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나는 자신과 신, 영화 <나의 산티아고>
2018-04-09 04:14:03 , 수정 : 2018-04-09 04:31:59 | 박지영 편집위원

[티티엘뉴스]  모두가 여행을 좋아한다. 바쁘고 복잡한 일상을 떠나 이국 문화에 흠뻑 취하고 돌아오면  언제나 즐겁다. 이제 여행은 시간과 돈이 여유 있는 사람만이 떠나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카피처럼 누구나 다 떠나고 싶어 하고 떠난다.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여행이 있다. 특별히 인상적이거나 개인적 성숙을 가져다준 여행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한 여행길에는 단순한 관광을 떠나 내면을 변화시키는 강렬한 정신적 체험이 존재한다. 얼마 전 가슴 뛰는 한편의 영화를 접했다. <나의 산티아고> 이다.

 

자신을 찾고자 또는 신을 만나고자 하는 영적 여행이 800킬로의 고행과 함께 펼쳐졌다. 성인 산티아고(야곱)이 걸어간 길, 그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산티아고의 장관이 온갖 세상의 번민과 욕망의 옷을 잠시나마 벗겨준 영화였다. 순례자의 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 위치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의 성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연결된 길이다. 이 시대 최고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다녀와  책으로 펴내 더욱 유명해진 성지 순례길이다. 부와 명성을 거머쥔 독일의 코메디언 '하페'가 건강을 잃은 후 선택한 여행!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신은 있는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주인공의 초근원적 질문과 독백이 이어진다.

 

▲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피레네 산맥으로 이어진 길. (사진 : 이영철)

 

▲ 산길과 오솔길 등 다양한 길을 만날 수 있다. (사진 : 이영철)

 

그 길은 철저히 혼자다. 그리고 침묵의 길이다. 육체적으로 고되고 외롭고 험난한 여행이지만 주인공은 진정한 자아와 만나고 신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홀로 걷는 800킬로가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사유를 확장시켜 영혼을 체험하게 하는 길이 된 것이다.  우리네 인생길이 산티아고를 걷는 여정과 오버랩되어 온다. 결국은 혼자 걷는 거다. 희로애락과 오욕칠정을 운명처럼 짊어진 한 인간으로 와서 행복하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평탄한 길만 있는 건 아니다. 험난한 길도 있다.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어떤 길을 만날지도 모른다. 삶은 결국은 여행이며 인간은 순례자다. 그 종착역은 소멸이다.

 

▲  주인공 하페는 독일의 유명 코메디언으로 부와 명성을 뒤로 하고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다 (사진 : 영화 캡쳐)

 

▲ 영화에서 보는 장면과 똑같은 장면을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볼 수 있다. (사진 : 이영철)


 현대적 삶의 외면은 치열한 경쟁과 물질만능주의, 기술문명의 총체이다.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몰라도 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내면을 성찰하고, 주위를 둘러보고, 자연과 우주와 교감하는 영적이고 정신적인 체험을 잊고 살아간다.

 

 이 한 편의 영화가 주는 깊은 의미는 바로 겸손과 겸허이다. 폭풍우치는 대자연 앞에서 우리 모두는 미약한 존재다. 그가 백만장자든 석학이든 홈리스든 상관없다. 자연 앞에서의 겸손은자신을 되돌아보게 하고 존재의 의미를 새로 더듬게 해준다. 가장 낮은 곳에서 자신을 만나고 신을 만나게 된다는 진리는 사실 어떠한 종교철학에서도 일맥상통한다.

 

▲ 레오 성당앞 광장의 새벽.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매일매일 여행은 시작된다. (사진 : 이영철)

 

비록 인류에게 핵무기가 존재하고 인공지능과 로봇이 기다리고 있는 미래라 할지라도, 한 존재로서의 사색과 깨달음과 영적인 체험을 잃지 않는 인생길을 걸어야겠다는 울림을 이 영화는 준다. 아침에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매일매일 여행은 시작된다. 어제까지 조용했던 나무가 오늘은 새싹을 틔우고 닫혀 있던 꽃망울이 활짝 열렸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

 

▲ <나의 산티아고> 영화 포스터

 

 

글 : 박지영 편집위원 mehassa@tt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