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기행(3) 보물이 가득한 재래시장
2016-09-12 23:07:00 | 권기정 기자

1-03 Souk - 보물이 가득한 재래시장

 

이슬람에에서는 시장을 수크(Souk) 라고 한다. 전 세계 수크 중에서 유명한 것이 두바이의 금시장 (Dubai Gold Souk) 인데 금 세공기술이 뛰어나기도 하고 면세지역이라 일반 시중가보다 저렴하기에 많은 관광객들과 상인들이 찾는다. 튀니지의 수도인 튀니스의 수크는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의 재래시장 같다고 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올리브 나무의 모스크란 뜻의 지투나 모스크(The Great Mosque of Al-Zaytuna, 혹은 Mosquée Zitouna 723년 건립)를 중심으로 의류 전문 상가, 향신료 전문 상가, 신발 전문 상가 등 구역이 나뉘어져있다. 튀니스의 재래시장에 가려면 구시가지인 메디나(Medina,아랍어: المدينة المنورة)를 찾아가야 하는데 메디나의 뜻은 원래 이슬람의 ‘예언자 무하마드의 도시’ 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중에는 사람들이 모여서는 ‘성읍’, ‘도시’ 의 의미가 되어 ‘메디나’ 는 마치 우리의 해미읍성이나 낙안읍성같이 성곽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도시들의 오래된 구시가지를 의미하게 되었다.

 

튀니스의 재래시장 수크는 튀니스 중심의 가장 번화한 길인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Avenue Habib Bourguiba)를 따라가면 만나게 되는 프랑스 거리(Avenue de France) 끝에 있다. 여기서 앞서 말한 프랑스 문을 지나면서 바로 시작되는데 튀니스에서 꼭 권하는 일정이다. 낮 시간에 가면 일부 상점들이 문을 닫는 경우가 있으니 오전이나 오후가 지나서 가면 좋다.

 

 

프랑스 문을 지나면 작은 분수가 보인다.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이는 이곳은 수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시장 초입에는 카펫과 스타워즈에 나왔던 ‘요다’가 입었던 젤라바, 캬샤비아 옷을 파는 상점들이 보이고 상점을 따라 동네 골목 시장같이 작은 골목길로 양분되어 있다. 사람이 많이 다닐 때에는 어깨가 서로 부딪힐 것 같다. 이렇게 꽤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동판 공예를 하는 사람들이 망치로 동판을 두들기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망치와 작은 ‘정’ 을 두들겨서 만드는 솜씨가 여간이 아니다. 이곳 사람들은 우리네 사람들처럼 손재주들이 많다고 느껴진다. 낙타와 야자나무, 오아시스를 표현한 작은 동판에 이름을 새기라고 한다.

“친구, 여기에 이름을 새겨줍니다”

“동양의 글도 가능해요?”

“당신나라 ‘찌나’ 글씨도 가능합니다.”

주인은 나를 중국인으로 착각했나보다. 그리고는 종이에 써주면 그려서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전시해 놓은 샘플들을 보니 일본인이 이곳을 방문했는지 한문으로도 일본인 같은 이름이 새겨져있다. 이 정도면 눈썰미 좋은 주인이 한글로 이름 새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하긴 머리를 짧게 자르면 일본인, 길게 다니면 중국인이라고들 하니 이번 여행에선 머리가 길었나보다.

“20 디나르, 20 디나르”

주인은 연신 20디나르를 외친다. 20디나르는 약 2만원, 여기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옆집도 외국인 그것도 동양인이 온 것이 신기한지 한마디 거든다. 결국 웃으며 나중에 사겠다고 하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다시 골목길로 들어가니 이슬람의 이국적인 물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길은 미로와 같이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주요한 길은 십자로 얽혀있어 의외로 단순하다. 한쪽이 막힌 것 같으면 다른 한쪽으로 돌아 나오면 아까의 그곳이다. 낙타의 뼈로 만든 보석함과 야자나무로 만든 체스판도 보이고 울긋불긋한 채색 도자기도 보인다. 좀 촌스럽긴 하지만 유리판 위에 그린 오래된 당나귀와 닭을 그린 그림도 보인다. 튀니지 전통 목각인형들도 가게의 한쪽 구석에 턱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특히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전통시장 수크에는 화려한 채색이 돋보이는 나불(Nabul) 지역에서 만든 전통 도기와 각종 향신료, 시샤(Shisha)라 불리는 물담배, 가죽 가방 등 온갖 물건을 판매하고 있어 구경거리가 쏠쏠하다. 그 중에서도 튀니지 전통의 붉은색 펠트 모자는 그 색이 눈에 확 띤다. 시장의 활기찬 모습과 번잡함은 우리네 시장과 똑같지만 이들은 상대적으로 느긋해 보인다. 점심때가 되면 가게들이 문을 닫기도 한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마치 시간의 흐름이 ‘신밧드의 모험’에 나옴직한 중세의 아랍도시에 머문 듯 한 느낌이다. 오래된 골동품 상점에 들어가니 주인은 1차 대전이전에 만들었을 것 같은 구식 권총들과 아랍 전통의 반월도를 보여주면서 가게를 운영하던 자신의 아버지 때부터 모은 물건들이라고 자랑한다. 낙타 뼈로 만든 보석함이 신기한 듯 만지작 거리니 가게 주인은 연신 흥정을 붙인다. “1개 40디나르”, 가격은 우리 돈 4 만원, 역시 여기에는 흥정이 필수, “3개 60디나르!!” “OK! friend ”, 3개를 일괄구입하면서 6만원 정도에 구입을 했다. 이것은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선물로 갔지만 슬프게도 사용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문제는 내 취향이란 거다. 난 이쁘기만 한데..

