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한그릇 가득 먹고 오다 - 통영 도다리 쑥국
유난히 봄을 타는 필자에게는 페이스북은 작은 소통의 창구이다. 새벽녘 포스팅에 댓글을 주고받다가 통영(統營) 사시는 형님이 한마디 불쑥 내민다. ‘니 통영 놀러온나.’ ‘가도 되요?’ ‘퍼뜩 첫차 타고 온나’
그렇게 시작된 통영여행, 강남터미널에서 아침 차를 타고 내려간 통영, 현지 사람들은 통영을 지역 방언으로 토영이라고 부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통영의 모습은 봄날 그 자체이다. 통영은 또한 충무김밥의 원조지역이다. 지역 버스터미널 안 분식집에서도 충무김밥을 판다. 관광객들이 짝을 지어 밖으로 나간다. 터미널 옆에 있는 관광안내소에는 통영을 즐기기 위해 방문한 관광객들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본다. 순식간에 사람들은 사라지고 낮으로 가는 햇빛은 따듯한 봄날의 기운을 전해준다.
새벽녘에 나와 아침밥도 제대로 못먹었다. 통영 형님이 대뜸 ‘통영왔으니 도다리 먹어야재?’ 하신다. 새봄의 전령사로 유명한 통영의 도다리 쑥국이다. 도다리 쑥국은 양념에 진한생선 국물 맛이 나는 매운탕이 아닌 담백한 쑥향이 나는 맑은국이다. 부들부들한 약쑥과 함께 끓여낸 도다리쑥국은 이곳 경남 통영의 별미다.
▲ 새봄의 별미 도다리 쑥국
겨우내 금어기인 산란기를 끝내고 부드러운 속살을 가진 자연산 도다리에 통영 인근의 섬에서 나는 신선한 쑥과 함께 넣어 끓여내는 국으로 도다리의 부드러운 육질과 조금 강하긴 하지만 향긋한 쑥 냄새가 여행자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대표적인 봄철 음식이다. 도다리 쑥국에 사용되는 해쑥은 한산도, 소매물도, 용초도, 비진도, 연대도, 연화도, 욕지도, 추도, 사량도 등 통영 앞바다 섬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큰 것들이라 부드럽고 향기가 짙다고 한다.
잠시의 기다림 끝에 푸른 색을 가진 쑥국이 나왔다. 쑥의 강한 향기가 바다향과 함께 국물에 가득하다. 이게 얼마나 맛있을까 했는데 국물 한수저를 입에 넣고나니 저절로 ‘달다’ 라는 말이 나온다. 설탕이나 감미료를 넣어 나는 단맛이 아닌 신선한 생선과 쑥 그리고 무가 어우러진 시원한 단맛이다. 그리고 뜨겁지만 시원한 국물 맛은 속을 확 풀어준다. 어째 이런 국물맛이 있을까 감탄하면서 반찬을 먹어본다. 홍합 말린 것과 파래무침, 말린 갈치 조림, 김치, 꼴뚜기 젓 그리고 멸치볶음 반찬 하나하나도 입맛에 맞는다.
도다리쑥국 한 그릇으로 통영에 와야 할 이유를 다 찾았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봄철의 별미 도다리쑥국이 덩달아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이제는 귀한 음식이 된 도다리 쑥국은 전라도의 홍어 애탕에 비견되는 경남의 대표적 봄철 음식으로 봄철에 3그릇만 먹으면 보약이 따로 없을 정도라 한다. 통영사람들에게 ‘봄은 도다리쑥국을 먹어야 비로소 온다’. 고 말할 정도이다. 사실 나는 광어나 넙치, 가자미를 구분하지 못한다. 광어가 왼쪽으로 눈이 몰려있는 반면 도다리는 오른쪽에 몰려있다. 도다리를 회로 먹으려면 여름이 제철이고 봄에는 산란을 마치고 나서 살이 차지 않아 쑥국용으로 먹는다고 한다. 살이 안찼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고 맛있다.
통영에서 미륵산 케이블카를 제외하고 전망이 좋은 곳을 꼽으라면 단연 통영시민문화회관이다. 한쪽으로는 통영항구가 한눈에 보이고 바다건너 음악당쪽의 시원한 다도해가 보인다. 부두에는 해양경찰소속의 함정이 정박한 것이 보인다. 뒤에는 해송들이 들어차있다. 해송 밑 벤치에는 젊은 연인이 붙어 앉아 둘만의 대화를 속삭이고 있다.
▲통영시민문화회관 전경
봄은 사랑의 계절이 맞는 것 같다. 바다가 보이는 길을 따라 빨간 동백꽃이 흐르러지게 핀 길을 호젓하게 걷다보면 통영이 왜 아름다운지 절로 알게된다. 동피랑 마을이나 통영의 유명한 곳들을 주말이면 사람들이 너무 많다. 때로는 조용하게 있고 싶을 때 그리고 바다를 보고 싶을 때 이곳을 방문하면 좋을 것 같다.
박경리 기념관
▲ 박경리 기념관
통영 출신의 토지로 유명한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기념관이 통영시 산양읍에 있다. 통영시내에서 차량으로 20여분 가면 도착을 한다. 이 기념관이 있는 인근이 박경리 선생의 고향 통영을 배경으로 한 소설 ‘김약국의 딸들’ 의 주무대이기도 하다. 인근에 간창골, 서문고개, 북문안, 갯문가 등의 소설 속의 지명들이 그대로 살아있기도 하다. 전시관 내부에는 박경리 선생의 육필원고와 집필실이 재현되어 있으며 박경리 선생의 일대기 연보들이 전시되어 있어 박경리 선생의 흔적을 기릴 수가 있다.
▲ 박경리 기념관 내부
‘생명의 아픔’ 이라는 글에서 박경리 선생은
사랑은
가장 순수하고 밀도 짙은
연민이에요
연민
불쌍한 것에 대한 연민
허덕이고 못먹는 것에 대한 설명없는 아픔
그것에 대해서
아파하는 마음이
가장 숭고한
사랑입니다.
사랑이 우리에게 있다면
길러주는
사랑을 하세요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이 펼쳐진 바다가 멀리 보인다.
특히 기념관에서 멀리 보이는 바다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장군의 학익진 전법으로 대승을 거둔 한산대첩의 전승지이기도 하다. 박경리 기념관 인근에 있는 묘소는 박경리선생을 기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생전 무덤에 아무런 장식을 하지 말라던 박경리선생의 묘소에는 최근에 시에서 설치한 상석이 있을 뿐 아무런 표시가 없다. 그러나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단풍으로 아름답게 물드는 소설가의 무덤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 박경리 시 산다는 것 중
무덤에 올라가는 길에 있는 급수대에 있는 싯구가 눈에 띤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 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산다는 것 중-
▲박경리 선생의 묘
수원과 전주에서 왔다는 중년의 여성분들은 박경리 선생의 작품의 배경을 보고 싶어왔다고 한다. 그만큼 한사람의 소설가는 한 시대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박경리 이외에도 김춘수시인, 청마 유치환, 그리고 극작가 유치진, 화가 전혁림, 작곡가 윤이상 등 인구 14만의 소도시에 이런 많은 예술가가 있다는 것은 통영에 흐르는 큰 예술혼이 아니었을까?
권기정 편집부장 john@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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