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엘뉴스] 서울특별시관광협회(회장 양무승. 이하 서울시협)는 전라북도관광협회(회장 조오익. 이하 전북도협)와 함께 지난 13, 14일 양일간 서울시협 국내여행업위원회(위원장 김명섭) 소속 회원사 대표 및 임직원을 대상으로 개최한 ‘2023 백제역사유적지구 팸투어’를 성황리에 마쳤다.
▲공산성 앞에서 팸투어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남겼다
이번 팸투어는 지난 2015년 7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의 12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를 기반으로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한 관광상품 개발 및 홍보를 통해 많은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됐다.
이번 팸투어에는 김명섭 서울시협 국내여행분과위원회 위원장과 위원을 비롯한 서울지역 21개 여행사 대표 및 임직원 22명, 여행전문매체 기자 2명, 서울시협 사무국 직원 2명 등 총 26명과 전북도협 사무국 임직원 4명이 참가했다.
▲공산성 내 모습
이번 팸투어 참가자 일행은 1박 2일 동안 ▶공주 ▷공산성 ▷무령왕릉과 왕릉원 ▶부여 ▷부소산성 ▷낙화암 ▷고란사 ▷고란사 나루터에서 구두레 나루터까지 황포돛배 체험, 세계유산축전이 개최되고 있는 ▶익산 ▷미륵사지 ▷국립익산박물관 ▷보석박물관 및 주얼리 만들기 체험 등의 백제역사유적지구 일대를 꼼꼼히 돌아 봤다.
백제역사유적지는 지난 2015년 7월 4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의 12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거뒀다. 유네스코는 인증 전 백제역사유적지구를 구성하는 8개 단위 유산 조사를 통해 과거 백제가 중국으로부터 도시 계획 건축 기술, 예술, 종교 등을 받아 들여 더욱 발전시킨 뒤, 일본과 주변 여러 나라에 전해주었음을 증명한다고 인정한 것으로 백제가 활발한 교류를 통해 중국, 백제, 일본 등 동아시아 삼국 고대 왕국들 사이의 상호 교류 역사를 잘 보여주며, 이런 교류를 통해 백제가 불교를 확산시키고, 내세관, 종교, 건축 기술, 예술미 등을 포함하고 있는 백제 역사와 문화의 특별한 점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
▲부소산성, 부소산문 앞에서 팸투어 참가자들의 단체사진 모습
국내에서보다 세계에서 먼저 역사적 가치와 보존성을 알아보고 인증해 준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이제 세계적인 역사기행 관광지로 충분한 자격을 갖추게 됐다. 유네스코로부터 인정받아 세계적인 유산으로 떠오른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우리 고대 선조들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물려 준 고귀하고 값진 보물로 이제부터는 우리가 정성을 다해 잘 가꾸고 보존해 나가야 할 사명을 갖게 됐다. 단순한 관광지 이상을 넘어 세계적인 가치를 확인받은 이곳을 먼저 우리 국민들 모두가 한번쯤은 방문해 삼국시대 백제의 숨결을 보고, 느끼고, 경험해 보면서 앞으로 세계적인 관광지로 육성시켜 나가야 한다.
▲백제역사유적지구 설명 및 안내도 모습
백제역사유적지구를 돌아보면서 특별했던 백제에 대한 그동안의 상식과 인식을 재조명하고, 일부 잘못 전해진 백제의 역사에 대해서도 바르게 배울 수 있게 된다. 또한,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백제의 빛난 문화와 예술적인 가치를 느껴보는 것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점이라 생각된다. 특히,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지나간 삼국시대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보면서,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문화와 관습 등을 고려하지 않고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고, 느끼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한, 그런 시각에서 보고 느끼다 보니 당시의 역사적인 모습이 놀랍고 대단했다는 사실 조차도 느끼지 못하게 경우도 대부분이다.
이런 백제역사유적지구에 대한 역사 기행 관광을 활성화시키고, 나아가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세계유산으로써 관심을 끌 수 있는 새로운 상품 및 특화된 관광 상품을 개발해 내야 한다. 이번 팸투어에 참가한 여행사 관계자들은 이런 마음으로 팸투어 기간 내내 신상품 개발을 위한 자료 조사에 심혈을 기우렸다.
■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世界遺産) ... 백제역사유적지구(百濟歷史遺蹟地區)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 공산성 입구 모습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란 세계의 모든 인류가 주권 · 소유권 · 세대를 초월하여 공동으로 보존하고 관리해야 할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된 유산을 말한다. 백제는 기원전 18년부터 서기 660년까지 약 700여 년간 존속한 고대 국가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백제의 왕도와 관련된 고고학적 유적이다. 백제 후기(475~660)의 유산으로 왕성, 사찰, 왕릉, 외곽성으로 이뤄져 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문화 발전이 절정에 이르렀던 백제의 문화를 대표하는 유산이자 동아시아의 문명 형성에 기여한 백제의 역할을 생생히 확인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고 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 안내판
백제역사유산지구는 ▶(공주) 웅진시기 왕도와 관련된 유적 2곳 ▷천혜의 요충지에 건립된 왕궁성, 공주 공산성 ▷웅진시기의 왕릉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부여) 사비시기 왕도와 관련된 유적 4곳 ▷사비시기 왕궁과 후원, 부여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백제인의 사상적 중심, 부여 정림사지 ▷사비시기의 왕릉군, 부여 왕릉원 ▷한반도 최초의 수도 외곽 방어시설, 부여 나성 ▶(익산) 백제후기 무왕과 관련된 유적 2곳 ▷고대 왕궁 구조의 모범을 보여주는, 익산 왕궁리유적 ▷백제인드의 염원을 보여주는 동아시아 최대의 사찰터, 익산 미륵사지 등 3개 지역에 총 8개의 유적을 포함하고 있다.
#백제의 숨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 공주 공산성(公州 公山城)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공산성 서쪽에 위치한 금서루 모습. 공산성 입구
공주 공산성 4곳의 성문 중 금서루(錦西樓)는 서쪽에 위치한 문루(門樓. 궁문 또는 성문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로 성문의 터(자리)만 남아있었는데 이후 성내로 진입하는 차도로 사용되다가 1993년도에 복원됐다. 공산성 매표소에서 조금 올라가면 공산성 출입문 역할을 하고 있는 금서루로 가는 길은 오르기 쉽고 편하게 만들어져 있다. 매표소에서 조금 올라가면, 공주와 관련된 인물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들을 모아 논 비석군이 길 우측으로 나란히 이어져 있다.
