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기행 (1) 튀니지안 블루를 찾아서
2016-09-03 23:00:35 | 권기정 기자

Ⅰ. 튀니지안 블루를 찾아서

1. 1 튀니지? 아프리카야 유럽이야?

 

튀니지를 간다는 말에 “거기 아프리카야?”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응, 아프리카 북부지역이고 아랍 같이 이슬람을 믿는 지역이야”

뭔가 부족하다. 한마디로 정의가 되지 않는다.

“거기 뭐가 유명한 관광지야?”

“응, 고대 카르타고와 로마 유적지가 있어”

“그럼 재미없겠네”

“헉....”

 

내가 설명을 잘 못했나 하는 생각에 ‘뭐가 문제지?’ 하고 한참을 생각했다.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는 나라, 튀니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 나라를 한마디로 설명하려 했으니 당연히 재미없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튀니지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사람들에게 ‘지중해’는 말로만 듣던, 여행하기에 설레는 지역이다. TV에서 나오는 여행관련 프로그램은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을 마치 하늘과 바다와 사람이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곳으로 묘사하고 있기에 꼭 한번 가보고 싶게 만드는 강력한 소망을 가지게 만든다.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 언제나 나오는 비행기가 지도 위를 날라가면서 어디인지 소개하는 장면이 식상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만큼 확실하게 어디로 가는지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드디어 비행기를 타고 지중해의 한가운데 있는 튀니지를 찾아가본다. 지중해 연안의 눈부신 한여름의 햇볕과 고대로 부터의 찬란한 역사를 가진 튀니지. 미국의 뉴욕 타임즈는 튀니지를 전 세계 여행지 중 꼭 가보아야 할 곳 중에서 3위에 올렸을 정도로 관광지로서 매력적인 곳이다. 하긴 1위는 기억이 나지 않았어도 튀니지가 3위를 했다는 말에 괜히 마음이 두근거린다.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한 이후 아프리카인지 유럽인지 구별이 안가는 나라. 지중해를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몰타(Malta)와 시칠리아(Sicily)가 바로 위에 있고 옆으로는 리비아와 알제리가 옆에 있는 작은 나라. 많은 사람들은 튀니지를 가르쳐 ‘머리는 유럽에, 가슴은 아랍에, 그리고 다리는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 라는 표현으로 튀니지를 말하고는 한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 땅에 살지만 생활은 아랍을 대표하는 이슬람의 풍습을 따르고 있고 이들이 닮고 싶어 하는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뉴스에서 보도되는 과격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판을 치는 일부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와 달리 종교적인 규율이 상대적으로 느슨하다. 도심에서는 모스크에서 기도를 알리는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치는 ‘아잔(Azan)’ 소리도 모스크 옆에 가야 들리지 잘 들리지 않는다.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 시간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지만 그 소리에 맞추어 기도하는 사람은 의외로 소수이다.

 

길 한가운데서 사우디의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사람에게 손가락질 하는 이상한 나라. 과연 이슬람이 이 나라의 국교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다들 돈을 벌기위해 유럽으로 가기 원하고 때로는 밀항도 서슴지 않는 나라, 이런 유럽지향적인 나라의 한쪽 면은 부정적인 면으로 보여 지기도 하지만 이들의 생활모습을 보면 이해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튀니지의 모습을 보고 ‘유럽 국가의 아류’ 같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렇게 막나보이는 다양성의 배경에는 튀니지의 국부(國父)이자 초대 대통령인 하비브 부르기바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그는 1956년, 73년간의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끝내고 건국하자마자 일부다처제와 히잡 의무화를 폐지했다. 그리고 전통 이슬람의 휴일인 금요일대신 서구의 휴일인 일요일을 공휴일로 정해버렸다. 동행했던 가이드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래도 전통 이슬람의 휴일인 금요일에는 오전에만 근무하는 곳들이 많아서 주5일 근무가 아닌 주4.5일을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4일 1/2을 일하는 나라 오히려 삶의 질은 우리보다 나을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살짝 부러워지는 것은 어떤 이유인지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가이드인 모하메드 야지드 (Mohamed Yazid)씨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엘리트로 전형적인 아랍의 미남이다.

 

▲ 튀니스의 중심 하비브 브르기바 거리

 

