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항사-OTA, 환불불가 ‘배째라’ 여전
공정위 조치 무색...글로벌 약관 적용
부킹닷컴·아고다 환불불가 방침 고수
2018-11-27 16:56:46 , 수정 : 2018-11-27 17:03:00 | 양재필 기자



한국에 취항 중인 외국항공사(이하 외항사)와 글로벌 OTA(온라인여행사)사들의 취소수수료 과중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불공정 시정조치를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지만, 이들 업체들은 글로벌 약관의 타당성을 피력하며 개선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공정위와 외국 업체간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외국항공사들의 경우 국내 항공사들과 달리 출발 3개월 전 항공권에 대해서도 과중한 취소 수수료를 물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항공사는 공정위의 불공정 시정 조치에 따라 출발일이 3개월 이상 남은 항공권에 대해서는 취소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지만 일부 해외 항공사는 이를 외면한 채 자사 규정을 고집하며 소비자에게 부담을 지우고 있다.

 

소비자문제연구소 컨슈머리서치가 인천국제공항에 취항하는 90여개 항공사 중 인천-세부, 인천-파리, 인천-뉴욕 노선을 운항하는 싱가포르항공, 세부퍼시픽항공, 에바항공, 일본항공, 캐세이패시픽항공, 터키항공, 필리핀항공, 에어아시아, 말레이시아항공 등 9개 항공사를 대상으로 출발 91일 이전 취소 수수료를 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5개 항공사가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평균적으로 운임의 6% 정도의 수수료가 발생했지만 일부 구간은 최대 20%에 달하는 등 수수료 수준도 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조사일(928)로부터 출발일이 3개월 이상 남은 201914일자 편도 항공권을 대상으로 했다. 취소, 환불을 별도 규정하는 특가를 제외한 일반 운임만 조사했다. 세부행 항공료에 대해 캐세이패시픽항공은 12.4%의 높은 취소수수료를 요구했다. 566400원 중 취소 수수료는 7만 원이다. 일단 결제하면 출발일이 석 달 이상 남아 있어도 결제한 운임의 상당 부분을 수수료로 날려야 하는 셈이다.

 

에바항공은 613600원의 운임 중 5만 원(8.1%), 싱가포르항공은 91500원 중 55900(6.1%)을 수수료로 공제했다. 일반적으로 해외에 갈 때는 왕복 예약이 많은데, 환불 수수료가 구간당 부과되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 조사요금보다 2배 정도 많은 수수료를 물어야 하는 셈이다.

 

이와 달리 일본항공과 터키항공, 필리핀항공, 에어아시아(말레이시아 국적) 4개사는 91일 이전 취소 수수료가 없었다. 장거리인 파리, 뉴욕 노선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파리(샤를 드 골 공항) 노선은 6개 항공사 중 4, 뉴욕(존에프 케네디공항) 노선은 4개 항공사 중 3개가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파리행 항공편은 말레이시아항공에서 구매했다가 취소할 경우 가장 많은 수수료를 내야 했다. 항공 운임(1187500)23%에 달하는 273400원을 수수료로 제했다.
 


캐세이패시픽항공은 1053700원의 운임 중 10만 원(9.5%)을 수수료로 요구했다. 싱가포르항공과 에바항공도 출발일이 석 달 이상 남은 상황에서 취소해도 각각 운임의 8.1%, 3.7%를 수수료로 공제한다. 일본항공과 터키항공만 수수료 없이 취소가 가능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국내 8개 항공사 국제선의 경우 출발일로부터 91일 이전에는 취소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90일 이내 취소할 경우부터 수수료가 발생한다. 지난 20169월 공정위가 취소시기에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수수료를 부과하는 행위가 불공정하다고 지적해 자진 시정 조치한 결과다. 이에 대해 공정위 측은 외항사 중에서도 상위 업체들은 출발일로부터 상당 기간 남아 있는 경우에는 환불 수수료를 없애거나 적은 금액으로 개선된 걸로 알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해외호텔 예약대행 사이트인 아고다와 부킹닷컴도 최근 취소수수료 문제로 인해 뭇매를 맞고 있다. “예약취소 시점 등과 관계 없이 무조건 환불을 거부하는 약관을 시정하라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배짱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최근 이들 업체에 권고보다 수위가 높은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마저도 따르지 않으면 이들 업체를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업체들은 “(해당 약관이) 불공정하지 않다는 입장이라 공정위 조치에 따를지 미지수라는 관측이 많다.

 

공정위가 자체 첩보를 토대로 해외호텔 예약대행 사이트 7곳의 환불불가 조항에 대해 조사에 착수한 시점은 20167월쯤이다. 7곳 모두 약관에 예약취소 시점을 불문하고 예약변경 또는 환불이 일체 불가능하다는 식의 조항을 두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공정위는 이 같은 조항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소비자에게 불리해 무효라고 판단하고 아고다, 부킹닷컴, 호텔스닷컴, 익스피디아 등 4곳에 이를 바꾸라고 시정권고(나머지 3곳은 공정위 조사 기간 중 자진시정)를 내렸다.

 

가령 기존 환불불가문구를 예약 확정 후 변경ㆍ취소 시 환불되지 않는다. , 체크일자까지 120일 이상 남은 경우 무료취소 가능’(인터파크) 같은 식으로 구체화하라는 것이다. 실제 호텔스닷컴과 익스피디아는 조항을 시정했다. 그러나 아고다와 부킹닷컴만 정당한 사유 없이 권고를 따르지 않아 시정명령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공정위의 시정명령을 받고도 60일 내에 해당 조항을 바꾸지 않으면 이들 업체는 검찰에 고발될 수 있다.

 

하지만 아고다와 부킹닷컴이 공정위 조치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다국적 기업인 이들 업체는 공정위에 △글로벌 시장에서 모두 동일한 약관을 사용하고 있고 △한국 시장에 적용되는 환불불가 조항이 크게 불공정하지 않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현정 공정위 약관심사과장은 “(약관이) 어느 정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것이기에 (이들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할 순 없다면서도 나라마다 독자적인 법이 있는 만큼 사업자들은 그 나라의 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해 9월 공정위는 과도한 예약취소 위약금 약관을 시정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숙박공유 서비스업체 에어비앤비를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소비자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아고다, 부킹닷컴, 호텔스닷컴, 익스피디아 등 4개 사이트에 대한 피해구제 요청은 201554건에서 지난해 130건까지 급증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최근 해외호텔 예약 관련 피해구제 신청의 대부분은 아고다 또는 부킹닷컴이라고 말했다.

 

소비자원은 해외호텔 예약사이트에서 객실 가격을 비교ㆍ선택할 때 △환불 및 변경 가능여부 △무료 취소기한 등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아고다와 부킹닷컴의 약관 개정을 강제할 수 없는 만큼, 지금 단계에선 소비자들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양재필 여행산업전문기자 ryanfeel@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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