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의 여자 경찰과 트램
많은 관광객들이 튀니지와 자연스럽게 대면하는 곳은 바로 공항, 튀니지의 공항 이름은 에어로포트 튀니스 카르타지(AEROPORT TUNIS CARTHAGE) 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예전의 카르타고의 영화를 기억하면서 카르타고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공항에 카르타고라는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서 공항에 자기 이름을 붙인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나 멋대가리 없이 그냥 국제공항이라 부르는 우리들 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리면서 보이는 공항건물에는 프랑스어, 아랍어, 영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총 6개 국어로 쓰여진 환영한다는 문구도 보인다. 역시 국제적인 도시같다. 공항이름이 부를수록 정감이 간다. 카르타고라는 영어식 발음보다는 ‘까르타쥐’ 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는다.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하는데 한국은 30일 무비자 혜택을 받는다. 한국의 국력을 새삼 실감하면서 감사하는데, 영 입국심사가 까다롭다.
“튀니지에 뭐하러 왔나요?”
영어로 하는 질문을 잘 못알아 듣듯 웃으며 “관광이요(m~~ tour)”
“어디서 머무십니까?”
역시 영어로 천천히 “카르타지 탈라소 호텔이요(m~~carthage thalasso Hotel)”
“얼마나 있을거지요?”
두 손을 펴가며 보여준다.
“Yes”, ‘스탬프 꾹’
공무원다운 고압적인 태도에 조금은 마음이 상했다. 이럴 땐 모르쇠 작전이 약이다. 영어를 잘 못하는 척하면서 웃는 얼굴로 입국심사관을 보면서 생글생글, ‘우리는 절대 불법체류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라는 것을 강조하듯 말이다. 여태까지 여행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잘 통했던 방법이다. 하긴 전에 알던 일본인 친구가 가르쳐준 방법으로 별문제가 없다면 모르쇠 작전이 잘 먹힌다는 사실.
입국장을 나와서 보니 여자경찰이 교통을 정리하고 있었다. 중동권이라 해서 조금은 경직되어 있었는데, 여자경찰이 있는 사실이 튀니지가 많이 개방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곧 이동한 수도 튀니스에서도 이런 느낌을 동일하게 받았는데 이곳의 개방적 성향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차를 타고 튀니스의 메인 거리인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로 이동한다.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는 ‘1987년 11월 7일 광장’(Place du 7 Novembre 1987)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곳에는 흡사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처럼 하늘로 길게 뻗은 거대한 시계탑이 있어 이곳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바쁜 듯 걸어 다니는 모습이 다들 활기차 보인다. 조경이 잘되어 있는 넓직한 인도 옆에서는 길을 가득 매운 자동차들이 저녁 퇴근시간을 알리는 듯 하다. 조그만 녹색 택시도 다니고 푸조와 씨트로앵 같은 프랑스 자동차들, BMW, 벤츠 같은 고급차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다니고 있다. 해가 어스름 지면서 땅거미도 점점 내려않은 저녁시간, 하늘을 붉게 물들어있고 바람은 시원하게 머릿결을 어루만진다. 튀니스의 거리에는 유럽의 도시들에서 볼 수 있는 메트로 레제라 불리는 (Metro Leger, 전차)트램이 다닌다. 귀여운 한량짜리 트램이 아니고 3량짜리를 붙여서 무려 6량 짜리가 굴러다닌다. 속도도 제법 빠르다.
