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엘뉴스] 한때 대한민국 젊은이들을 여행에 빠져들게 아니 미치게 만들었던 이가 있었다.
소위 말해 ‘여행으로 먹고 사는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의 지표였던 그는 바로 '여행에 미치다'의 조준기 대표다.
2014년 페이스북의 한 여행커뮤니티로 출발한 ‘여행에 미치다’는 인스타그램, 유튜브까지 SNS상에서 영역을 확장해 3년 만에 국내 최대 여행 온라인 커뮤니티로 성장한다. 거기에 수익까지 내자 그는 여행 콘텐츠 산업에서 ‘성공의 아이콘’, ‘청년 신화’ 등으로 불리며 롤모델로 꼽히기까지 했다.
특히 MZ세대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만큼 여행업계 내에서의 파급력도 상당했다.
여행 콘텐츠 제작 분야에서 독보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업체였기에 웬만한 주한 외국관광청들은 조 대표 및 ‘여행에 미치다’와 협력하거나 손을 잡고 싶어했고 한국인을 주 타깃으로 하는 관광지 설명 행사마다 초청된 그를 마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행에 미치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왔던 여행을 추억하는 문구와 조준기 대표. 수많은 이들이 이에 동감했다.
하지만 지난달 29일부터 불거진 여행에 미치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내 불법 음란촬영물 게재 사건으로 조 대표는 물론 여행에 미치다의 명성까지 추락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여행관광산업이 살아있다는 신호를 내보낼 수 있었던 것은 랜선여행이던, 추억여행이던 각종 타이틀로 무장한 여행 콘텐츠들의 지속적인 노출이었다. 이런 콘텐츠들을 보며 여행을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며 우울한 마음을 달래왔던 대중들은 더욱 크게 분노하는 중이다.
비단 개인이나 한 업체의 문제에서 나아가 여행업계 전반적으로 작지 않은 나비효과가 일지는 않을까 우려도 있다.
여행 하나에만 집중한 ‘여행에 미치다’의 주된 협력업체들은 주한 외국관광청, 한국관광공사, 국내외 여행 관련 업체 등으로 여행 콘텐츠 제작은 물론 관련 프로모션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이곳과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둘째라면 서러울만큼 여행분야는 화제성이 중요한 곳이다. 양질의 콘텐츠가 온라인을 통한 검색량이나 상품 예약율의 견인 역할을 할 정도로 성장하면서 SNS 채널 및 인플루언서 활용 의존도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해왔다.
적나라한 광고보다 유명 인플루언서의 신뢰감 있는 체험 후기나 추천을 더 신뢰하는 젊은 세대에게 인기 인플루언서가 가본 곳, 그의 실제 체험을 담은 포스팅은 지역 인지도 견인과 더불어 저절로 여행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또한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SNS 마케팅은 유명 연예인들을 기용하거나 TV프로그램 촬영 협찬에 비해서는 비교적 높지 않은(?) 예산으로 가성비 효과를 볼 수 있던 탓에 증가한 것이 컸다. 그러나 이것도 옛말이다. 영상 채널이 주도하면서 돈 천만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론되는 경우도 생겼다.
굳이 탑 인플루언서만 고집하지 않는다면 여행에 드는 제반 비용만 협찬 후 관련된 포스팅 노출이 가능하다보니 여행상품들이 소셜커머스, 홈쇼핑에 단골로 팔려나오듯 여행 콘텐츠들 역시 인플루언서를 통한 노출은 필수가 됐다.
코로나19 이전 중소 규모의 여행사들은 여행 인플루언서를 마케팅 담당자로 고용해 인플루언서를 통한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SNS 생리를 잘 아는 이가 직접 관장한다면 더욱 시너지 효과를 얻을 것이란 심산도 있지만 노출이 잘되고 신뢰도 높은 인플루언서 섭외도 쉽기 때문이다. 유명 패키지 여행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명 연예인들에 이어 인기 인플루언서들과 동행하는 상품을 만들기도 했다.
문제는 높은 파급력과 업계 내 의존도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도, 지금도 팔로워 수 외에는 인플루언서를 검증할만한 마땅한 기준도 없고 특별한 장치가 마련돼있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상당수 외국관광청들의 경우 한국시장 홍보마케팅에 국내에 내놓라하는 여행 인플루언서들을 활용해왔던 상태인데 이번 조 대표와 같은 사태가 또 반복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여행업계 일각에서는 여행 후 제대로 포스팅이 되지 않거나 섭외를 갑자기 취소하는 경우가 빈번해지며 인플루언서들의 신뢰도나 검증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시돼왔다. 1년 달력이 꽉찰 정도로 여행 체험이 빈번하게 들어오는 일부 인플루언서들의 경우 차후에 들어온 지역이 구미에 당긴다면 이미 항공권이 발권됐다고 해도 나중에 들어온 지역을 선택해 난처해진 담당자들이 적지 않다.
이와 반대로 업체가 여행 협찬을 빌미로 여행 인플루언서들을 입맛대로 고용하는 부작용도 조금씩 쏟아져나왔다. 특정 업체의 경우 포스팅 상단 노출 빈도나 팔로워 수보다 해당 업체(혹은 특정 담당자)에게 우호적인 인플루언서들에게만 기회를 준다는 불만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결국 이번 사태는 인플루언서를 통한 SNS 활용은 양날의 검임을 다시한번 자각할 때임을 알리는 신호가 됐다. 어쩌면 특정 인플루언서들이 여행업계를 주도하며 좌지우지하게 된 상황은 화려한 마케팅이나 특정 채널에 과잉의존한 결과가 만들어 낸 것일 수도 있다.
온라인 특성상 한번 퍼진 것은 주어담을 수 없다. 좋을 때야 수백만명에게 호응을 한번에 받을 수 있지만 나쁜 상황에서 역시 순식간에 외면받을 수 있음을 항상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가이드라인이나 기준 없이 활용하다 이번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또 발생한다면 오직 포스트 코로나만 바라보며 회복을 준비하는 여행업계를 또다시 주저앉히는 일이다.
정연비 기자 jyb@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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