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장법사처럼 ‘시안’ 여행
인물 따라 여행하는 신서유기 여정 ① 삼장법사
여행의 첫 걸음 뗀 시먼·안딩먼 / 삼장의 공 기린 7층의 대안탑
2015-10-06 11:01:13 | 임주연 기자

소설 <서유기(西遊記)>의 유일한 실존인물인 삼장법사. 지금까지 ‘삼장’이 이름인 줄만 알았던 필자는 삼장법사에 대해 알아보다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삼장’은 마치 선생님처럼, 불교의 세 경전에 모두 능통한 사람이라는 뜻의 호칭이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의 본래 이름은 ‘현장’이다.

 

추측하건대, 방년 26세의 현장법사가 여행의 첫발을 내디딘 곳은 시먼(西門) 또는 안딩먼(安定門)이었을 것이다. 실크로드의 입구로 유명한 이곳은 현재 명대성벽에서 감상할 수 있다. 1370년대에 생긴 명대성벽(明代城壁)은 중국 성벽 중에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 시안(西安)의 모습을 한눈에 담기 좋은 관광명소다.

 

<사진=현장법사 여행길 지도/출처=네이버 서유기사전>

 

현장법사는 불경을 찾으러 인도로 가다 사막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머리 위에는 기러기 떼가 날고 있었다. 그런데 기러기 한 마리가 내려와 삼장법사 일행에게 길을 알려 주었다. 삼장법사는 기러기로 변한 부처님이 도우신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이후 현장법사는 사막을 넘고 설산을 넘어 불경 600여 권을 가지고 장안(당나라의 수도·시안의 옛 이름)으로 돌아왔다. 불경은 현장법사가 어렵게 구해온 것이니만큼, 국빈대접을 받았다. 7층짜리 건물 하나가 불경을 위해 지어졌는데 그 이름을 클 대에 기러기 안자를 써 대안탑(大雁塔)이라고 지었다. 대안탑 1층에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불전건축의 도안이 그려져 있다. 문 옆에는 태종의 ‘대당삼장성교서’ 및 고종의 ‘대당삼장성교서기’의 비가 있어 더욱 귀중한 탑이다.

 

대안탑 옆에는 소안탑(小雁塔)도 있다. 소안탑은 고종의 아들 예종이 아버지를 공양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어느 날 지진이 나서 반으로 갈라졌는데, 다음날 지진이 일어나 다시 붙었다는 전설이 있다.

 

임금보다 큰 위치에 모시는 불경을 가져온 현장법사는 당대 얼마나 위세가 대단했을까. 그는 아마 궁궐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었을 것이다. 서안에는 중국 고대사에서 제일 웅장하고 규모가 큰 궁전인 대명궁이 있다. 당 태종이 아버지에게 효도하기 위해 지은 궁궐로, 면적이 3.2㎢이다. 북경 자금성의 4배, 축구장 500개의 면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896년 병란이 일어나 지금은 몇 개의 성터가 남았고, 대형 미니어처 전시물이 있어서 본모습을 가늠할 수 있다.

 

위세 등등했어도, 결국 현장법사 또한 죽음을 막진 못했다. 흥교사(興敎寺)는 현장법사가 입적(入寂, 승려의 죽음)한 사찰이다. 흥교사는 현장법사의 제자인 신라 스님 원측이 불경을 번역한 곳이기도 하다. 그를 기리는 원측 사리탑도 남아 있다. 또한 한국의 불국사측이 에밀레종 원형을 그대로 복제해 증정한 곳이라 더욱 뜻 깊은 불교유적이다.

 

[TtLnews 임주연 기자] hi_ijy@tt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