 

 

시장의 골목길을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찻집이 보인다. 사람들이 안에서 차를 마시면서 물담배 시샤(shisha)를 피울 수 있는 찻집이다. 배가 나온 통통한 유럽관광객이 물담배를 ‘보글보글’ 소리를 내면서 피고 있다. 여러 번 펴본 듯 익숙하게 잘 빨고 있다. 튀니지를 비롯한 중동지역에서는 물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물 담배가 물통을 거치면서 순화되는 필터의 기능을 가지고 있어 순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술을 안마시는 이슬람권의 특성상 이곳은 담배를 나누어 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 같다. 여럿이 물담배를 필 때는 손에 개인 필터들을 가지고 있어서 필터만 갈아껴서 사용한다. 처음에 그런 것을 몰랐을 때 우리의 ‘술잔 돌리기’ 같이 이들도 친밀감의 표현으로 ‘담배 돌리기’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아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담배를 한자리에서 나누어 피는 것은 그만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아닐까 한다.

 

카페를 나와 돌아본 수크는 파는 물건에 따라 여러 부분으로 나뉜다. 전문상가가 있는 우리의 남대문 시장을 생각하면 된다. 이곳 수크의 규모는 반경 2km에 불과하지만 골목만 수백 개에 이르고 골목의 길이를 다 합치면 40km에 이를 정도로 복잡한 곳이라고 한다. 시장 안 길은 언제나 사람과 적치해둔 물건으로 서로 뒤엉킨 것 같지만 나름대로 질서를 가지고 업종별로 지역이 나뉘어 있는 것이다. 시장 길을 걷다보면 발견하게 되는 7세기의 이슬람 사원인 지투나(Mosquée Zitouna) 북쪽에 있는 수크 엘-아타리느(souk el-Attarine)은 13세기경에 세워진 곳으로 향신료 제품을 주로 판다고 한다. 바로 앞에서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튀니지의 특산물인 올리브 기름과 대추야자, 그리고 각종 아랍풍의 달달한 불량식품 같은 사탕과 피스타치오, 잣, 호두, 아몬드, 땅콩 등 다양한 견과류를 팔고 있다. 지투나 모스크를 돌아서 가면 수크 엘-투르크(souk el-Trouk)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아랍 스타일의 옷을 만들어서 판다. 모로코에서 본 젤라바를 이곳에서 살려고 했는데 외국인이라 비싸게 부른다. 결국 흥정도 시작 못한 상황 발생. 그리고 사진에도 보이는 지투나 모스크의 첨탑 미나렛(Minaret)을 잘 볼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카펫 가게 옥상으로 올라가게 된다. 가게 앞에는 모스크의 풍경을 무료로 볼 수 있으니 올라가라는 호객꾼이 여기저기에 있다.

 

 

 

 

“고니찌와, 고니찌와. Good, welcome, nice view”를 연신 외치는 호객꾼은 안사도 좋으니 들어만 가라하는데 어째 낚였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뭔지, 그래도 많은 여행객들이 ‘테라스’에 올라가서 보라고 추천한다. 그것은 바로 옥상에서 메디나를 바라보는 모스크의 전경 때문이다. 이렇게 모스크와 메디나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은 카펫 판매점이나 향수 판매점같이 가격이 좀 나가는 물건의 가게들인데 다들 손님 유치 차원에서 민트 티 등을 대접하기도 하면서 구매를 유도하게 된다. 돈이 없는 여행자들은 미안한 마음에 구경하고 나오면서 주인의 눈치도 보게 되는데 주인은 별로 게의치 않는 눈치다. 밑에서 보는 모스크의 모습과 위에서 보는 모스크의 모습은 확연히 틀리다. 그래서 사람들이 높은 곳의 전망이 좋은 스카이라운지를 선호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슬람권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메디나 안의 건물들은 모스크 보다 높게 짓지 않는다. 높게 지었다가는 알라신에게 도전하는 불경스러운 일이라 해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여기서 성서의 바벨탑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래서 대부분의 건물들이 모스크 보다 높이가 낮은 이유이다. 그런 이유로 옥상에 올라가야 메디나의 모습이 한눈에 보이게 되는데, 옥상들은 지어진지 오래된 건물이라 건축당시의 모습들을 간직하고 있다. 옥상의 내벽은 아랍 특유의 이슬람을 상징하는 녹색, 푸른색, 노랑색 타일 등으로 마감되어 있는데 아치모양과 창살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이곳이 오래된 도시의 일부분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카펫 주인 역시 연신 자신들의 수공예품 카펫을 자랑하지만 한 장에 300-500만원이 되는 제품들을 선뜻 구입하기 어려운 것을 아는지라 다른 돈 많은 유럽관광객들에게 눈길을 돌린다. 카펫 가게를 나오면서 호객꾼의 간지러운 인사와 눈길을 뒤로 하고 지투나 모스크로 다시 내려간다. 시장 구경을 하고 나오면서 이런 재미있는 곳을 언제 다시 올까 생각하니 이곳에서의 짧은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물론 튀니지를 떠나기 전에 수크를 다시 찾아왔지만 말이다.

 

권기정 기자  john@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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