▲공산성 입구에 위치한 비석군 모습
대다수는 인물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을 새긴 송덕비인데, 여기에는 영세불망비, 청간선정비, 거사비, 만세불망비, 유애불망비, 청덕선정비 등의 글이 새겨져 있다. 우의정, 도순찰사, 관찰사, 암행어사, 목사, 판관, 군수, 우영장, 중군 등 주로 충청감영과 공주목 관아에 배치됐던 관리의 송덕비가 많다. 비석군을 지나 우측으로 휘어지는 얕은 언덕길을 조금 더 올라가면 사람이 통행할 수 있는 문이 있고, 그 옆 우측으로 돌계단이 이어지면서 통행문 우측 위쪽으로 돌로 쌓은 성과 이어져있는 금서루가 우뚝 서 있다.
▲진남루 우측 공산성 성곽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 팸투어 일행 모습
통행문을 지나면 길이 좌우로 있으며, 우측 길을 따라 약 5분 정도 올라가면 공산성 백제왕성 창고유적 안내판과 유적지가 있다. 이곳에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더 올라가면 함께 돌로 만든 쌍수교가 있고, 그 아래로 성벽과 이어진 통로 위에 공산성 남쪽 성문인 진남루가 보인다. 진남루 좌우로 성벽이 이어지며, 우측 성곽 길을 따라 내려오면 공산성 정문인 금서루로 이어진다. 성곽 좌측으로는 공주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공산성 남쪽 성문인 진남루 누각에서 팸투어 일행이 단체사진을 촬영했다
공산의 경사진 계곡과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 절묘하게 세운 공산성의 성곽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옛 백제의 빛나는 유산을 보며 즐기는 산책코스로도 그만이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보이는 시가지와 공산의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공산성, 옛 백제를 지켜주던 든든했던 산성에서 지금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스트레스 해소와 최고의 힐링으로 휴식을 제공하며 건강을 지켜주고 있는 듯하다.
▲진남루 우측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성곽 길을 따라 공산성을 돌아보고 있는 팸투어 일행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위치한 공산성은 해발고도 110m의 공산에 위치해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600년 전인 백제 웅진시기(475~538년) 백제의 대표적인 성곽으로 산성 안에 왕이 거주하는 왕궁과 주요 시설 등을 두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구조의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공산성 내 진남루 앞쪽에 위치한 쌍수교 모습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문주왕 원년인 475년, 수도였던 한성이 함락되면서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도읍(수도)을 옮기게 됐으며, 이후 이곳에서 문주왕을 비롯해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을 거쳐 성왕 16년인 538년, 지금의 부여인 사비로 옮길 때까지 약 64년간 백제의 왕성으로 명성을 이어갔다. 공산성은 백제 시대에는 웅진성,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조선시대 인조 이후에는 쌍수상선으로 불리는 등 신라, 고려, 조선 시대까지 행정과 군사적 요충지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산성이다.
▲공산성의 입구인 금서루를 성내에서 바라 본 모습
공산성은 첫째, 축구장 24배에 달하는 총 면적 20만㎡ 규모의 거대한 산성이란 점. 둘째, 산봉우리를 연결하고 깊은 계곡을 가로 질러 성벽을 쌓아 방어력을 극대화한 전형적인 방어용 산성이란 점. 셋째, 고구려가 위치한 북쪽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동, 서, 남쪽은 가파른 성벽이 자리하고 있는 천연 요새로 방어에 유리한 이점과 이런 든든한 산성을 짓고 그 안에 왕궁을 둔 매우 독특한 산성이란 점 등이 매우 돋보이는 특징으로 손꼽힌다.
▲공산성을 돌아보고 금서루를 통해 성 밖으로 내려오고 있는 팸투어 일행 모습
천연 요새인 공산성은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공산성의 길이는 백제시대 토성 735m, 신라시대 석성 1925m로 총 2,660m이며,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은 포곡형으로 원래 백제 시대에는 토성이었다. 조선시대 인조, 선조 이후에 석성으로 개축해 현재는 동쪽의 735m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석성으로 되어 있다.
▲공산성 내 만하루 모습
공산성은 동서남북 네 곳에서 문터가 확인됐다. 남문인 진남루(鎭南樓)(문화재자료 제48호)와 북문인 공북루(拱北樓)(도지정유형무하재 제37호)가 남아 있었고, 동문과 서문은 지난 1993년에 복원해 각각 영동루(迎東樓)와 금서루(錦西樓)로 명명했다. 공산성은 백제시대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감영을 비롯해 중군영 등 중요한 시설이 있었다.
▲공산성 내 위치한 옛 백제왕성 창고 터 모습
공산성 내 자리하고 있었던 왕궁의 터인 왕궁지는 산성 내에서 가장 높은 서쪽 산봉우리 정상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왕궁지 발굴조사 결과 많은 곳에서 배제시대의 건물지와 유물이 발견됐다. 유구로는 대형 벽주건물지, 물 공급시설인 연못 등을 비롯해 유물로는 기와, 청동거울, 토기 등이 발견 됐다. 특히, 확인된 건물 가운데 벽주 건물은 위계가 높은 건물에 사용하는 건축양식으로 건물의 상부를 꾸미는 다양한 와당(장식기와)들이 발견되는 등 높은 위계의 건물이 왕궁 내 있었음이 확인됐다.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는 공산성 남문인 진남루 모습
공산성 북쪽 금강변에 약 4만㎡ 규모의 평탄한 분지 형태의 가장 넓고 곳은 왕궁부속시설지가 있던 곳이다. 백제시대 왕궁에 필요한 물자를 제공할 여러 부속 건물들이 있었던 장소인 이곳에서는 조사결과 수십여 기의 백제시대 건물지, 계단과 도로, 축대, 공방지, 저수시설, 배수로 등이 확인됐다. 이외에도 공산성 내에는 정유재란 때 왜적의 위협을 막고 선정을 베풀어 주민을 평안하게 했던 명나라 장수 이공, 임제, 남방위에 대한 사은 송덕비인 명국상장비(明國三將碑), 원래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 옆에 있던 누각을 현 위치로 옮기고 8.15 광복을 기린다는 의미로 개칭한 광복루(光復樓), 공산성 연못 중 하나였던 연지(蓮池)(충남도기념물 제42호)와 연못과 금강 사이에 세운 정자인 만하루(挽河樓), 세조 4년(1458)에 지은 사찰 영은사(靈隱寺) 등이 자리하고 있다. 공산성 성벽은 약 2.6Km에 이르며 백제시대 토성구간과 조선시대 석성구간으로 나뉜다. 현재 남아있는 성벽은 대부분 조선시대 돌로 쌓은 석성이며, 그 아래로 백제시대 흙으로 쌓았던 토성이 지나고 있어 그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위치 : 충남 공주시 웅진로 280
공주 공산성 둘러보기 (약 1시간 정도 소요)
▲성벽 길을 따라 공산성을 돌아보고 있는 팸투어 일행
공산성은 금서루 -> 쌍수정 -> 왕궁지 -> 진남루 -> 영동루 -> 광복루 -> 만하루와 연지 -> 영은사 -> 공북루 -> 공산정 -> 금서루
#백제 시대 왕과 왕족들의 무덤 ... 공주 무령왕릉((武寧王陵)과 왕릉원
▲공주 무령왕릉 및 왕릉원 일부 모습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백제시대의 왕과 왕족의 묘로 전해지고 있다. 1~7호분 중 무령왕릉으로 확인된 7호분을 제외하고는 아직 누가 매장되어 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어 앞으로의 귀추도 흥미롭다.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5,6호분 실물과 동일한 크기의 모형을 재현한 무령왕릉과 왕릉원 전시관을 둘러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고분 형태로 된 전시관 입구는 마치 고분의 입구와 같다. 전시관 실내로 들어서면, 입구 정면에 고분 사진을 중심으로 무령왕릉과 왕릉원에 대한 설명과 왕릉원 현황, 그리고 년대별 고분 발견 및 발굴과정 등을 자세히 알아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공주 무령왕릉 및 왕릉원 전시관 입구 모습
설명서를 보고 나면, 백제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게 된다. 실제 고분과 동일하게 재현해 놓은 고분 속으로 들어가 고분 내부를 살펴볼 수 있는 특별함과 직접 고분을 보면서 고분의 형태를 쉽게 이해할 수도 있게 구성되어 있다. 또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들을 직접 보면서 백제시대가 왜 찬란했는지도 단번에 이해하게 된다.
