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엘뉴스] 광복절이 평일의 정가운데, 수요일에 자리를 잡다보니, 앞뒤로 월차를 내고 휴가를 떠난 이들이 종종 보인다. 쉼을 위해 몸은 잠시 떠난다해도, 마음 한 켠엔 광복을 향한 묵직함이 우리에게 있기 마련. 다가올 2019년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어느 역사 선생님의 센스로, 1919년을 '아이구, 아이구' 의성어로 기억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기사를 쓰고 있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 백범 김구가 독립운동 동지였던 김형진의 손자 김용식에게 손수 써 선물한 친필휘호 모습 ⓒ 문화재청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이 1949년에 안중근 의사 순국 39주년을 기념하여 쓴 글씨를 독립운동가 김형진(1861~1898)의 후손으로부터 기증받아 지난 5일 국립고궁박물관으로 무사히 인도했다.
고국에 돌아온 김구의 글씨 '광명정대(光明正大 : 언행이 떳떳하고 정당함)'는 1949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39주년을 맞아 김구가 독립운동 동지였던 김형진의 손자 김용식에게 손수 써 선물한 것.
▲ 글씨를 선물받은 '김용식(독립운동가 김형진의 손자)'의 이름 ⓒ 문화재청
독립운동가 김형진은 김구와 1895년 무력으로 일제를 격퇴할 것을 결의하고 중국 심양에 원조를 요청하기 위해 동행하였으며, 1896년에는 김구와 함께 의병에 가담하여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1898년 동학의 접주(接主 : 동학 교단 조직은 '접(接)의 책임자)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일제의 고문 끝에 생을 마감했다. 정부는 1990년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 백범의 인장 2점(金九之印, 白凡) ⓒ 문화재청
광복 후, 김구는 김형진의 유족들을 자주 보살폈으며, 서거하던 해인 1949년 김형진의 손자인 김용식에게 '광명정대'를 써서 선물했다. 이후 이 글씨는 1960년대에 김용식의 6촌 동생 김태식에게 전달되었고, 김태식 씨는 1973년 이를 가지고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 김형진 가족과 함께한 백범 김구 ⓒ 문화재청
김태식(83세) 씨는 올해 4월, 2021년 개관 예정인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에 '광명정대'를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하며 주시애틀대한민국총영사관을 통해 정부에 무상기증 의사를 밝혔다.
이 글씨에는 ‘광명정대(光明正大)’ 네 글자와 글씨를 선물 받은 김용식의 이름, 작성 일자가 적혀있으며, 백범의 인장 2점(金九之印, 白凡)이 찍혀있다. 전문가들은 <광명정대>가 지금까지 알려진 바 없었던 백범의 휘호여서 그 희소가치가 클 뿐 아니라, 필체에서도 백범의 기백이 잘 드러나 있다고 평가했다.
문화재청은 기증자의 뜻에 따라 2021년 개관하게 될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에서 '광명정대'를 관리하도록 할 계획이다.
▲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문재인 대통령 ⓒ 청와대 블로그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12월 16일, 충칭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하여 “우리 선열들의 강인한 독립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으며, 정부가 모든 힘을 다해 조기에 임시정부 기념관이 국내에서도 지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언급한 것처럼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인근 서대문구 의회청사 부지에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