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주요 항공사 상장기업가치 비교분석 ]
국내 항공 시장의 암울한 계절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적 항공사들 주가와 상장 기업 가치도 역대 최저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다.
최근 대한항공의 4500억 원이 넘는 유상증자 발표가 불안한 현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항공 시장의 어려움이 전 세계적인 추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글로벌 외항사는 우수한 실적 유치로 자본 시장을 맘껏 활용하며 몸집을 더욱 불리고 있다. 글로벌 항공 시장에서 국내 항공사들 입지를 살펴보고, 당면한 문제점을 되짚어 봤다.
양재필 선임기자 ryanfeel@ttlnews.com
Data Setting: Blumberg.com/Marketwatch.com/ATW Online/The Street.com
국내 1등 대한항공, 국제무대선 명함도 못 내밀어
국내 최대 항공사로 인정받고 있는 대한항공은 경쟁 외국항공사(이하 외항사)와 어느 정도 기업가치 차이가 날까. 조사 결과 대한항공은 글로벌 상장 항공사들 대비 가장 낮은 상장 기업 가치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나항공과 제주항공 등도 마찬가지였다.
글로벌 주요 대형항공사들과 적게는 5배에서 20배가량 상장 기업가치 차이가 났다. 이정도 차이는 매머드급 대기업과 중소기업 규모로 비유할 만하다.
대한항공의 주가는 1월 31일 종가 기준 주당 2만5000원 선, 시가총액(이하 시총)은 2조 원 가량 된다. 코스피 시장 시가총액 순위는 107위다. 시가총액의 경우 상장 기업 가치를 직접적으로 나타내주는 지표라 할 수 있는데, 시가총액이 크다는 것은 해당 기업이 증시에서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륙별 주요 항공사 18개를 조사한 결과 대한항공의 상장 기업 가치는 15위 수준으로, 타이항공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며, 아시아·유럽·미국 항공사들과의 기업가치 차이는 비교 자체가 불가했다.
국제 항공시장에서 가장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항공사는 미국 항공사들이다. 거대 금융시장과의 결합으로 원활한 자본 수혈과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델타항공(NYSE:DAL)의 경우 주가는 5만5700원이지만, 시총이 43조가 넘어간다. 국내 시가총액 2위인 반도체 기업 SK하이닉스의 시총인 39조 원보다도 많다.
사우스웨스트항공(NYSE:LUV)의 경우 세계 최대 LCC(저비용항공사)로 설립 이후 꾸준히 규모를 팽창해 상장 기업 가치가 37조7200억 원에 달한다. 저비용항공산업이 자본 시장과 결합해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유럽 최대 LCC인 라이언에어도 22조4500억 원 수준의 시가총액을 자랑했다. 특히 라이언에어는 직원 1인당 매출생산이 7억2000만 원에 달해 가장 높은 업무 생산성을 보여줬다. 중국 동방항공의 경우 1인당 매출 생산성은 타 항공사들보다 현저하게 낮지만, 중국이라는 거대 여객 시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엄청난 기업가치를 자랑한다. 주가는 주당 1000원대에 불과하지만 시총은 14조2000억 원에 달한다.
일본항공사들은 아시아 허브로서의 경쟁력을 여전히 지키면서 10조가 넘는 상장 기업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일본항공의 경우 파산 후 가혹한 구조조정과 회계 슬림화를 통해 재상장에 성공, 현재는 14조에 육박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싱가포르항공과 캐세이패시픽항공은 과거 아시아 최고 캐리어로서의 명성이 약해지면서 주가가 지속적으로 내리고 있다. 싱가포르항공은 10조 원, 캐세이패시픽항공은 6조 원대 기업가치를 나타내고 있다.
대한항공 혼자 역주행...재무 불안 심각
글로벌 항공사들이 자본시장의 맹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국내 1등을 자부하는 대한항공의 앞날은 갈수록 캄캄해지고 있다. 시총 2조 원대 붕괴와 더불어 최근 대규모 유상증자까지 예정돼 있어 주가 회복은 기대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대한항공이 4577억 원에 달하는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이유는 높아진 부채비율이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 급등에 따른 외화부채의 가치 상승 등으로 부채비율이 지난해 말 기준 1300%에 육박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부채비율 1000%가 넘어가면 8700억 원에 달하는 규모의 부채를 조기상환해야 하는 리스크(기한이익상실)가 발생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자본금을 늘려 부채비율을 낮춰야 한다. 또 내년까지 1조1800억 원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하는 것도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이다.
유상증자 성공을 위해서는 대한항공의 최대주주인 한진칼(지분 32.3%)이 배정물량을 사줘야 한다. 최근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도 한진칼의 유증참여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 중”이라고 말한 만큼 한진칼이 대한항공의 부담을 질 가능성은 커 보인다.
하지만 한진칼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다. 한진칼이 100% 청약을 위해 준비해야할 금액은 약 1135억 원이지만 한진칼의 현금성 자산은 264억 원(지난해 3분기 말 기준)에 불과하다. 이에 유증 참여를 위한 추가 차입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추가차입에 따른 연간 수십억 원의 이자비용은 한진칼의 몫이다. 사실상 대한항공의 부채 일부를 한진칼이 나눠 갖는 셈이다.
유증이 성공했다고 해도 대한항공의 재무불안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금융리스와 회사채, ABS(자산유동화증권) 등 2018년 만기가 되는 금융부채가 2조8110억 원에 이른다. 또 2013년 발행한 2100억 원의 영구채 이자율이 2018년 6월부터 9.9%로 높아지는 것도 큰 부담이다. 매년 큰 폭의 흑자를 내지 않는 이상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매우 커진 것이다.