▲무령왕릉 및 왕릉원 1~7호분 위치 및 발굴 모습
왕이 사용하던 금제 장식, 귀걸이, 청동거울, 머리받침 등과 왕비가 사용하던 금제관장식, 귀걸이, 목걸이, 은제팔찌, 나무머리받침, 금동신발 등의 디자인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빼어나다는 표현 밖에는 더 어울리는 단어가 없을 정도다. 현재 당장 사용해도 전혀 낯설지 않고 오히려 훌륭한 제품으로 누구에게나 각광받을 수 있는 귀한 장식품으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훌륭한 유산이다. 백제시대 융성했던 백제문화의 위상에 흡뻑 빠진 후 전시관 출구를 나서면 우측으로 왕릉원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고분 우측으로 탐방로가 S자 형태로 이어져 있다.
▲왕릉원 윗쪽에서 내려다 본 왕릉원 모습. 앞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무령왕릉이다
제일 먼저 5호분을 시작으로 6호분, 7호분이 이어져 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조금 더 올라가면 우측으로 길이 꺾이면서 4, 3, 2, 1호분이 순차적으로 이어져 있다. 1~4호분까지의 고분 봉우리는 매우 우뚝하게 보이며, 아래쪽 5, 6, 7호분은 봉우리가 조금 낮게 솟아있는 듯하다. 신라와 조선시대 왕릉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고분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는 특징이 있으며, 신라와 조선시대 왕릉에 비교해 보면, 백제시대 왕릉의 규모는 상대가 되지 않은 정도로 작다.
▲왕릉원 2, 3, 4호분과 폐쇄된 고문 출입구 모습
왕릉원 일대는 1호분을 지나 더 올라가면 좌측으로 길이 있고, 위로 곧장 올라가는 길 등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곧장 올라가면, 북쪽 정지산 정상에 있는 집자리와 왕실의 제사 시설인 정지산유적,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면, 웅진 백제시대(475~538)의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 성왕 등의 위패를 모신 전당으로 옛 왕조의 영광을 기리는 숭덕전, 그리고 주차장이 있는 입구 쪽으로 이어진다.
▲무령왕릉 바로 위에서 바라 본 1~4호분 모습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왕성인 공산성의 서측, 금강의 남쪽 기슭에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낮은 산지의 8부 능선인 표고 약 75m 내외 지점에 위치해 있다. 정비된 7개의 고분은 풍수지리상 전형적인 좌청룡, 우백호의 형세를 취하고 있는 지점에 몰려 있다. 왕릉원은 백제의 왕과 왕족의 묘로 추정되는 고분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동쪽 위에는 1~4호분, 서쪽 아래에는 5~6호분과 7호분인 무령왕릉이 있다. 1~5호분까지는 굴 모양의 돌로 만든 굴방식 석실묘이며, 벽돌로 쌓은 6호분과 무령왕릉은 당시 중국에서 널리 유행하던 벽돌무덤으로 내부는 터널 형태로 축조되어 있다. 무령왕릉은 공주 송산리 고분군 중 맨 마지막인 7번째로 발견되어 7호분에 해당된다.
▲왕릉원 고문 출입구 모습. 훼손 우려가 있어 현재는 개봉하지 않고 있다
지난 1971년 7월 일찍이 일반에 공개됐던 5, 6호분에 여름 장마철이 되면 무덤 안에 물이 새고 습기가 차서 고분의 손상이 심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배수시설 공사를 하던 중 6호분 바로 뒤에서 우연히 가지런히 쌓은 벽돌무덤의 입구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벽돌이 쌓인 채 막혀 있던 입구를 열어보니 다른 고분과 달리 한 번도 도굴되지 않아 1,500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원형 그대로 발굴됐다.
▲왕릉원 전시실에 모형과 동일하게 만들어 논 7호분(무령왕릉) 내부 모습. 무늬있는 벽돌로 쌓았다
입구에서는 진묘수와 지석(죽은 사람의 인적사항 등을 기록한 돌)이 발견됐다. 지석에는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 62세 되는 계묘년 523년 5월 7일 임진날에 돌아가셔서, 을사년인 525년 8월 12일 갑신날에 이르러 대묘에 예를 갖추어 안장하고 이와 같이 기록한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지석에 나타난 백제 사마왕은 무령왕을 말하는 것이었으며,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령왕 부분과 완벽하게 동일해 최종 무령왕릉으로 확인됐다.
▲왕릉원 전시관에 위치해 있는 백제를 다시 일으킨 무령왕 흉상 모습
무령왕릉의 주인공인 무령왕은 백제 25대 왕으로 개로왕 8연인 462년 태어났다. 이름은 사마 또는 융이다. 성품은 인자하고 관대했으며, 서기 501년 40세에 왕위에 올라 나라의 안정과 국제고류를 활발히 이룩했다. 그는 오랜 전쟁으로 나빠진 국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고구려의 거듭된 침입을 물리쳐 백제가 다시 강대국이 됐다는 것을 알렸다. 대외적으로도 일본 열도의 왜에 오경박사를 보내 백제의 우수한 문물을 전했고, 중국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는 등 국제 교류를 통해 백제의 위상을 높인 왕으로 전해지고 있다.
