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엘뉴스]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절규 [The Scream]
에드바르 뭉크는 '절규' 그림을 총 4개를 그렸다. 그중 가장 유명한 그림이 오슬로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바로 이 그림이다. '절규'는 1890년대 뭉크가 베를린, 파리 등을 옮겨 다니며 구상했던 연작그림 주제이다. 자신의 내면의 고통을 그린 그림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을 처음엔 독일어로 'Der Schrei der Natur 자연의 절규'라고 지었다. 처음 유화 작품을 그린 후에 3점의 작품을 더 제작해서 총 4점의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제작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뭉크가 친구 두 명과 오슬로 인근 크리스티아니아 근교를 걷고 있을 때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나는 두 친구와 길을 걸었다. 태양이 지고 있으며, 나는 멜랑콜리의 기미를 느꼈다. 갑자기 하늘은 피 같은 레드로 변했다. 나는 멈추어, 길 난간에 기대었고 죽은 자처럼 피곤했다. 나는 블루 블랙의 피오르드와 도시를 넘어 피처럼 불타는 구름을 보았다. 친구들은 계속 걷고 있었고 나는 거기서 전율을 느끼며 서 있었다. 나는 자연을 꿰뚫은 큰 목소리의 절규를 느꼈다.'
THE SCREAM (스칸디나비아 예술사, 2014. 1. 15., 이담북스)
뭉크는 우울증을 앓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우울증의 근본원인은 상실감이다. 그 상실감의 가장 큰 원인은 죽음이다. 뭉크의 삶을 보면 죽음에 대한 강박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가난한 군의관이었던 아버지, 어머니가 5살때(1868년) 결핵으로 사망했고, 14살때는 어머니처럼 자신을 돌봐주던 누나 소피에 역시 결핵으로 사망했다. 죽음의 충격으로 변해가는 아버지와 벗어날 수 없었던 가난, 얼마 후 여동생 역시 정신적인 문제로 자살했으며 5남매중 유일하게 결혼했던 남동생도 결혼 후 얼마되지 않아 사망하면서 뭉크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계속 가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기록을 보면 뭉크는 1885년, 22세의 나이에 프리츠 탈로의 후원으로 첫 파리 여행을 하게 된다. 3주라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뭉크는 마네의 작품에 매력을 느꼈다. 1885년에 프리츠 탈로의 형수인 '밀리 탈로'라는 여자와 사귀게 되는데 뭉크는 밀리에게 매우 순정적인 사랑을 바치지만 그녀는 뭉크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자유분방한 여자였다. 뭉크는 이런 그녀와 연애를 하면서 끝없는 의심과 질투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결국 뭉크는 여자란 '성녀 마돈나' 이자 '흡혈귀'로 묘사할 정도로 여성에 대한 상반된 두개의 시각을 가지게 된다.
1899년 34살이 되던 해 뭉크에게 또 한번의 상처를 준 '툴라 라르센'이라는 여성을 만난다. 이 여성과 깊은 관계로 발전하면서 예술적인 황금기를 맞게 되는데 그녀의 끈질긴 결혼 요구에 질려 결별을 선언한다. 결국 툴라 라르센은 꾀병으로 뭉크를 부르게 되고 뭉크를 권총으로 위협하는 사건으로 손가락이 관통되는 부상을 입자 완전히 결별하게 된다. 그러면서 뭉크의 여성혐오는 더욱 심해지게 딘다. 그러면서 '마라의 죽음', '살인녀' 같은 작품이 나오게 된다.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1863년~1944년) 노르웨이
제작연도 1893년
기법 Tempera on board
크기 83.5 x 66cm
오슬로 국립미술관 (Oslo National Gallery)
권기정 기자 john@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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