금융 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의 경우 유가 상승과 달러 강세도 문제지만 미국의 금리 상승도 재무안정에 부정적”이라며 “외화로 발행된 채권이 많아 국내 기업 중 미국 금리 상승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기업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지속된 재무 불안과 금리 인상으로 인한 손실 강도가 강해지면서 대한항공의 기업가치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커졌다. 초대형 실적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글로벌 항공사들과 정반대의 흐름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美국적사 기업가치 급등… 유럽 추락
한편 주가 추이를 통해 눈여겨봐야 할 점은 미국 항공사들이 대부분 고속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 및 아시아 항공사들 하락세가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글로벌 항공시장의 양극화를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델타항공의 주가는 지난 5년간 주당 10달러에서 50달러로 5배 올랐다. 콘티넨탈항공과 합병한 유나이티드항공 역시 5년간 20달러에서 70달러까지 주가가 폭등했고, 최근 상승세를 더하고 있다. 미국 항공사 중 변방 중소항공사 규모로 취급받던 하와이안항공의 상승세는 놀라운 수준이다. 지난 2013년 주당 5~6달러 수준이던 이 항공사의 주가는 현재 50~60달러 사이에서 거래되고 있다. 지난 5년간 1000%가 넘게 오른 것이다.
반면 유럽과 아시아 지역 항공사들의 주가 흐름은 암울하기만 하다. 루프트한자독일항공의 주가는 3년 동안 30%가량 내렸고, 에어프랑스KLM의 주가는 60% 폭락했다. 에어프랑스KLM의 프랑스 증시에서 상장기업가치는 1조9000억 원 수준으로 대한항공과 비슷한 수준까지 내려왔다. 유럽 최대 항공사를 표방하는 항공사치고는 초라한 시가총액이다.
싱가포르항공 주가는 5년째 박스권을 맴돌고 있고, 캐세이패시픽항공은 최근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중국 동방항공의 경우 풍부한 중국 국내 수요 덕분에 하락은 제한적인 상황이다.
유럽 및 아시아항공사들의 주가 부진은 노선 과당 경쟁과 좌석 공급 포화로 인한 추세적인 현상으로 판단된다. 유럽-아시아 지역의 수요 증가로 항공사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과도하게 인프라 투자, 노선 증편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이후 수요 공백이 심화하면서 수익성 훼손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적 항공사의 경우 정반대의 행보를 통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수익성 하락을 막기 위한 거대항공사들의 인수합병 전쟁을 단행, 이후 남미를 중심으로 한 항공 수요가 꾸준히 팽창되면서 그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쿠바 개방화 정책으로 인기 노선이 추가되고 있는 것도 항공사들의 수익성을 높여주고 있다.
최근 대한항공을 비롯한 국내 항공사들의 부진은 아시아, 유럽 지역 항공사 주가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과도한 차입 경영과 LCC 노선 경쟁 심화, 수요 예측 실패 등 중장기적인 항공 전략에 대한 혜안이 사라지면서, 투자자들의 외면도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 LCC, 성장통 혹은 실패작?
유럽과 아시아 지역 항공사들의 부진한 주가 흐름, 추락하는 기업가치와는 다르게 꾸준한 우상향 흐름을 보여주는 항공사가 있다. 바로 유럽 최대 항공사인 라이언에어(Ryan Air)이다.
라이언에어 주가는 지난 2012년 2달러 수준에서 현재 14달러까지 700% 상승했다. 최근 주가가 14달러에서 박스권을 형성하고 있으나 최고치를 다시 경신하고 올라갈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반면 국내 LCC 시장 1위를 자부하는 제주항공의 경우 최근 주가가 연일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다. 상장 이후 주가는 40%가량 하락했고 시가총액도 6700억 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주가가 미래 가치까지 감안한다고 하면 제주항공의 하락세는 향후 부진한 실적을 반영한 것이라야 한다. 하지만 제주항공의 실적은 올해도 역대 최대치를 넘길 것으로 예상한다. 실적 전망치보다 성장성을 더욱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제주항공에 대한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뀌는 형국이다.
결국 라이언에어와 제주항공에 대한 투자자들의 비교 우위는 성장성과 안정적인 추가 매출에 기반을 둔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라이언에어의 시가총액은 22조4500억 원으로 제주항공 몸집의 33배에 달한다. 그런데도 주가수익비율(PER)은 13배 수준으로 비슷하다. 몸집이 커졌지만 그만큼 체력도 좋다는 뜻이다. 또한 성장 지표가 들락날락하며 변동성을 보이기보다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투자자들의 신뢰감을 얻은 것도 높은 기업가치를 유지하는데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저비용항공사들은 대형항공사 대비 적은 자원으로 많은 수익을 뽑아내야 한다. 생산성 지표가 성장성을 보장한다고 볼 수 있다. 제주항공의 1인당 매출생산은 5억 원 수준으로 대형항공사 대비 높지만 라이언에어는 7억2000만 원으로 제주항공 대비 50% 더 높다.
철저한 LCC 마인드로 경비 절약과 생산성 향상에 모든 것을 배팅한 결과다. 국내 저비용항공산업의 낮은 기업가치가 미래의 고성장을 암시하는지, 성장성 감퇴로 인한 부진을 의미하는지는 몇 년이 지나봐야 확실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T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