▲왕릉원에 위치한 고분 출입구 모습. 현재는 훼손될 우려가 있어 개봉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다른 고분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무덤 주인의 이름과 축조연대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어 삼국시대 피장자의 신분을 알 수 있는 한국 고대의 유일한 왕릉으로 기록됐다. 아울러 고대 동아시아 유적들의 연대를 측정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는 등 삼국시대 고고학 편년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발굴 당시 왕릉 안에는 무령왕 및 무령왕비의 관과 함께 금제관식, 금제뒤꽂이, 금제 심엽형이식 귀걸이, 지석, 석수, 청동신수경 등을 포함해 총 5,200여 점의 많은 유물이 출토됐다. 그중 12종 17점이 국보로 지정되어 국립공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무령왕과 왕비의 관은 일본의 금송으로 만들어 졌으며, 왕릉은 화려하고 세련된 미의식과 창의성, 수준 높은 공예 기술을 엿볼 수 있다.
▲왕릉원 전시관에 실물과 동일한 크기와 모형으로 설치되어 있는 고분의 내부 모습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입구에 관광 안내소가 있고, 웅진백제역사관이 나온다. 웅진백제역사관은 백제의 역사문화 콘텐츠와 IT시스템을 활용한 교육, 홍보, 체험이 가능해 쉽고 흥미롭게 백제문화를 접할 수 있으며, 전시관과 영사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조금 더 올라가며 매표소를 지나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전시관이 있다. 이곳은 무령왕릉과 5, 6호분을 실물과 동일한 크기의 모형으로 재현했다. 무령왕 체험과,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전시관 발굴과정 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고 있으며, 융성했던 백제문화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왕릉원 5, 6호분과 무령왕릉이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
2023년 7월 14일 현재 5, 6호분과 무령왕릉은 보수공사로 막아 놓아 살펴보기 어렵고, 1~4호분은 자세히 볼 수 있다. ▷위치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둘러보기
▲무령왕릉과 왕릉원 안내도
A코스(무령왕릉과 왕릉원 핵심코스) 1시간 소요 : 웅진백제역사관 -> 매표소 ->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전시관 ->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 주차장
B코스(무령왕릉과 왕릉원 완벽코스) 3시간 소요 : 웅진백제역사관 -> 매표소 ->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전시관 ->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 정시산유적 -> 국립공주박물관 -> 한옥마을 -> 주차장
#부여(扶餘) 관북리유적(官北里遺蹟)과 부소산성(扶蘇山城), 그리고 낙화암
▲부소산성의 정문 역활을 하고 있는 부소산문으로 관광객들이 들어가고 있다
부여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도성의 배후산성과 왕궁성으로 추정되는 유적이다. 백제 성왕은 웅진(공주)이 고구려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 좋은 요충지였지만, 지역이 협소하다는 지리적 한계로 수도로서 부족한 면이 있다고 판단해 538년 웅진에서 지금의 부여인 사비로 수도를 옮겼다. 이후 중국 남조 양나라의 선진문화를 적극 수용해 단순한 수용과 모방에서 벗어나 재창조를 거쳐 백제화했다. 왕궁을 도성의 북쪽에 두는 도성 조영 원리를 받아 들였고, 백제만의 자연지형에 맞도록 왕궁 뒤편에 산성을 쌓아 비상시 최후의 보루로 가능토록 했다. 실제로 백제 멸망 시 나당연합군의 침공이란 위급 상황에서 최후의 보루였음을 기록을 통해 확인됐다.
▲부소산성 입구에 위치해 있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안내석
부여 부소산성(扶蘇山城)은 부여 백마강을 굽어보는 높이 106m의 부소산 능선과 계곡을 가로 지르며 자리하고 있다. 부소산성은 남쪽에 왕궁으로 추정되는 관북리유적지가 있어 왕궁의 배후산성으로 평상시에는 왕궁의 후원(집 뒤의 정원)으로 사용했으며, 위급 상황에는 왕궁의 방어시설로 이용됐다. 부소산 서남부 언덕에 위치하는 절터라는 뜻에서 붙여진 서복사지라는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은 백제시대 사찰 터가 있다. 조사결과 면적이 약 3,500㎡에 달하는 사찰이다. 백제의 전형적인 1탑 1금당이며, 강당지가 존재하지 않고 평지가 아닌 산의 능선을 따라 건물을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왕만이 소유할 수 있는 물품인 금동제 허리띠가 출토되어 이 사찰이 왕실의 전용사찰로 추측된다.
부소산성의 성벽은 판축기법으로 성질이 다른 종류의 흙(점질토, 마사토)을 번갈아 가며 다시는 기법으로 원래 중국에서 들여 온 것으로 중국에서는 황토를 다져 사용했는데 백제는 이를 응용해 상황에 맞는 재료를 이용, 진화된 판축공법을 사용했고, 이후 이를 일본에 전했다.
▲부소산성 내 위치한 낙화암 하단에 붉은색 한문으로 낙화암이라 새겨져 있다
부소산성 내에는 낙화암을 비롯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백제의 충신 성충, 흥수, 계백 등의 정신을 기리는 삼충사, 부소산 동쪽 봉우리에 자리 잡은 이층 누각 건물영일루, 군량미를 보관하던 창고 혹은 피난시설로 추정되는 곳으로 부소산성 동쪽 중심부에 위치한 군창지, 백마강과 부여 시가지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한 이층 누각 반월루, 낙화암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잃은 백제 궁녀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사당인 궁녀사, 원래 달맞이 하던 송월대가 있던 자리로 부소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사자루 등이 있다.
▲백마강에서 운행되고 있는 황포돛배인 서동호 모습. 고란사나루터에서 구드래 나루터까지 운행한다
낙화암 우측 아래 위치한 고란사를 돌아본 후 옆에 있는 고란사 나루터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선상에서 부소산과 낙화암을 보며 구드래 나루터까지 갈 수 있는 백마강과 유람선 황포돛배를 즐길 수 있다. 부소산성의 둘레는 대략 2.2km, 면적은 약 74만m2에 달하며, 지난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5호로 지정됐다.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52-1
#백제의 마지막 모습을 간직한 ... 낙화암(落花岩)
▲백마강 변에 위치한 낙화암 모습
부소산성에서 가장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곳은 단연 낙화암이다. 높이 40m의 낙화암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함락되자 의자왕의 3천 궁녀가 몸을 던져 꽃처럼 죽었다는 전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장소다. 그러나 정작 백제의 궁녀가 3천명이었다는 기록은 없다.
▲낙화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정자인 백화정 모습
삼천이란 내용은 많은 수를 뜻하는 문학적 표현이며, 낙화암이란 이름도 궁녀의 죽음을 아름다운 꽃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한 후대의 표현이라고 한다. 백마강 변에 위치한 낙화암 가장 높은 곳에는 백화정이란 정자가 백제의 마지막 모습을 간직한 채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 우뚝 서 있다.