마치 서울의 지하철 수준으로 다니는 Metro Leger와 튀니스의 자동차들은 서로 무질서해보인다. 여기저기서 경적이 울린다. 이곳에서 트램과 자동차의 사고가 났다는 기사가 별로 없는 것을 보면 두 가지 탈것이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부러운 생각이 많이 든다. 튀지니에 오면 낙타가 사막을 느릿느릿 걸어가듯 도심 한복판에서 여유자작하면서 걸어갈 거라는 상상을 하고 왔는데 웬걸 한국만큼 사람들이 바쁘다. 가끔 지나가는 트램을 보면서 한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옆에 있던 가이드에게 물었다
“트램, 저거 어디서 타요?”,
“저 밑에 정류장이 있는데 거기까지 걸어가서 타야되요”
트램을 쳐다보았는데 트램 안의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있다. ‘저거 타게 되면 튀니지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내가 동물원 원숭이 되는 것이 시간문제일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한번은 꼭 타고 싶었다. 결국 트램은 못타고 튀니지에서 자동차만 원 없이 탔다. 트램을 보면서 비교되는 것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오래되고 낡은 트램이다. 이 트램은 TV 광고에도 나오기도 하고 영화의 장면에도 많이 나온 덕택에 그곳을 방문한 관광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의 트램은 한 여름철 관광객들이 많은 때에는 한 시간을 꼬박 기다려서 타기도 한다. 그리고 유럽의 트램들도 관광객들이 즐겨 이용하는데, 우리도 60년대 말 까지도 마포까지 다니는 ‘전차’ 라는 것이 있었다. 어르신들이 기억하는 은방울 자매(지금은 호호 할머니들이시다 의 ‘마포종점’ 이란 노래도 있듯이 좋은 볼거리, 탈거리라 생각되는데 지금은 개발의 논리에 없어진 우리의 전차가 아깝게만 생각된다. 뭐 그런 것이 한 두개가 아니다. 어렸을 적 타봤던 수인선 꼬마열차도 이제는 기억 속에 희미하게만 자리잡고 있을 뿐 이제는 볼수없는 기억속의 물건이 되어버렸다. 튀니지의 트램은 관광객들보다는 튀니스 시민들의 발이다. 트램의 표면에는 튀니지의 유명 놀이동산인 야스민 하마멧에 있는 카르타지 랜드(Carthage Land) 를 홍보하는 랩핑을 하고 다닌다. 그리고 사거리에는 포스가 넘치는 여자 경찰이 선글라스에, 더워 보이는 두꺼운 백색의 장갑을 끼고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여경을 찍을려고 하자 같이 있던 현지 가이드가 바로 제지를 한다.
“주변에 사복을 입은 비밀 경찰이 많아요”, “여기 주변에 깔려있으니 건물들, 특히 경찰들 사진 촬영을 하지 말아요” 한다. “관광객들도 예외가 없습니다.” 이것이 말로만 들었던 비밀경찰인가 보다. 가이드의 제지에 결국 들었던 카메라를 가지고 얼른 한 두컷을 찍는데 만족해야 했는데, 찍으면서도 어린 시절 젊은 여성의 나체를 몰래 본 것처럼 여간 마음이 두근거리는 것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선배들이 겪었던 군사정권시절의 억압된 느낌을 여기서 받는다고 해야 할까? 밖으로 보이는 생동감과 평온함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조금은 위축이 되고 만다. 그러나 나는 관광객이 아닌가. 내가 느낄 수 있는 것과 볼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볼려고 노력해본다. 그러면서도 길거리의 여자경찰이 신기해서 계속 보고 있는데 선글라스 속의 여자경찰의 눈과 마주친 것 같다. 순간 조금은 움찔. 웃어주면서 보고 있었는데 조금은 신경이 쓰인다. 아까 선글라스를 벗은 맨 얼굴이 궁금하였다. 일반적으로 아랍권에서는 여자 경찰을 보기가 쉽지 않다. 최근 튀니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알제리에서도 여성범죄 수사를 위해 여자 경찰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랍에서는 여성들의 공직진출이나 사회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여에서도 교통 수신호를 하는 여경과 독일제 BMW 모터사이클을 타는 여경들을 보면서 역시 포스가 넘친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와서 카리스마 넘치는 여경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으나 부끄부끄한 생각과 공권력에 대한 접근자체가 영 껄끄러운지라 실행을 못하고 있었으나 금단의 열매를 몰래 먹듯이 여기서 앵글에 담아보았다.
튀니스의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Avenue Habib Bourguiba) 거리는 그리 길지 않다. 시계탑이 있는 광장에서 시작하여 프랑스 문까지 이어지는 길이 튀니스의 주요 거리이다. 프랑스 에비뉴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축되어진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프랑스풍의 건물들이 돋보이는 신시가지와 더불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구시가지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장소다. 프랑스풍의 국립극장과 그리스 정교회, 이슬람 시대의 석학 이븐 할둔(ابن خلدون, Ibn Khaldun, 중세 이슬람 세계를 대표하는 역사가·사상가·정치가. 1332~1406)의 동상이 이 거리에 있다. 도로 좌우로는 깔끔하게 정리된 가로수 조경이 돼 있어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고 파리를 연상시키는 보도가 이 도시의 운치를 더해준다.
