는 여행이 된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면 된다. 영어, 일어, 중국어가 가능하다.
코스는 수원화성을 중심으로 돌아보는 1코스, 광교호수공원이 포함된 2코스, 용건릉과 용주사가 포함된 3코스 등 3개 코스가 있다.

 

#1코스 : 수원·화성 코스
수원, 화성코스는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월요일 휴무) 매일 09:50, 13:50분 2차례 운행되며, 약 3시간이 소요된다. 단, 3월~10월은 금, 토 미운행.
운행 구간 : 수원관광정보센터 -> 해우재 -> 화서문, 장안문(경유) -> 화성행궁(무예24기 공연관람) -> 화홍문(방화수류정) -> 연무대(국궁체험) -> 수원화성박물관 -> 수원관광정보센터로 되돌아 오는 코스다.
요 금 : 성인 11,000원, 학생 및 군인 8,000원, 경로 5,000원, 미취학아동 4,000원.

 

# 2코스 : 수원·광교 코스 
수원, 광교코스는 3월부터 10월까지 매주 금, 토요일에 운행된다. 매일 09:50~17:00 1일 1회 운행되며, 약 7시간이 소요된다.
운행 구간 : 수원관광정보센터 -> 해우재 -> 화성행궁(무예24기 공연관람) -> 지동시장(중식) ->화홍문(방화수류정) -> 수원화성박물관 -> 광교호수공원 ->수원관광정보센터로 되돌아 오는 코스다.
요 금 : 성인 12,000원, 학생 및 군인 9,000원, 경로 6,000원, 미취학아동 5,000원.

 

# 3코스 : 수원·융건릉 코스
수원, 융건릉 코스는 매주 일요일 09:30~17:00, 약 7시간 30분 소요된다.
운행 구간 :  수원관광정보센터 -> 화서문, 장안문(경유) -> 화홍문(방화수류정) -> 화성행궁(무예24기 공연관람) -> 연무대(국궁체험) -> 지동시장(중식) -> 팔달문(경유) -> 융·건릉 -> 용주사 -> 수원관광정보센터로 되돌아 오는 코스다.
요 금 : 성인 14,900원, 학생 및 군인 12,900원, 경로 10,900원, 미취학아동 8,900원.

 

 


● 수원시가 추천하는 대표적인 코스


수원시가 추천하는 수원관광은 하루코스, 색다르게 즐기는 수원화성 코스, 동수원 추천 1, 2코스, 서수원 추천 코스, 수원시청 주변 역사와 문화 테마 코스 등이 있다.

 

# 하루 코스


수원역 출발(09:00) -> 팔달문(09:30) -> 화성행궁(10:00) -> 화성행궁 정문 신풍루(11:00) -> 행궁동 공방거리(11:30) -> 수원전통시장12:00) -> 화성행궁 주차장에서 팔달산으로 이동(12:30) -> 효원의 종 타종(12:50) -> 서장대(13:10) -> 화서문, 서북공심돈(14:00) -> 장안문(14:30) -> 화홍문(북수문)(15:00) -> 방화수류정(동북각루)(15:30) -> 연무대(16:00) -> 창룡무(16:30) -> 봉돈(17:30) -> 통닭거리, 지동시장 순대타운(18:00)
▷구글 맵에서 좌표를 입력하면 해당 장소를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색다르게 즐기는 수원화성 코스


화성행궁 광장(오전) ->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12:00) -> 생태교통마을(13:00) -> 장안문(14:30) -> 수원전통문화관(15:00) -> 대안공간 눈(행궁동 벽화마을)(15:30) -> 수원화성박물관(16:30) -> 통닭거리(18:00)

 

# 동수원 추천 코스


1코스(동수원 IC) : 수원광교박물관(10:00) -> 수원박물관(11:30) -> 창룡문(수원화성)(13:00) -> 봉녕사(14:30) -> 광교저수지(광교공원, 광교산)(15:30) -> 수원갈비(18:00)
2코스(광교상현IC) : 광교호수공원(10:00) -> 지도박물관(13:30) -> 축구박물관(15:00) -> 창룡문(수원화성)(16:30) -> 수원갈비(18:00)

 

# 서수원 추천 코스


서수원IC -> 축만제(서호공원)(10:00) -> 만석거(만석공원)(11:30) -> 수원시미술전시관(13:00) -> 해우재(14:30)

 

# 수원시청 주변 역사와 문화 테마 코스


수원시청역(분당선) -> 국제자매도시 테마거리(10:00) -> 나혜석 거리(11:00) -> 월화원(중국 전통공원)(13:00) -> KBS 수원드라마센터(14:30) -> 삼성이노베이션뮤지엄(16:00) -> 수원시청역 쇼핑가에서 저녁식사(18:30)

 

 


●수원화성 둘러보는 5가지 코스

 

▷수원화성 전체 둘러보기
팔달문 -> 팔달문관광안내소 -> 서장대 ->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 장안문(수원화성 정문) -> 화홍문 -> 방화수류정 -> 연무대와 동북공심돈 -> 창룡문 -> 동일포루 -> 봉돈 -> 동남각루 -> 남수문 -> 순대타운과 통닭거리 

 

▷수원화성 골라보기
서북공심돈(서장대에서 화서문 쪽으로 성곽따라 도보 약 25분) -> 방화수류정(동북각루)(연무대 주차장에서 장안문 방향으로 성곽따라 도보 약 15분) -> 화홍문(북수문)(연무대 주차장에서 성곽따라 도보 약 17분) -> 연무대(동장대)(연무대 주차장 건너편 도보 2분)

 

▷수원화성 4대문 둘러보기
팔달문(화성행궁에서 도보 약 6분 거리) -> 화서문(화성행궁에서 생태교통마을 거쳐 도보 약 15분 거리) -> 장안문(화성행궁에서 수원전통문화관 거쳐 도보 약 15분 거리) -> 창룡문(연무대 주차장 건너편 위치 도보 2분 거리)

 

▷화성어차 타고 유람하기
수원화성을 가장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방법으로 수원화성 내, 외곽을 돌며 순환한다.
화성행궁(매표 탑승) -> 팔달문 -> 전통시장 -> 수원천 -> 통닭거리 -> 수원화성박물관 -> 연무대(매표 탑승) -> 화홍문 -> 장안문 -> 화서문 -> 생태교통마을 -> 화성행궁

 

▷수원화성을 플라잉수원 타고 한눈에 보기 
계류식 헬륨 기구인 플라잉수원을 타고 높이 70~150m까지 올라간다. 흔들림이 거의 없어 무섭지 않다. 최대 20명까지 탑승 가능하며, 풍속 13m/sec 이상 시 운행이 중단된다. 수원시와 수원화성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야간에 탑승하면 밤하늘에 아름다운 조명으로 불든 수원화성의 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


하절기 : 평일 11:00~22:00 / 주말 09:30~22:00
동절기 : 평일 10:00~20:00 / 주말 10:00~21:00
요금 : 성인 18,000원. 청소년 17,000원. 어린이 15,000원. 수원시민 12,000원

 


한편, 장엄하고 우아한 수원화성을 보려면, ‘수원화성 전체관광’이 좋겠지만, 사정에 따라 몇 곳을 선택해 보는 것도 좋겠다.

 

수원화성 = 이상인 선임기자 lagolftime@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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