#낙화암 궁녀들의 넋을 기리는 ... 고란사(皐蘭寺)
▲부소산성 낙화암 바로 아래 위치한 고란사 모습
고란사는 부소산 북쪽 낙화암 바로 아래 백마강변에 있는 절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다. 법당 건물의 상량문에 의하면, 조선 정조 21년인 1797년 은산의 숭각사에서 옮겨 와 중건했다고 한다. 연화문을 새긴 초석을 놓고 원기둥을 세웠는데 기둥 위에는 조각 장식이 화려한 익공식 공포를 짜 올렸다. 초석에 새긴 연화문양은 고려시대 기법으로 추정한다. 백제 말기에 창건된 절로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은 궁녀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고려 현종 19년(1028년)에 창건된 사찰이라고 추정할 뿐 정확한 기록은 전해 내려 온 것이 없다.
▲고란사 대웅전 실내 모습. 우측에 흰색옷을 입고 있는 보살이 부처님과 함께 위치해 있어 눈길을 끈다
고란사란 절 이름의 유래는 사찰 후면 암벽에서 자라고 있는 고란초로부터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은산 숭각사(崇角寺)에서 옮겨 온 것으로 중수 3창하였으며, 1959년 고쳐 지을 때 대들보 밑에서 고란사 상량문이 나왔는데, 이에 의하면 정조 21년 정사(1797)에도 고쳐지은 적이 한번 있었던 건물이다. 또한 그 이상 올라가는 연대의 상량문도 있었지만, 종이가 변질되어 판독할 수 없었다 한다. 현재 대웅전과 좌측에 요사채가 있고 우측으로는 범종각이 위치해 있다. 고란사 바로 위쪽으로 낙화암이 있다. 절 뒤의 바위틈에는 고란정이 있고, 그 위쪽 바위틈에는 고란초가 자라고 있다. 특이한 점은 대웅전에 모셔진 불상 우측에는 흰색 옷을 입은 보살이 함께 있다.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 변에 위치한 고란사(우측 윗쪽)와 고란사 나루터 모습
고란사 대웅전 뒤편 바위틈에서 솟아 나오는 약수는 한번 마실 때 마다 3년이 젊어진다는 갓난아기가 된 할아버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소부리의 한 마을에 금슬 좋은 노부부가 살았는데 늙도록 자식이 없어 할머니는 늘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을 한탄하며 다시 한 번 회춘하여 자식 갖기를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일산(금성산)의 도사로부터 부소산의 강가 고란사 바위에는 고란초의 부드러운 이슬과 바위에서 스며 나오는 약수에 놀라운 효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다음 날 새벽 남편을 보내 그 약수를 마시게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다음 날 일찍 약수터로 찾아가 보니 할아버지는 없고 웬 간난아이가 남편의 옷을 입고 누워 있어 깜짝 놀랐다. 할머니는 아차 했다. 도사가 한 잔 마시면 삼년이 젊어진다는 말을 남편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며 갓난아기를 안고 집에 돌아와 고이 길렀는데 후에 이 할아버지는 나라에 큰 공을 세워 백제시대 최고의 벼슬인 좌평에 올랐다고 한다.
부여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둘러보기
▲부소산성 입구에 위치한 부소산성 안내석
A코스 (약 2시간 이상 소요) : 관북리유적(대형건물지, 목곽고, 연지 등) -> 부소산성(매표소) -> 삼충사 -> 영일루 -> 군창터(또는 태지골숲길) -> 반월루 -> 궁녀사 -> 사자루 -> 낙화암(백화정) -> 고란사 -> 유람선 -> 구드래공원
B코스 (약 2시간 이상 소요) : 구드래공원 -> 유람선 -> 고란사 -> 낙화암(백화정) -> 사자루 -> 반월루 -> 군창터 -> 영일루 -> 삼충사 -> 부소산문 -> 관북리유적(대형건물지, 목곽고, 연지 등)
C코스 (약 1시간 이상 소요) : 관북리유적(대형건물지, 목곽고, 연지 등) -> 부소산 구문 -> 서복사지 -> 반월루 -> 사자루 -> 낙화암(백화정) -> 고란사 -> 유람선 -> 구드래공원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찰이 있던 곳 ... 익산 미륵사지(益山 彌勒寺址)와 국립익산박물관
▲익산 미륵사지 전경. 미륵사에 세워져 있던 석탑인 서탑(좌측)과 복원된 동탑(우측)이 보인다
익산 미륵사지(彌勒寺址)는 동아시아 최대 규모 사찰 중 하나였던 미륵사가 있던 자리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639년 백제 무왕 때 창건된 미륵사는 삼국시대 절 가운데 백제의 절로는 최대 규모였다. 미륵사의 창건 설화를 보면, 무왕이 부인과 함께 지명법사를 만나기 위해 사자사로 가던 도중 용화산(미륵산) 밑 연못 가운데 미륵 삼존이 나타났다. 무왕은 수레를 멈춘 후 경하를 하며 큰 절을 했다. 부인은 이 연못에 커다란 절을 세우기를 간청했고, 무왕이 허락했다. 무왕은 지명법사를 찾아가 그 연못에 절을 짓도록 했고, 지명법사는 하룻밤 동안 산을 무너뜨리고 연못을 메워 그곳을 평지로 만들고 미륵 삼존을 모셔 세 곳에 불전, 회랑, 탑을 세웠다.
▲미륵사지에 복원된 동탑 모습
그 후 이 절의 이름을 미륵사라 했다고 전한다. 기록을 통해 볼 때 습지를 매립해 평지를 조성했으며, 미래의 부처인 미륵이 하늘에서 내려와 세 번의 설법을 통해 모든 사람을 구제한다는 불교 경전의 내용에 따라 가람 배치를 구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내용은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나 창건 연대는 무왕 재위 시기인 7세기 초이며, 임진왜란을 전후해 폐사된 것으로 밝혀졌다.
▲미륵사지에 위치한 서탑 모습
백제는 불교의 미륵(석가 다음으로 부처가 된다고 약속받은 보살)신앙을 구현하기 위해 미륵사를 만들었다. 백제인 들은 이 미륵사를 통해 누구나 평등한 삶을 염원했던 미륵하생의 꿈을 이룩하려 했다. 따라서 미륵사는 모든 백성들의 구원을 이루려는 간절한 염원을 반영해 만들어진 사찰이자 백제인의 희망이 담긴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미륵사지에 복원된 9층 동탑을 가까이서 본 모습
미륵사는 익산 용화산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좌우 능선 사이에 평지에 남향을 향하여 건립됐었다. 동원, 중원, 서원은 각기 긴 회랑을 통해 나뉘어 독립된 공간을 이루었지만 북쪽으로는 1동이 큰 강당 터로 연결된다. 즉, 예불 공간은 3개 원으로 나뉘었지만 강당은 하나로 전체를 통합하는 역할을 했다. 강당과 연결된 북, 동, 서 회랑 터에는 승려가 거주하는 승방의 흔적도 발견됐다. 미륵사지의 규모는 강당에서 중문까지 134m, 폭은 동원과 서원의 외곽 기준 172m이다. 사찰의 남쪽 정면에 큰 연못을 조성했던 흔적이 나타났으며, 원래 습지였던 곳이어서 각별히 배수처리를 했고, 각 원의 금당도 지면에서 높게 띄워 습기를 차단했다.