최소 100여년이 넘은 듯한 프랑스풍의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사람들의 눈을 끈다. 도심의 심장부답게 관청, 호텔 등과 오래된 프랑스풍 빌딩이 줄지어 있고, 길거리 사이의 골목에는 작은 길거리 카페들과 작은 갤러리들이 눈이 보인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풍의 인테리어를 가진 카페도 보인다. 이런 도로변 카페나 갤러리 등으로 인해 한층 유럽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이런 거리를 지나서 작은 개선문 모양의 프랑스 문을 만나게 된다. 프랑스문은 아랍어로는 생뚱맞게도 Bab el Bahr (밥엘바하르) 라 하는데 ‘바다로 향한 문’이라는 뜻을 가진다. 아랍어로 ‘바하’, ‘바하리’ 라는 단어는 바다를 뜻하는데 튀니지인들의 바다에 대한 염원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밥엘바하르(Bab el Bahr) 문은 프랑스가 이 나라에 들어왔을 때 원래 있던 문을 헐고 프랑스 파리에 있는 개선문을 본따서 건축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원래의 점령자로서 피지배자들의 문화에 대해 방자한 프랑스인들의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 같아 흥미롭다. 그리고 ‘밥(Bab)’ 이라는 단어는 커다란 문을 가리킬 때 흔히 듣게 되는 단어이다. 참고로 모로코의 전통 염색공장으로 유명한 도시 페스의 입구에도 Bob Boujloud(밥 부줄르드) 라는 문이 있다.
성형수술 천국 튀니지
튀니스의 길거리에 보이는 여성들은 이목구비가 시원한 것이 소위 말하는 품절녀들이 많다. 그래서 여기에는 현대 의학의 힘(?)은 별로 필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성형외과 의사분들이 파리를 날릴 것 같에는 정작 이곳의 고객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아랍권의 인종 특성상 사람들의 특성상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 미녀들이라 달리 성형수술이 필요 없다 생각 되었지만 그것은 나만의 생각인 것 같다. 아름껵거리에은 것은 모든 사람들의 욕망인데 그 본바탕이 조금 이쁘다고 성형수술 보다는 패션에 투자 하지 않을 거라는 순진들은 이은 잘못 이한 것이다. 아랍여성들은 밖으로 보이는 곳을 치장하는데 시간을 많이 사용한다. 눈만 내놓은 부르카를 입은 여성들은 눈 화장에 시간목구비을 많이 들이고 있고, 이란에서는 코끝이 위로 향한 가늘고 작은 코를 만들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는 이란 여성이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화려한 속옷을 구입하는 아랍여성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튀니지의 경우도 오똑한 코와 몸의 힘잘보이게 하기 위해 고치는 수술이 성행해서 였다고 한다.
이러한 성향을 바탕으로 튀니지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시술비를 무기로 튀니지 여성들과 서구 여성들을 유혹하고 있다. 최근 성형 관광으로 주목 받는 튀니스의 성형외과에는 클리닉마다 튀니지, 모로코, 유럽에서 찾아온 고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저마다 코를 높이고, 앞트임, 옆트임 눈을 크게 하고, 입술을 고치거나 팔, 다리 복부의 지방흡입술 및 각종 성형 수술을 받기 위해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시술 능력으로 무장한 튀니지로 모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휴가를 겸한 관광은 보너스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6,000유로(약 천만원)하는 가슴확대수술이 튀니지에서는 2,600유로(500만원)정도면 가능하다고 하며, 5,000유로(900여만원) 정도하는 안면윤곽수술도 이곳에서는 2,600유로면 가능하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리적으로 유럽, 특히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가깝고, 유럽 의사 라이센스를 가진 의사들, 결정적으로 프랑스어로 의사소통에도 큰 어려움이 없는 튀니지가 유럽의 성형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성형 관광객의 숫자를 보면 2005년도에 2,000명이던 외국인 성형수술 관광객이 2007년도에는 무려 15,000명으로 늘어났다는 통계가 있다. 마치 태국이 성전환 수술로 유명해진 것처럼, 우리나라에 일본, 중국 사람들이 성형관광 오듯이 말이다. 수술 후 회복단계에 하마메트나 수스의 휴양지에서 쉬는 일정, 매력있는 튀니지의 관광자원이다.
팁
‘1987년 11월 7일 광장’(Place du 7 Novembre 1987)
1987.11.7일 벤 알리 총리는 대통령 주치의들의 서명을 받아 건강상의 이유로 부르기바 대통령을 사직시키고 헌법 규정에 따라 제2대 대통령에 취임한 '벤 알리' 대통령의 취임일을 기념하여 ‘1987년 11월 7일 광장’(Place du 7 Novembre 1987) 이라 이름 붙였다.
**1987년 빵값 인상 파동은 빵 값의 급격한 인상으로 인해 격분한 민중들이 폭동을 일으킨 사건으로 이 때 국무총리로 있던 현재의 대통령(벤 알리)이 경찰을 동원하여 폭동을 진압한다. 그리고 연로한 부르기바 대통령을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 하게 하고 대통령직을 물려 받았다. 이 사건을 무혈 쿠테타 라고 한다. 그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은 하비브 부르기바 대통령을 국부로 존경하고 칭송한다.
권기정 기자 john@ttl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