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천년 고찰, 그 시간을 거닐다
2017-12-11 08:19:51 | 이채현 에디터

 

내년으로 정도 천년을 맞이하는 전라도. 유난히 역사와 애환의 편린들이 무수히 흩어진 이 땅에는 저마다 사연 없는 곳이 없다. 그 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것들이 있다. 카메라를 짊어지고 산길을 따라 타박타박 전라도의 천년고찰을 찾았다. 오를수록 시간이 아득해 지고 마음이 가벼워 진다.  

 

전라도 가는 길

고려 현종 9년(1018년), 전주(全州)와 나주(羅州) 각 첫 글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 전라도. 내년은 정도 천 년이 되는 해다. 덕분에 전라도는 2018년 방문객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천년고찰 순례역시 전라도에서 주목하고 있는 관광테마 중 하나. 고찰 주변으로 단풍이 지천으로 물들어 있을 생각을 하니 기대가 앞선다.

 

버릴 것 없는 사계절, 고창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가장 처음 도착한 곳은 전라북도 서남쪽 끝 위치한 고창. 고창의 사계절은 버릴 것 없다. 흐드러지게 핀 붉은 동백꽃과 푸른 청보리 밭, 형형색색 단풍이 바람을 타고 찾아오는 이들의 마음을 흔든다.

 

화려한 단풍의 향연 선운사

▲ 선운사

 

선운산 입구에서 선운사로 가는 길. 단풍이 화려함의 정점을 찍었다. 길옆에 잔잔히 흐르는 도솔천은 거울처럼 맑아 노랗고 붉은 선운산의 풍경을 그대로 담았다. 그 반영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무음의 별세계가 거기 있다. 10분 남짓 오르다 보니 1500년 사찰 선운사가 있다. 백제 위덕왕 24년(577년) 창건된 선운사는 금산사와 함께 전라북도 내 조계종 2대 본사다. 선운사는 한때 89암자, 3,000여 승려가 수도하는 대찰이었으나 현재는 본사와 도솔암, 참당암, 동운암, 석상암 만이 남아 있다. 선운사 뒤편에는 동백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문의 : 063 560 8686

 

국화꽃 따라 미당문학관

▲ 미당문학관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마을에는 미당 서정주의 생가와 미당문학관이 있다. 그의 시 ‘국화 옆에서’의 한 구절처럼, 나란히 심어진 국화꽃이 미상의 생가로 인도한다. 6층 규모의 '미당시문학관'은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했다. 미당의 육필 원고와 애장품 등 유품 5천여 점이 보관돼 있다. 6층 전망대에선 근처 풍광을 볼 수 있다. 그의 시집 이름이기도 한 '질마재'도 보인다. 평화로운 마을을 보다보면 미당의 작품 속에 있는 듯하다.

문의 : 063 560 8058

 

달빛산책 고창읍성

▲ 고창읍성

 

모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고창읍성. 이곳에선 성곽 길을 돌며 은은한 달빛을 즐길 수 있다. 사적 제145호로 조선 단종 원년 왜침을 막기 위해 전라도민들이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그렇다보니 성곽의 돌 모양이 제각각이다. 윤달에는 돌을 머리에 이고 성곽을 3회 돌면 무병장수하고 극락승천 한다는 전설이 있다. 성곽 둘레 1,684m로 한 바퀴 도는데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문의 : 063-560-8067

 

고창 별미, 풍천장어&복분자주

▲ 고창의 명물 풍천장어 

 

고창에서 장어와 복분자주를 먹지 못하면 아쉽다. 풍천장어의 풍천(風川)이라는 말은 강 하구가 바다와 만나는 지점을 뜻하는 말로 선운사 주변으로 풍천장어 식당이 즐비하다. 담백하고 영양이 좋다 한다. 복분자주는 몇 년 전까지 지역민들만 먹는 전통주였으나 지금은 고창서 맛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Soul 가득한 그곳 영광

고창군에서 22번 국도를 따라 내려오니 전라남도 영광에 닿았다. ‘굴비=영광’이라는 공식이 나올 정도로 굴비가 유명한 이곳은 과거 우리나라 서남 해안을 연결하는 뱃길의 중요한 거점이었으나 지금은 기능을 상실했다. 우리나라 4대 종교의 성지가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백제불교최초도래지 공원

 

▲ 백제불교최초도래지공원

 

법성포는 인도승 마라난타가 384년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에 불교를 전하기 위해 처음 발을 디뎠다고 생긴 이름이다. 그 북쪽 언덕에 백제불교최초도래지 공원이 있다. 4면대불이 언덕 정상에 우뚝 서있고 부용루, 탑원, 간다라 유물전시관 등이 세워져 있다. 중국을 통해 들어온 불교가 아닌 인도에서 직수입된 불교로서 이를 기리기 위해 간다라 양식을 도입하여 건물을 세웠다. 언덕에 자리 잡아 주변 경관이 한눈에 보여 시원하다. 주변으로는 법성포와 모래미 해수욕장을 아우르는 생태탐방로 ‘칠산 갯길 300리 굴비길’이 조성돼 있다.