▲국립익산박물관에 위치한 미륵사 서탑의 모형
본래 미륵사에는 3개의 석탑이 있었다. 중원에는 목탑, 동원과 서원에는 각각 석탑이 있었다. 중원의 목탑이 언제 소실됐는지는 알 수 없다. 동원의 석탑은 조사 당시 완전히 무너져 내려석탑에 이용된 석재들이 주변에 흩어진 상태였다. 서원의 석탑은 많은 부분이 훼손된 채 동부 측면으로만 6층까지 남아 있었다. 구조 안전진단 결과 석탑의 안정성이 우려되어 해체 조사, 보수 정비 및 학술 연구가 진행됐다. 중원의 목탑이나 동원의 석탑 건립 연대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서원의 석탑은 해체 조사시 금제사리봉영기가 출토되어 무왕의 비인 사택왕후가 부처에게 소월을 빌어 639년 건립하였음을 알 수 있게 됐다.
미륵사지 서탑은 일제 강점기 콘크리트로 보강된 석탑의 구조적 불안정으로 인해 1999년 해체보수가 결정되어 2002년부터 본격적인 해체 조사가 진행됐다. 2009년 1층 해체 조사를 진행하던 중 심주석 상면 중앙에서 사리공(탑에 사리를 모셔 두기 위해 만든 구멍)이 발견됐다. 사리장엄은 사리공 안에 안치되어 있었는데 금제사리봉영기를 비롯해 사리호, 은제관식, 청동합 등 다양한 공양품이 한꺼번에 출토됐다.
▲국립익산박물관에 있는 미륵사 모형
서탑에서 출토된 금제사리봉영기는 미륵사 창건 목적과 사주, 석탑의 건립 연대(639년) 등을 정확히 밝힘으로써 문헌사 연구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게 됐다. 금제사리봉영기는 앞면 99자, 뒷면 94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었으며, 앞면에는 글자에 누런색이 섞인 붉은색의 칠인 주칠이 되어 있었다. 금제 사리봉영기와 함께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사리내, 외호, 사리를 담은 유리제사리병도 확인됐다. 이 모든 것은 639년 석탑을 건립할 때 봉안한 것이다.
서탑은 국내 문화재 공사 중 20년 이란 최장기간에 걸쳐 다양한 측면에서의 연구와 구조보강,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진행됐다. 미륵사지 서원석탑의 해체보수는 추정에 의한 복원이 아닌 원래의 석탑 부재를 최대한 재사용하여 유네스코에서 제시한 국제헌장 및 지침에 따라 진정성을 확보했으며, 과학적 연구를 통해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했다. 현재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위치한 미륵사지에는 현재 절터와 함께 목탑 터가 있으며, 미륵사지 당가지주(보물 236호) 외에 무왕과 왕비의 설화가 깃든 유물과 유적 등이 1966년 발굴되어 미륵사지 내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019년 재조립으로 완전 복원된 동탑과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서탑이 국내 최대 규모 석탑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미륵사지의 모든 것 ... 국립익산박물관
▲국립익산박물관 입구 모습
미륵사지 내 위치해 있는 국립익산박물관은 1980년부터 1996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문화유산을 효율적으로 보존, 전시하고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1997년 전라북도가 주체가 되어 개관했다. 2009년 국보 11호인 미륵사지 석탑 해체 보수 작업 과정에서 다량의 사리장엄구가 출토됐고, 2015년 7월 미륵사지 왕궁리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익산 지역에서 출토되는 문화유산의 체계적인 관리와 활용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2015년 12월 말 기존 도립 전시관을 국립으로 전환했다.
▲국립익산박물관에 금으로 만든 서탑의 모습
국립익산박물관의 상설전시실은 1개 전시동과 3개의 실로 구성되어 있다. 관람은 익산백제실, 미륵사지실, 역사문화실 순으로 진행된다. 익산백제실에는 왕궁리유적, 제석사지, 쌍릉 등 우아한 백제 후기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미륵사지실에는 미륵사 창건과 번영, 미륵사 중흥, 금제사리내호와 금동제사리외호, 금동향로, 무왕, 공양물, 사리장엄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문화실에는 뚜렷한 정체성을 가진 익산과 군사의 역사와 삶, 옛사람이 남긴 문화의 흔적인 빗살무늬토기, 독널, 금동모관, 십자무늬청도의기, 옥목걸이, 거친무늬거울, 금동신발, 세발달니대형토기, 고리자루큰칼, 쇠모 등이 전시되어 있다. ▷위치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 (기양리)
#보석의 모든 것 ... 익산 보석박물관
▲익산 보석박물관 모습
관광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박물관 중 하나가 익산 보석박물관이 아닐까. 세상에 보석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같다. 익산은 찬란한 금속문화를 이룩했던 백제 후기의 도읍지로서 보석과의 인연은 백제 시대부터 시작됐지만, 본격적으로 보석 도시로 발돋움한 것은 1970년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수출진흥확대회의에서 상공부의 보고를 받고 익산 귀금속보석공단 조성과 귀금속보석산업을 수출특화 산업으로 집중 육성할 것을 지시한 때로부터 본격 시작됐다.
▲보석박물관 입구 모습
이후 익산은 주요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해야 하는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세계 보석수요량의 90% 가까이를 생산·수출하며 1980년대 말까지 수출규모를 꾸준히 증가시켜 왔다. 1998년 IMF로 인해 침체시기를 맞았지만, 익산은 2000년 대 위기를 맞은 귀금속 보석 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주얼리산업을 관광산업과 연계시켜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귀금속 보석클러스터 구축사업을 시작하게 됐고, 이를 위해 2002년 5월 보석박물관 건립과 2010년 주얼팰리스 개관 등에 박차를 기해 오늘에 이르렀다.
▲보석박물관에 있는 각종 보석으로 만든 화환
익산 보석박물관은 미륵사지 석탑, 왕궁리 5층 석탑 등 백제문화유적과 연계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관람객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과 보석에 대한 상징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개관됐다. 왕궁보석테마관광지 내에 위치한 보석박물관은 총 6,215㎡의 면적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되어 있다. 1층에는 기획전시실과 카페테리아, 2층 상설전시관에는 보석과 화석 등 총 11만 9천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세계적 규모의 보석박물관 명성에 걸맞게 보석의 탄생 과정부터 채굴, 연마과정 및 원석부터 보석의 다양한 형태를 감살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화 했다. 그밖에도 식당, 보석광장, 야외무대, 칠선녀상 등 조형물들과 다이노키즈월드 주변에 공룡 테마공원을 조성해 보석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에게 편안한 휴게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야외 조형물 및 미디어파사드를 설치해 야간에도 빛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문화 휴식광간으로 조성했다.
