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망해사(望海寺), 석양이 아름다운 역사 깊은 사찰
진묵대사와 석화에 대한 일화가 담겨있어
430년 된 낙서전과 팽나무 두 그루 보존
2020-10-04 18:21:50 | 이상인 선임기자

[티티엘뉴스] 전국에 많은 사찰이 있지만, 김제 망해사는 다른 사찰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망해사는 430여 년 전 진묵대사가 낙서전을 세우며 시작된 사찰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아름다운 사찰이다.




▲망해사 전경이 담긴 파노라마 사진 


대부분 사찰은 깊은 산속 또는 몇 곳은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있지만, 망해사는 강과 바다를 동시에 바로 볼 수 있는 곳에 있어 김제를 찾는 관광객들이라면 꼭 한번 둘러봐야 할 코스로 손꼽힌다. 특히 해가 질 무렵 이곳을 찾는다면 단연 최고의 일몰 광경을 담을 수 있다. 




▲망해사 경내에 있는 대웅전 극락전(좌측)과 낙서전(우측) 모습 


김제 서북방 약 27km 지점에 있는 망해사는 진봉산 능선을 따라 진봉망해대(전망대)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다 우측 도로를 따라 약 30m 정도 내려가면 망망대해 서해의 고군산열도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사찰로 내려가는 길목 우측으로는 해우소(화장실)가 휑하게 홀로 서 있다. 해우소를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고즈넉한 분위기에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마음이 숙연해 지면서 부처님을 떠올리며 기도를 하게 될 것 같다. 




▲망해사 요사채에서 바라본 모습. 좌측 낙서전과 우측으로 종각루가 보이고, 전면으로는 만경강과 그 너머로 서해가 보인다


사찰 좌측으로는 산으로 이어져 있고, 우측은 강과 바다가 내려다보이며 탁 트인 모습으로 다가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확 뚫리는 듯하다. 다른 사찰과 달리 바닥에 잔돌이 깔려 있어 약간 차가운 느낌이 들지만, 벼랑 끝을 따라 낮은 기와 담장 너머로 보이는 강과 바다 풍광은 어느 사찰에서도 만날 수 없는 멋진 모습을 선사해 주고 있다. 사찰 입구 중앙에는 커다란 나무가 우뚝 서 있는데 망해사 스님들이 기거하는 좌측의 요사채를 지키면서 바닷바람도 막아 주듯 한 모습이다. 요사채는 바다가 보이는 집이란 뜻으로 청조헌이라 부른다. 




▲망해사의 요사채 모습. 바다가 보이는 집이란 뜻의 청조헌이라 부른다


망해사는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백제 의자왕 2년인 642년 부설거사가 이곳에 사찰을 지어 수도한 것이 시초다. 그 뒤 중국 당나라 승려 중도법사가 중창했으나 무너져 바다에 잠겼다. 이후 조선 시대인 선조 22년 1589년 진묵대사가 망해사 낙서전(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28호)을 세웠고, 1933년 김정희 화상이 보광전과 칠성각을 중수했다. 




▲망해사 요사채 앞에서 바라본 모습. 좌측에 종각루와 중앙에 5층 석탑이 보이고, 앞으로 만경강과 서해를 볼 수 있다.


전면에 대웅전인 극락전이 위치해 있고 극락전 우측으로 망해사의 역사를 담고 있는 낙서전이 낮은 기와 담장에 싸여 잘 보존되어 있다. 낙서전 바로 앞에는 진묵대사가 낙서전 창건 기념으로 식수했다는 팽나무(도지정 기념물 제114호) 두 그루가 오랜 세월을 알 수 있을 듯한 모습으로 웅장하게 서 있다. 대웅전 좌측으로 돌계단을 올라가면 사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삼성각이 자리하고 있다. 




▲망해사 입구에서 바라본 모습. 좌측이 요사채(청조헌), 정면에 5층 석탑과 종각루가 보인다


낙서전은 1933년과 1977년 중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면이 ㄱ자형 건물로 팔작지붕에 건물 한쪽에는 마루를 놓고 다른 편에는 방과 부엌이 딸려 있어 과거 법당 겸 스님의 거처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19년 원형복원을 위한 내부 해체보수 불사를 하면서 현재는 석가모니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신 법당 겸 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모양이 불규칙한 나무기둥으로 세워 자연미를 짙게 풍긴다. 




▲망해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삼성각 모습.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게 되어 있다




▲요사채 앞에서 바라본 종각루의 모습 


망해사에는 굴, 일명 석화에 대한 일화도 전해져 내려온다. 망해사를 창건한 진묵대사가 바닷가가 바로 앞에 있어 해산물을 접한 기회가 많았는데 하루는 굴을 따서 먹으려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왜 스님이 육식을 하느냐며 시비를 걸자 진묵스님은 이것은 굴이 아니라 석화(바위에 핀 꽃)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석화의 어원이 진묵대사와 얽혀 있다고 전해진다. 




▲망해사 5층 석타의 모습 


망해사를 중창한 진묵대사(震默大師)는 조선 중기의 고승으로 김제군 만경면 화포리에서 조선 시대 명종 17년인 1562년에 태어났다. 진묵대사가 태어난 화포리란 곳은 옛날의 불거촌(佛居村)으로, 부처가 살았던 마을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대사의 이름은 일옥(一玉)이고 호는 진묵(震默)이다. 신통력을 가지고 행했던 18가지의 이적에 대한 기록이 초희선사의 진묵조사유적고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망해사를 중창한 큰스님 진묵대사(震默大師)의 모습. 대원사 진묵영정 (대한불교조계종 원광사 제공)


▲망해사 입구에서 바라본 모습. 좌측 건물이 스님들이 거처하고 있는 요사채인 청조헌이다


7세에 출가하여 완주 봉서사에서 불경을 읽었는데, 한 번 읽으면 곧 암송하고 내용을 통달 해 따로 스승을 두지 않았다. 효가 지극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무자손 천년향화지지(無子孫 千年香火之地)인 유양산에 묘를 정해 만인의 참배를 받도록 했다. 석가의 소화신(小化身)으로 추앙받았던 조선의 거승이었던 진묵대사는 인조 11년인 1633년 10월 28일 72세에 봉서사에서 입적했다.  




▲망해사 입구에서 강과 바다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 앞쪽으로 흐르는 만경강과 멀리 새만금이 흐릿하게 보인다. 날씨가 좋은 날은 서해에 있는 섬도 보인다는데 날씨가 흐려 확인은 하지 못했다. 이 방향으로 보이는 석양이 일품이다


지금의 망해사는 대웅전, 삼성각, 범종루, 요사채로 구성된 작은 규모의 사찰이지만, 부도를 보면, 지금보다는 규모가 큰 사찰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찰에서 서해의 섬들을 바라볼 수 있는 망해사,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아름다운 일몰 전경 하나만으로도 망해사를 다시 찾고 싶어지게 한다. 1986년 9월 8일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28호 지정. 


▶위치 :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10길 94, (진봉면)

 


김제 망해사 = 이상인 선임기자 lagolftime@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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