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졌었다. 유럽이 아니다. 스위스가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여행자의 눈에서 보이는 것들은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세상을 다 가진듯한 여유로운 시선은 세상에 관대해지기 때문이다.
유럽여행 중 스위스 취리히의 매력은 골목길에 있었다. 특유의 멋에 빠져 카메라를 세웠다가 눕혔다가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뷰 파인더로 보는 세상은 답답했지만 줄였다가 늘렸다가 세상을 가지고 놀았다. 비는 여행을 피곤하게 만들지만 깊은 운치로 현혹한다. 취리히 골목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코트를 걸친 제임스 딘 같았다. 타임스퀘어 앞에서 찍은 그 유명한 사진 말이다.
간판도 아름답다. 심플하지만 “나의 가게요”라고 주인장이 외치듯 간결한 자부심의 증표로 느껴졌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중 개구리 간판이 떠올랐다. 이후 만화의 배경을 거느렸지만 유럽의 간판 문화는 그들의 정서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스위스 취리히 수많은 골목길은 미로와 닮아있다. 어딜 가든지 길이 되고 가로, 세로로 나뉜 길은 새로운 사람들로 연결해주었다. 골목길에서 나는 어떤 길을 가야 했을까? <피아니스트의 전설> 중 팀 로스가 죽기 전에 읊조리던 대사가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많은 것 중 하나….”
취리히 호수가 보이는 다락방에 살고 싶다. 아침에 눈을 떠서 창문을 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후 노트북을 열어 호수를 원고지 삼아 글을 쓰는 작가의 삶을 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꿈을 꾸었다.
한해 많은 사람들은 유럽여행을 떠난다. 내가 유럽에서 만났던 그들처럼 각자의 사연을 품은 채 기억을 지우고 또 덮어서 올 것이다.
여행 칼럼니스트 김지훈_ tripadviser.xyz
◆김지훈 칼럼니스트는…
“죽음, 그 순간을 경험한 후 삶이 달라진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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