▲보석박물관에 있는 세계의 광물 전시 모습
특히, 우리나라 최고의 귀금속보석 전시판매장인 주얼팰리스가 개관해 국내외 약 60여 개의 주얼리 우수판매업체가 입점해 고급 주얼리부터 세련된 액세서리까지 숙련된 장인들이 빚어 낸 귀금속과 보석제품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보석박물관 : 지하1층, 지상 2층 총 6,215㎡ ▶주얼팰리스 : 지하1층, 지상2층 총 5,256㎡ ▶조형물 : 화합상, 환희상, 휴식상, 칠선녀상 ▶기타시설 : 어린이 놀이시설, 식당, 칠선녀광장, 가족공원, 공룡테마공원 등 ▷위치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호반로 8 보석박물관
▲무령왕릉 및 왕릉원 입구에서 이번 팸투어 참가자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번 팸투어를 위해 계획 단계에서부터 실행까지 제반 업무를 진두지휘한 김명섭 서울시관광협회 국내여행업위원장은 “이번 전라북도관광협회 초청 팸투어를 통해 돌아 본 웅진시기 - 공주의 공산성, 무령왕릉과 왕릉원, 사비시기 - 부여의 관북리유적, 부소산성, 정림사지, 왕릉원, 나성, 사비후기 - 익산의 왕궁리유적, 미륵사지 등 백제 후기 문화인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지난 2015년 7월 대한민국의 12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면서, “이들 8개 유산은 과거 백제가 활발한 교류를 통하여 중국-백제-일본을 이어주는 고대 동아시아 교류의 중심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번 답사를 통해 다양한 상품개발로 영업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팸투어를 주최한 서울특별시관광협회 BI
서울특별시관광협회 국내여행업위원회(위원장 김명섭)는 서울소재 관광버스업체, 여행알선업체에서 선출된 14인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코로나 이전 상태까지 빠른 시간 내 회복될 수 있도록 김명섭 위원장을 중심으로 위원들은 단합된 모습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업계 발전과 건강한 여행문화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공산성 입구 모습
한편, 팸투어를 마친 후 다음날인 지난 15일 오전, 뉴스를 통해 공주 공산성과 왕릉원 일대가 이번 장마로 인해 일부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팸투어 참가자 모두는 한결같이 “이번 팸투어를 통해 다녀왔던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에 더 이상 장마 피해가 확대되지 않기를 기원하며, 파손된 유적지가 빠른 시간 내 정상적으로 복구되길 바란다”는 위로의 인사를 전했다.
■ 2023 백제역사유적지구 팸투어 참가 여행사 소개
● 여행 114 (대표이사 김명섭)
▲여행 114의 김명섭 대표이사
지난 2006년 설립된 ㈜여행114는 전·현직 공무원 대상 출장, 포상여행, 퇴직자를 위한 국내·외 맞춤형 단체여행과 철도여행 상품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하나투어 제휴사로 패키지와 인센티브로 국내외여행업을 운영하고 있는 ㈜여행114의 김명섭 대표이사는 회사 운영 외에도 서울시관광협회 국내여행업위원장, 한국관광협회중앙회 국내여행업위원장, 한국관광공제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관광업계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 (주)가고파여행 (대표이사 전홍기)
▲가고파여행의 전홍기 대표이사
㈜가고파여행은 국내 호텔 &리조트 숙박지를 B2B 및 폐쇄몰 예약 등을 통해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여 고객의 휴식과 감동을 최고의 신용으로 제공하는 토종 여행사이다. 특히 국내 리조트 및 섬 여행 전문 여행사로도 알려져 있다. 노련한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한 섬여행 전문 여행사인 ㈜가고파여행은 언제 어디서나 고객이 필요한 관광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고객의 니즈에 맞는 리조트와 섬여행 상품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가고파여행은 고객들에게 후회 없는 여행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공정여행 신나는동행 (이사장 신민정 · 강사 남을순)
▲공정여행 신나는동행의 신민정 대표이사(우측)와 남을순 강사
지난 2013년 설립한 사회적 협동조합 공정여행 신나는 동행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여행 - 공정여행으로 지역사회의 경제적 · 환경적 · 사회적 문화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국내 여행상품 개발 및 지역 자원을 발굴하여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주)나사랑투어 (대표이사 박선희)
나사랑투어는 해외여행 & 국내여행, 항공권 & 비자 & 자유여행, 허니문 & 단체여행 등을 전문으로 하는 모두투어 동대문 대리점이다. 설레이는 해외여행의 시작은 모두투어 동대문점 나사랑투어와 함께~~ 해외 패키지와 골프투어에 더욱 만족감을 선사하고 있다.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천호대로 133 홈플러스 동대문점 지하 1층
● 네팔트레킹 (대표이사 김용원)
▲네팔트레킹의 김용원 대표이사
산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네팔트레킹의 주 종목은 히말라야 3대 트레킹인 안나푸르나 ABC, 랑탕체르고리, 쿰부지역남체 트레킹을 비롯해 몽골 체체궁산 트레킹 등 네팔(카트만두) 히말라야 트레킹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일요일 국내 산행도 출발하고 있으며, 특히, 국내에서는 언제나 친절한 서비스로 골프, 기업체, 단체, 모임 등에 필요한 21석 프리미엄, 28인승 최신형 리무진 우등버스 차량 대여업도 하고 있다.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종로34길 7, 404(종로5가, 세종빌딩)
● (주)드림관광 (대표이사 위도량)
▲드림관광의 위도량 대표이사
㈜드림관광은 18년 동안 각종 기관, 학교, 회사 등의 출·퇴근 및 셔틀버스 그리고 전국의 관광지를 운행하는 회사다. 180대의 다양한 관광버스를 보유하고 있는 드림관광에는 경험 많은 운전기사들이 재직하고 있어 편안하고 안전한 운행을 보장하고 있다. 고객의 니즈에 맞는 관광버스를 제공해 편안한 출·퇴근 및 관광이 되도록하고 있으며,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 정확하고 안전하게 도착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여 출·퇴근과 여행이 더욱 즐겁고 신나는 ㈜드림관광, 편안하고 안전한 출·퇴근과 여행길에 드림관광이 함께 하고 있다. ▷주소 : 서울시 강서구 마곡중앙6로 89, 305호 (마곡동, 뉴골든타워)
● 샬레코리아(주) (대표이사 임진홍)
▲샬레코리아의 임진홍 대표이사