튀니지는 아프리카 속의 아랍 국가로 국민 대다수가 무슬림이지만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다는 이유로 영어보다 아랍어, 아랍어보다는 프랑스어가 더 익숙한 나라이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많은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문명의 ‘이종교배’를 만들어 묘한 매력을 발하는 나라로 도심 속의 길을 걷다보면 식민지 시대로 회귀한 듯한 착각이 드는 나라이다.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는 '북아프리카의 파리'라 불릴 만큼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 서구 지향적이다. '튀니스의 샹젤리제' 하비브 부르기바 대로엔 청바지와 쫄티로 S라인을 드러내며 한껏 멋을 낸 튀니지의 아름다운 여성들이 길가는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름다운 여성들이 많은 곳을 꼽으라면 북인도 지역과 북유럽, 그리고 아프리카의 소말리아 인들과 에티오피아 인들, 그리고 아랍 여성을 꼽을 수 있는데 확실히 아랍쪽 여성들이 이국적인 풍모로 예쁘게 느껴진다. 이곳 사람들은 아랍족과 베르베르족 혼혈이 대다수로 뛰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는 여성들이 많이 보인다. 중동지역을 여행했던 친구는 “히잡을 둘러쓴 아름다운 여성들의 모습에 왜 가리고 다니는 지 마음이 안타까울 때가 많아”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두바이공항에서 본 사우디의 젊은 아가씨들은 학교 방학을 이용하여 모로코로 휴가를 간다고 하였다. 이들은 사우디의 전통의상 검은색 아바야(abayah) 안에 청바지와 배꼽티를 입고 있었다. 이슬람의 보수적인 나라 사우디에서 나왔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고 게다가 발톱에 매니큐어로 색칠을 하고 화려한 자수로 무늬를 아로새긴 그녀들의 겉옷을 보면서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수 있었다. 오 세상에, 검은 옷 속에서 눈만 빼꼼히 내놓고 조신할 거라는 나의 선입관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이쁘다’ 라는 생각에 딴 생각이 안든다. 꾸미고 싶고 아름답고 싶은 것은 모든 여성들의 공통된 생각인 것 같다. 그런 두바이에서의 사전 학습은 튀니지에 오면서 느슨한 아랍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것이 문화의 혼합된 곳의 특징임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튀니지의 3S

 

튀니지는 북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한반도의 2/3 정도 되는 크기의 나라이다. 북부의 비옥한 평야를 바탕으로 농업과 고대 로마의 유적지와 사하라 사막 덕분에 관광이 발달했다. 이곳 사람들은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베르베르 유목민들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수많은 민족들이 역사 시대 이래부터 들락날락 한 덕분에 사람들은 이방인에 대해 거부감이 별로 없다. 날씨는 겨울은 있지만, 그리 춥지 않을 정도인 전형적인 지중해식 기후로 살기 좋은 나라이다.

 

이 나라를 상징하는 자연의 축복이라는 3S는 Sand(모래, 사하라 사막) Sun (이글거리는 태양) 그리고 Sea(지중해 해변)이란다. 참 말도 잘 지어낸다. 눈부시게 푸르고 한가로운 한여름의 태양과 지중해의 시원한 바다는 유럽인들 특히 식민모국이었던 프랑스인에게 인기가 최고이다. 튀니지는 아랍 문화권의 나라지만 초대 대통령 하비브 부르기바가 세운 국가정책상 유럽과 같이 상당히 오픈 된 마인드를 추구한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폐쇄적인 것은 하나 있으니 그것은 아랍의 공공의 적 이스라엘 국민 입국은 절대사절이다. 그러나 예전에 많은 유대인들이 살았던 기록들이 있는데 왜 그런지.

 

튀니지는 법으로 일부일처제를 못 박았다. 우스개 소리로 부인을 많이 두고 싶으면 이슬람으로 개종해야겠다는 철없는 남성들의 희망인 부인을 여럿 두는 일이 불가능하단 것. 이슬람권에서 행해지는 일부다처제가 금지되어 있고(사실 허용되는 나라도 부인들에게 공평하게 대해야 하기에 돈이 많아야 가능하고, 이제는 대부분 일부일처제이다), 프랑스식의 남녀평등에 여성에 대한 참정권을 주는 등 여성의 인권과 사회생활에 제약이 덜해 여성들에게는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은 나라다. 튀니지는 북아프리카의 마그레브 나라 중에서(모리타니아,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중에 제일 작은 나라지만 가장 개방적이다. 여기서 마그레브(Magreb)란 '해가 지는 서쪽'이란 뜻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튀니지인들은 자신들 스스로도 유럽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이곳의 오랜 토착민은 베르베르족이고 카르타고의 주민은 대부분 페니키아인이었고 로마의 지배 하에서는 이탈리아인들과 동화되었고 프랑스의 70여년 지배 하에서는 그들에게 동화 되었다. 그래서 엄밀한 의미에서 이들은 아랍인이 아니다. 아랍어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그래서 이들은 정작 유럽인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스스로 유럽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지 의심조차 드는 곳 바로 튀니지이다.

 

▲ 튀니스 인근 시디부 사이드

 

튀니지는 조상을 잘 둔 덕에 관광으로 먹고 사는 나라이다. 여름철 날씨 좋은 지중해 기후를 즐기기 위해 여름철에만 100만 여명의 관광객들이 바다로, 하늘로 들어온다. ‘크루즈’ 여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서부 지중해 크루즈의 중요 기항지로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가 들어가 있는 것을 알 것이다. 튀니스에는 고대 카르타고의 흔적들과 로마시대의 유적들, 그리고 아랍풍의 건물과 지중해 산토리니를 연상시키는 시디부사이드 등의 많은 관광지를 가지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다. 그리고 튀니지는 아프리카답지 않게 야생동물들을 보기 힘든 나라이다. 아프리카의 상징 코끼리와 사자, 기린 등은 박물관의 모자이크에서만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양과 염소 같이 작고 고만고만한 동물들과 사막의 나라답게 낙타와 당나귀가 이곳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동물들이다.

