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회장(▲사진 좌측)이 공익재단 이사장을 비오너 경영자에 양보하며 그간 LG그룹의 50년 관례를 깨트렸다.
지난달 30일 LG는 LG연암문화재단•LG연암학원•LG복지재단•LG상록재단 등 그룹 소속 4개 공익재단 이사장에 이문호 전 연암대 총장을 선임했다고 밝혔다.
LG공익재단 이사장 자리에 총수가 아닌 인물이 오른 것이 이번이 처음으로 이 전 총장은 지난 1966년 LG화학에 입사해 LG 회장실 사장, 인화원장 등을 거쳐 LG연암학원이 운영하는 연암대 총장을 지냈다.
이로서 당초 구광모 회장이 공익재단 이사장에 오를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은 빗나갔다.
LG는 지난 1969년 LG연암문화재단을 세우며 구인회 창업주가 초대 이사장이 된 이래 사회공헌 분야를 확대해가며 2대 구자경 회장, 3대 구본무 회장 순으로 총수가 이사장을 승계해왔기 때문이다.
고(故) 구본무 회장에 이어 구광모 회장이 회장직에 오른지 한 달 만에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자 재계에서는 최근 정부가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규제를 강화하는 것을 염두에 둔 선제적 대응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문기구인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7일 대기업 공익재단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의 의결권을 5% 이내로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권고한 데 이어 30일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방안 최종보고서’에는 공익법인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공교롭게 LG가 며칠 사이 공익법인 이사장에 전문 경영인 선임을 발표한 시기와 겹치며 공정위에 화답하는 상황처럼 됐다.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재단은 임원 중 결원이 생기면 2개월 내에 충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에는 구본무 회장 타계 후 이사장 선임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는 4개의 LG 공익재단에 대한 승인 과정 중 ‘오비이락’이라는 말이 나올 만한 상황이다.
LG 측은 공익재단 이사장 선입 조치에 대해 구 회장이 그룹 경영에 매진하겠다는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이사장 선임이 공정위가 추진하는 공익재단에 대한 조치와는 무관하다는 이야기다.
LG관계자는 “연암문화재단과 연암학원이 (주)LG 지분을 각각 0.33%, 2.13% 보유한 정도로 재단의 계열사 지분이 거의 없고 지분 변동도 그간 없었다”며 “이 지분도 배당 수익을 재단 운영비로 활용하기 위한 것일 뿐이며 목적 사업을 준수해왔다”고 말했다. 여타 일부 대기업이 공익재단을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이용하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것.
다만 구광모 회장이 새로운 회장으로서 그룹 경영에 집중하기 위해 직접 이사장을 맡지 않지만 공익재단에 관심을 갖고 계속 지원해나갈 계획이다. LG에게 있어 공익재단은 창업자의 유지를 계승 발전시켜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은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말로 공익재단의 의미가 계승되어 왔다.
한편 이번 LG 공익재단 이사장에 총수 대신 비오너가 선임된 것과 같은 관행의 변화는 다른 그룹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사례가 늘어날 수 있는 기폭제가 된 셈이다.
공정위의 움직임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정위는 공익법인 실태조사 발표에서 “공익법인이 총수일가 지배력 확대와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공익법인과 관련 대기업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행사 금지 등 특위 권고안을 수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현재 4대 그룹에서 계열사 지분으로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익법인 이사장으로 재직하는 총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165곳 가운데 32곳에서 동일인이 대표자를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계자인 총수 2세가 대표자를 맡은 공익법인도 8곳이나 된다.
구광모 LG 회장 발(發) 형식 파괴, 전통 파괴 등 변화의 바람이 재계에 어떤 후폭풍을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연비 기자 jyb@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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