샬레코리아(주)는 현재 23년간 공기업, 민간기업 등 200여개 고객사를 대상으로 휴가복지제도에 대한 컨설팅 서비스와 맞춤형 솔루션 제공을 통하여 국내 우수한 숙박시설을 발굴하여 고객사별 맞춤형 커스터마이징을 통한 B2B 비즈니스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주소 :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대방로67길 17(여의도동, 서린빌딩 8층)
● 에이스리조트여행사 (대표이사 장문규)
▲에이스리조트여행사의 장문규 대표이사
㈜에이스리조트여행사는 지난 1999년 서울 구로공단 서울디지털단지에 설립된 1호 국내외관광 여행사로 국내 리조트여행과 강원지역을 비롯한 국내 여행에 주력하고 있는 여행사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이스리조트여행사는 기업체 연수, 테마 여행, 크루즈 여행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안전과 건강을 회사의 핵심 목표로 삼고 고객을 맞이하고 있다. ▷에이스테크노타워점 주소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31길 38-9 에이스테크노타워1차 101호
● 여행가이드 (대표이사 서규식)
▲여행가이드의 서규식 대표이사
고객의 니즈에 맞는 고품격 맞춤여행 관련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투어가이던스의 판매 상품은 크루즈, 골프, 인센티브 행사 등 다양하다. 언제 어디서나 수준 있는 여행 상품만을 개발해 최고의 서비스와 품격으로 여행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최고의 여행을 원한다면 바로 ㈜투어가이던스다. 자신감으로 고객을 맞는 ㈜투어가이던스 고품격 여행의 진수를 선사하고 있다. ▷주소 : 서울시 중구 다동길 46 다동빌딩 711호
● 이화여행사 (대표이사 이화영)
▲이화여행사의 이화영 대표이사
지난 2004년 설립된 ㈜이화여행사는 패키지와 단체행사, 상공회 산업시찰 및 관 행사와 골프 등 국내외 여행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최선의 서비스를 바탕으로 고객을 맞이하고 있는 ㈜이화여행사는 즐겁고 안전한 여행, 건강한 여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국내 최고의 여행사로 발돋움하기 위해 그 명성과 신용을 바탕으로 고객들에게 알찬 여행을 제공해 드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주소 : 서울시 중랑구 상봉동 99-10 201호
● 제세관광여행사 (대표이사 김용민)
▲제세관광여행사의 김용민 대표이사
㈜제세관광여행사는 수학여행 등 단체행사 대행 전문 여행사이다. 단체여행의 오랜 노하우와 경험을 가진 ㈜제세관광여행사는 여행의 즐거움을 더욱 업그레이드해 주고 있다. 최상의 서비스와 신뢰를 바탕으로 수학여행숙소 및 문화공연을 주관하고 있는 ㈜제세관광여행사는 한국 최고의 테마파크 에버랜드를 비롯해 롯데월드, 서울랜드, 한국민속촌, 캐리비안베이, 원마운틴, 아쿠아플라넷 등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계해 운영하고 있다. 부설 문화체험 공연나라에서는 난타, 판타스틱, 점프, 페인터즈, 체프 등을 선보인다. 도 연계해 운영하고 있다. ▷주소 : 서울시 송파구 오금로 31가길 20
● 즐거운이야기 (대표이사 양지욱)
▲즐거운여행의 양지욱 대표이사
지난 2013년 3월 창립한 즐거운이야기는 교육회사 및 보험사의 우수 성과자 인센티브 해외연수 및 국내행사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인문학, 와인, 역사기행, 골프 등 취향과 함께하는 여행상품을 만들고 운영한다. 양지욱 대표는 르꼬르동블루 프랑스 요리학교에서 제과 디플로마과정과 프랑스 와인 전문 과정을 수료하는 등 음식도 문화라 생각하고 여행상품을 기획할 때도 만찬행사와 식사준비시 음식체험을 디테일하게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361, 7층
● 체험플러스 (실장 이정희)
▲체험플러스의 이정희 실장
지난 2010년 창립한 체험플러스는 교육여행, 체험학습, 수학여행 등을 전문으로 진행하고 있다. 특히, 학교, 교육청, 수련관, 복지관, 지자체 드림스타트, 학습지 등 각 교육 기관의 교육여행을 위탁 운영하는 대표적인 전문 여행 업체다. ▷주소 : 서울시 영등포구 영중로24길 10, 2층 (영등포동 5가 81-1)
● 편안한가족여행 (대표이사 정민두)
▲편안한가족여행의 정민두 대표이사
지난 2000년 5월 창립한 편안한가족여행은 가족여행 전문여행사로 자녀와 부모가 함께 공주, 부여, 익산, 경주 등 역사기행 등과 유럽, 일본, 중국, 대만 등 해외 배낭여행을 소규모로 진행하고 있는 여행사다. ▷주소 : 서울시 강서구 화곡본동 24-122 송원오피스텔 308호
● 하나리더투어 (대표이사 이현수)
▲하나리더투어의 이현수 대표이사
하나리더투어는 2001년 일반여행업으로 설립해 문체부와 관광협회중앙회에서 우수상품 인증을 받은 여행사로 국내·해외여행을 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고품격리무진투어, 별미맛기행, 먹방투어를 하고 있으며, 부설 양평힐링센터는 원예치유센터와 아트테라피연구소·면역공방·숲속작은도서관을 두고 마음치유와 원예치유프로그램, 모던분재체험과 편백찜질체험, 산림해먹체험, 바베큐무한리필 등의 다양한 체험을 진행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프로그램, 공공기관 연수, 기업 워크숍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방문객들이 힐링 할 수 있는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주소 : 서울 광진구 광나루로 478, 광진경제허브센터 도약관 201호
● (주)한국교육여행사 (부장 정화자)
㈜한국교육여행사는 해외 인 · 아웃바운드팀, 기업 및 일반 단체팀, 국내·외 학생 체험 및 수학여행 단체팀 등을 전문으로 하고 있으며, 비자 및 항공권 발권팀 등으로 구성된 중소기업 여행사이다. ▷주소 :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25길 11 동남빌딩 2층
● (주)한반도투어 (대표이사 김삼원)
▲한반도투어의 김삼원 대표이사
㈜한반도투어는 20년의 노하우로 울릉도, 독도 여행을 전문으로 진행하고 있다. 다년간 울릉도 여행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서울한반도투어는 고객들이 즐겁고 보람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하고 알찬 여행 상품만을 고집하고 있다. 여행의 변수가 많은 섬여행은 전문 상담원과 노련한 경험을 갖추고 있어야 비상시 신속한 대처를 할 수 있는데 고객의 신뢰와 사랑으로 성장해 온 ㈜한반도투어는 이런 면에서 단연 자신 있는 회사로 손꼽히고 있다. ▷주소 :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20길 23 (무교동, 원창빌딩 309호)
● (주)금강산투어 (대표이사 조필연)
▷주소 :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45-5 대우메종리브르 1303호
● (주)명문여행웰컴투어 (대표이사 박원호)
▷주소 : 서울시 중구 을지로3길 34, 509호 (다동, 산다빌딩)
● (주)모노믹스 (대표이사 김두환)
▷주소 :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 302, 2층
▶취재 협조 : 서울특별시관광협회, 전라북도관광협회
공주·부여·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 = 이상인 선임기자 lagolftime@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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