 

튀니지에서는 아랍권이지만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아랍여성들이 얼굴을 온통 감싸는 검은 부르카를 거의 볼 수 없다. 대게 히잡(hijab)으로 머리만 가린다. 그래서 온몸을 검은 천으로 싼 정통 아랍여성의 옷차림 보기가 무지 희귀하다. 해변같은 곳에서는 서구 여성들의 토플리스 차림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관광객이 주 수입원이 되는 덕에 앞에서는 별말하지 않지만 많은 튀니지의 보수적인 사람들은 서구사람들에게 분노를 일으킨다고 한다. 그리고 아랍식 공중목욕탕 ‘'함맘(hammam)’ 에서는 남녀모두 속옷입고 목욕을 할 정도로 이중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안정이 되어있지만 군인보다 경찰들의 숫자가 많을 정도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권력의 힘으로 누르고 있다. 국민 10명중 2-3사람은 경찰관 친척이 있다는 소리가 결코 우스개 소리가 아니다. 튀니스의 거리에서 함부로 관공서 건물이나 경찰 등을 촬영하지 말라고 할 정도니 말이다. 군데 군데 비밀경찰들이 있어 평온하고 개방되어 있는 이 도시를 알게 모르게 옥죄고 있다고 한다. 나 역시 가이드인 ‘야지드’에게 주의를 들은 터라 조심하였지만 마음 속으로 누르는 보이지 않는 공포는 사람을 위축되게 만든다. 그래도 강렬한 햇살과 바람과 아랍특유의 향신료의 냄새는 여행자를 더욱 자유롭게 만든다.

 

아프리카의 자연벨트 사하라 사막

 

많은 학자들은 이슬람권의 북부와 중부 아프리카의 경계를 ‘사하라 사막’이란 자연 벨트로 구분 짓는다. 지도를 보면 아프리카 대륙은 한쪽으로 엉덩이가 나온 아줌마 옆모습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좀 직설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아프리카는 인류의 어머니 같은 곳이기에 그런 생각도 가끔은 해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의 중간에 허리띠를 꽉 졸라맨 부위에 있는 사하라는 지중해를 면해 있는 북아프리카와 케냐, 수단, 에티오피아 등을 구분 짓는 자연의 경계이다. 일찍이 아랍의 대상들도 사하라 사막은 마음대로 건너지 못했을 정도로 험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어느 책에선가 자신이 죽을 때 사라하의 뜨겁고 강렬한 태양아래서 ‘빼빼’ 말라 죽고 싶다는 표현을 읽은 적이 있다. 낮에 50도가 넘어가는 강한 햇빛과 기온은 사람을 죽음의 길목에 몰아넣을 정도로 강렬하다. 이런 자연환경은 자연스럽게 이슬람의 영향이 강한 북아프리카 지역과 중부, 동부 아프리카를 갈라놓게 되었고 북아프리카는 과거 베르베르족과 로마인, 아랍 쪽에서 온 사람으로 이루어진 민족들이 그리고 사하라 이남은 반투족와 나일로틱으로 대표되는 흑인들이 주류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래서 지리적으로는 아프리카지만 여러 가지 문화의 영향은 이슬람과 열강 식민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문화의 이종 교배의 특징을 나타내며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내었다. 그만큼 튀니지는 다양성을 가진 ‘문화의 용광로’ 같은 곳이지만 그들만이 독특한 문화를 지금까지도 지켜가며 살아가는 매력적인 사람들의 나라이다. 여행자들 눈에 새로운 여행지는 ‘경이로움’ 그 자체다. ‘여행’이라는 단어와 ‘새로운 곳’이라는 단어에 동일한 가치를 두는 여행자들에게는,  이곳은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호기심과 쉼 없는 질문이 끊이지 않는 눈으로 이곳을 바라보노라면, 우리가 하는 여행과 같은 삶은 언제나 풍요로울 수밖에 없다. 다니면 다닐수록 변화무쌍한 풍경이 ‘새로운 여행’의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튀니지에서는 매번 달라지는 풍경 때문에 피곤할 틈이 없었다. 새로운 여행의 흥분은 이 나라가 아프리카인지 유럽인지 중동인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단지 마음 속에서는 여기는 ‘아프리카’라고 우기고 있지만 말이다.  나중에 보니 아프리카 라는 단어의 원류인 ‘아프리키야(Afriqiyah)’는 고대 튀니지 지역을 지칭했던 말이란다. 튀니지는 아프리카의 조상이 맞다.

 

권기정 기자  john@tt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