문의 : 061 356 6008

 

여기 서해 맞아? 백수해안도로

▲ 백수해안도로

 

법성포항을 거처 들판을 지나다보면 백수해안도로를 만날 수 있다. 섬과 갯벌이 많은 여느 서해와 달리 동해를 가로지르는 듯 탁 트인 조망과 수평선이 특징이다. 해안선 역시 갯벌 없이 미끈하게 뻗어있다. 드라이브하기 적격이다. 법성포 항에서 출발, 홍곡리까지 22킬로미터 정도 이어진다. 서해의 간지러운 해풍을 맞으며 시원하게 달리다 바라보는 일몰은 감동이다.

 

영광 별미, 영광굴비

▲ 법성포 영광굴비 

 

법성포항에는 굴비 판매점과 굴비 식당가가 밀집해 있다. 어느 식당을 가든 상다리 부러질 만큼 어마어마한 굴비한정식을 맛볼 수 있다. 강과 갯벌, 산과 바다에서 난 갖가지 음식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호강이다.

 

때 묻지 않은 그곳, 해남

남쪽으로 달려 해남에 닿으니 단풍도 여기까지는 아직 인듯하다. 해남은 남해와 서해가 만나는 곳이기에 예부터 군사적인 요충지면서 문화 이동로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타 지역 보다 도시화가 더뎌 시골인심을 듬뿍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땅끝 사찰 미황사

▲ 미황사

 

달마산 서쪽, 미황사가 자리하고 있다. 달마산은 경전을 봉안한 산이라는 뜻으로 정상부근이 공룡 등뼈처럼 이뤄져 있어 남쪽의 금강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신라시대(749년) 의조대사가 창건한 미황사는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사찰로 산자락을 깎아 만들었다. 사찰 위쪽에서 바라보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풍경은 한편의 수묵화를 연상시킨다. 지난달 18일 개통한 달마산 둘레길 '달마고도'도 가볼 만하다.

문의 : 061 530 5229

 

땅끝마을

이름만으로 많은 이들에게 로망의 장소가 되고 있는 이곳.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는 이곳을 기점으로 함경북도까지 삼천리금수강산이라 했다. 전망대에선 수평선까지 땅끝마을 전경을 볼 수 있다. 선착장을 이용하면 고산 윤선도의 유배지였던 보길도로 통한다.

문의 : 061-530-5544

 

유배의 핫플레이스 강진

해남에서 한 시간, 강진이 있다. 붉은 황토와 짙푸른 하늘, 일렁이는 갈대밭이 인상적인 강진은 해남과 함께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배지로 꼽힌다. 강진·해남에서는 족보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유배 온 양반들이 많았던 탓이다. 강진의 한정식이 유명한 것도 이런 이유라고.

 

강진의 방점 가우도

▲ 가우도 출렁다리

 

소머리와 생김새가 흡사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의 가우도. 강진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살고 있는 섬으로 고작 가구 수 10여 호, 30여 명이 살고 있다. 섬 양쪽에 놓인 출렁다리로만 출입 가능해 자연히 차량으로는 들어갈 수 없으며 낚시역시 주민 외엔 엄격히 금지돼 있다. 다리 입구, 가게 몇 개가 이 섬이 가진 상업시설의 전부다. 해안선을 따라 2.5km 남짓 산책로 ‘함께海길’이 꾸며져 있다.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며 아침 윤슬을 간직한 바다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넉넉해진다. 청자타워와 마을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섬 한 바퀴 도는데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동백 속으로 백련사와 다산초당

▲ 다산 초당 

 

강진 읍내에서 ‘귤동’이라는 마을을 지나면 백련사와 다산초당이 있는 만덕산에 이른다. 만덕산은 본디 ‘다산茶山’이라 불렸는데 말 그대로 차를 키우던 산이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의 호가 여기서 유래됐다. 백련사 입구부터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 동백나무와 대밭, 노송들이 햇빛조차 가릴 정도로 울창하다. 다산이 이 길을 걸으며 사색을 즐겼다고 한다. 신라시대 창건된 백련사는 남향으로 바다를 훤히 내다볼 수 있다. 고려 의종 때 서민불교운동을 일으킨 뜻깊은 사찰이기도 하다. 백련사에서 20분 정도 산을 오르다 보면 다산초당이 나온다. 다산 정약용은 이곳에서 18년 간 유배생활을 하며 50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 본래 초가집이었으나 소실된 후 다시 지었다. 양 옆으로 동암과 서암이 있다.

문의 : 061-430-3911

 

이채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