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엘뉴스] 고유의 조형 언어로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작가, 줄리안 오피(Julian Opie)의 개인전이 국제갤러리에서 11월28일까지 열린다. 줄리안 오피는 수원시립미술관(2017), F1963(2018) 등에서 개인전을, 그리고 서울, 부산, 대구, 전남, 김포에서 영구 설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한국에서도 꾸준히 작업을 선보여 왔다. 2014년 이후 7년 만에 국제갤러리에서 세 번째로 열리는 이번 개인전은 그중 가장 대규모의 전시다.
줄리안 오피 작가는 1958년 생으로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982년 골드스미스 대학 졸업 후 현재까지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현재 작가의 작품은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영국 박물관, 빅토리아 알버트 미술관, 국립 초상화 미술관을 비롯, 뉴욕 현대미술관(MoMA), 보스턴 ICA 미술관, 도쿄 국립현대미술관,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등 세계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 줄리안 오피의 동물 형태의 평면 조각 작품
이번 국제갤러리에서 펼쳐지는 개인전은 그중 가장 대규모의 전시다, 전시장을 비롯해, 정원을 아우르는 다양한 공간에 30여 점이 설치됐다. 건물, 사람 그리고 동물 형태의 평면 및 조각 작품을 갤러리 공간에서 함께 체험할 수 있도록 준비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번 전시에서도 작가는 다채로운 매체와 기술의 조합을 통해 과거의 예술에서 영감을 얻음과 동시에 현대 도시에서 차용한 시각적 언어를 보여준다.
줄리안 오피의 작업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관객들은 한눈에 작가 고유의 조형 언어를 알아볼 수 있다는 호평 일색이다. 사람, 동물, 건물, 풍경과 같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를 자신만의 미술언어를 통해 단순화된 현대적인 이미지로 그려내, 동시대인들이 쉽게 접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업을 해왔다. 관찰하면서 재해석된 세상의 이미지들은 고대와 최첨단을 넘나들며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통해 작품으로 탄생한다.
줄리안 오피는 고대 초상화, 이집트의 상형문자, 일본의 목판화뿐 아니라 공공 및 교통 표지판, 각종 안내판, 공항 LED 전광판 등에서도 두루 영감을 받는다. 현대미술의 시각언어가 미술사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들과 조우하는 지점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 갤러리 외관, 줄리안 오피의 겨울 일상 풍경 속 걷는 사람들
갤러리 K2 전시장 2층 공간에는 작가가 오랜 시간 작업해온 동물 작품이 중점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사람을 모티프로 한 작업만큼 다양한 크기와 형태, 색으로 구성되어 있는, 생동감 넘치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사슴, 수탉, 소, 강아지 등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동물의 이미지는 작가의 조형언어 체계를 통해 친근한 대상에서 상징적으로 거듭난다.
여기에 산업적 환경을 연상시키는 인공적인 원색을 사용했다. 덕분에 전시장 벽을 장식하는 밝은 라이트 박스에 새겨진 동물 소재의 회화 작품들은 현 도시를 구성하는 표지판이나 브랜드 로고 혹은 광고를 연상시킨다, 좌대 위에 놓인 알루미늄 재질의 조각으로 공간에 부유하면서, 전시장에 또 다른 물리적, 심리적 리듬감을 준다. 특히 인위적이고 단단한 재질로 만들어진 동물 조각상은 작품의 영감인 천연한 자연과 조화와 동시에 대비를 이룬다.
K2의 1층 전시장은 도시의 사람들로 구성된다. 작가는 런던의 동쪽에 위치한 작업실 근처에서 겨울옷을 입고 길을 헤쳐 나가는 낯선 이들의 모습을 포착했다. 이들의 존재를 LED를 사용한 영상, 라이트 박스, 알루미늄 조각 작품으로 표현했다. 2층 전시장의 선명하고 강렬한 색감과는 반대로 해당 공간에서는 작품 속 개인의 옷, 머리카락, 그리고 피부 톤에서 따온 자연스러운 색감으로 구성된 팔레트가 펼쳐진다. 기존의 원색 작업이 아닌 톤 다운된 차분한 색감은 작품의 바탕이 되는 흰색과 검은색에 어우러져 계절만의 정취를 한껏 깊게 느낄 수 있다.
서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 행인들 각각의 크고 작은 특징을 포착하여 조합하는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은 작품 창작의 중심이 되어왔다. 오피의 작품 속 인물들은 ‘걷기’와 같은 가장 일상적인 모습 및 자세로 형상화된다. 이를 통해 인간의 평범한 행위가 예술로 거듭난다.
K3 공간에서는 도시 행인들의 존재와 함께 건축 조각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가상 도시가 펼쳐진다. 펜데믹 상황으로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와중에 벨기에의 크노케(Knokke)에 방문한 작가의 경험을 작업으로 담아냈다. 코로나시국에 런던에 지긋이 머물게 된 작가는 도시의 현대건물과 역사적 건물을 새삼 눈여겨보게 됐다. 이들을 입체적인 금속 조각으로 재해석했다.
장기간 지속되는 코로나-19 상황은 작가의 작업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작가는 물리적인 여행 대신 가상의 3D 구글 지도를 통해 인천을 둘러보았고, 전시작 중 하나인 <인천, 타워 2208. (Incheon, Tower 2208.)>의 단서를 얻었다. 인천에 위치한 무명의 건물은 전시장에서 수백 개의 창문, 특유의 직선적이며 기하학적 선 등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탄생했고, 정원에 놓임으로써 추상적이면서도 보편적인 도시풍경의 일부를 재현한다.
“관객이 흥미롭게 작품을 경험하도록 고민한다”는 줄리안 오피는 “이번 전시를 찾은 관객에게 호기심과 놀라움을 선사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리고 3D 가상공간에 작품을 배치하고 VR 고글을 낀 채 가상의 전시장을 직접 둘러보는 방식을 거듭하며 동선을 섬세하게 기획, 구성했다. 이번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보다 다양한 공간을 제공함은 물론 그동안 친숙하게 여겨진 일상 풍경의 본질을 줄리안 오피만의 미니멀리즘적 접근을 통해 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린 아트칼럼니스트 art-together@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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