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9월 28일부터 시행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공직자와 교육자 언론인 등의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를 금지하는 이 법은 우리나라가 더욱 청렴하고 부정부패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무 담당자의 입장에선 여간 답답한 상황이 아닌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법률 시행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적용범위를 놓고 그 누구도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을 수 없는 데에 있다. 다들 시범케이스로 걸리지 않기를 바라며 몸을 매우 낮추고 있다.
여행업은 ‘김영란법’의 가장 직격탄을 맞는 업종 중 하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관광공사,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국내외 기자를 초청해 진행하는 국내 팸투어, 그리고 해외 관광청, 항공사와 현지 여행사가 주최하는 팸투어 및 해외취재협조, 각급 학교의 수학여행 및 사전 답사, 공무원들의 해외연수 등 안 걸리는 문제가 없다. 호텔 역시 각종 M.I.C.E 관련 행사가 위축될 것으로 전망하여 매출 저하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현재 일부 해외 관광청에서는 팸투어를 법 시행 이전에 마무리하고 10월 이후부터는 진행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지방자치단체의 관광 담당자 역시 현재 아무런 시행지침이 없는 상태라 “그저 관망 중”이라는 원칙적인 답변만 하는 상황이다. 한국여행업협회(KATA)에서도 국민권익위원회에 관련 질의서를 보내놓은 상태지만 답변이 언제 올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주한외국관광청협회(ANTOR Korea, 이하 안토르) 역시 현재 상황에 대해 아무런 지침이 없어 시행령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항목 상 여행업계 걱정은 기우?
김영란법의 첫 번째 이슈는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 언론인 등이 직무와 관련 있는 사람으로부터 3만 원 이상의 식사 대접, 5만 원 이상의 선물, 10만 원 이상의 경조사비를 받으면 처벌받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연간 300만 원 이상의 금품제공을 받으면 안 된다. 물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5조에 해당하는 부정청탁의 금지 15가지 조항과 14가지 부정청탁 대상 직무에 해당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고 본다. 여기에 제8조 금품 등의 수수 금지조항을 살펴봐도 여행업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법조계의 의견이다.
가장 첨예한 부분은 바로 8조 1항이다.
제8조 (금품 등의 수수 금지)
① 공직자 등은 직무 관련 여부 및 기부·후원·증여 등 그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 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아니 된다.
많은 업계 사람들이 걱정하는 게 관광청 주최 행사들이다. 대부분의 행사가 호텔에서 진행된다. 식사, 스탠딩 뷔페 혹은 코스 요리는 보통 6~7만 원이 넘는다. 이것은 민간 여행업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여기에 취재차 참석하는 기자나 관광공사 및 유관기관 직원은 불특정 다수에 제공되는 것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으나 별로도 진행되는 기자간담회 등이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런 경우 커피나 물을 제공하는 기자간담회형식으로 관광설명회 행사의 일부로 진행하면 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두 번째로 각급 학교의 수학여행이다. 사전답사형식으로 교사가 출장을 가는데 대부분 접대가 현지에서 이뤄진다. 이 부분 역시 민감한 문제다. 세 번째로 공무원들의 외유성 휴가나 출장이다. 기존에 행해지던 선진 문화연수, 세미나 참석 등의 이름을 사용해서 하는 출장에 공무원 신분으로 인해 위반 여부를 놓고 의견이 상이하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해당사자가 동행한다면 김영란법 위반 여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김영란법을 잘 읽어보면 지자체나 관공서, 관광청 등에서 주최하는 팸투어에 적용될 수 있는 법조항이 나온다. 직무 관련 업무에 통상적인 범위에서 제공되는 것들과 수행하는 역할별로 차등적용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있다.
이것 자체로는 진행 시 문제가 되지 않지만 8조 1항 (1회 100만원, 연간 300만 원 이상)을 보면 모든 행사가 불가능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직무에 관련한 것이라면 해외팸투어에 상식적인 수준에서 드는 비용을 고려해, 8조 1항의 예외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8조 6항, 7항, 8항
6. 공직자등의 직무와 관련된 공식적인 행사에서 주최자가 참석자에게 통상적인 범위에서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교통, 숙박, 음식물 등의 금품 등
7. 불특정 다수인에게 배포하기 위한 기념품 또는 홍보용품 등이나 경연·추첨을 통하여 받는 보상 또는 상품 등
8. 그 밖에 다른 법령·기준 또는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 등
사. 제6호(직무 관련 공식적 행사에서 통상적·일률적으로 제공하는 금품 등)
공직자 등의 직무와 관련된 공식적인 행사에서 주최자가 참석자에게 통상적인 범위에서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교통, 숙박, 음식물 등
- ‘공식적인 행사, 통상적인 범위, 일률적으로’의 의미가 중요한 쟁점
(공식적인 행사) 공직자등의 직무와 관련한 행사에 한정되고, 공공기관, 민간기업 등의 기관에서 주최하여 열리는 행사를 의미
- 주최자 및 참석자, 행사 목적 및 내용, 비용부담 등 행사 운영에 관한 내부 결재의 존부 등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
(통상적인 범위) 유사한 종류의 행사에서도 동일하게 제공되었을 것으로 인정되는 수준의 금품 등을 의미
- 유사한 종류의 행사, 행사 장소 및 목적, 참석자 범위 및 지위, 주최자의 내부기준 및 비용부담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
(일률적으로) 일률적인 제공이 아니라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한정하여 제공하는 경우에는 이에 해당하지 않음
- 다만, 모든 참가자에게 절대적으로 동일하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참석자 중 수행하는 역할별로 차등 가능
적용 범위 놓고 논란 팽배할 팸투어
두 번째 큰 이슈는 국내외 팸투어다. 여행지 소개는 여행 잡지와 여행 전문지의 핵심 콘텐츠이다. 독자를 위해 많은 지역을 취재해야 하는 특성상 관광청, 해당 지자체, 호텔 항공사 등의 협조를 통해 진행되는데 그 총비용이 적지 않다. 또한 해당 관광청, 지자체에서 민간인 신분인 판매 모객 업체인 여행사 직원을 초청해서 가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그 초청 주체가 관광공사, 지자체 등이 되는 경우는 비용문제와 특정 집단으로 한정되는 초청 대상의 문제가 같이 발생한다. 물론 김영란법의 적용 예외 항목인 ‘직무와 관련된 공식적인 행사’에 해당하지만 아직은 허용되는 통상적인 범위가 정해지지 않고 사례가 없다. 국가권익위원회의 유권해석이 명확하게 나오길 기다릴 뿐이다.
해외 팸투어 역시 국내 주요 일간지와 업계전문지 기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데, 해당 관광청이 팸투어를 진행하려면 적게는 200~300만 원, 많게는 그 이상의 비용이 든다. 유럽지역 팸투어의 경우 왕복 항공료에 일부 구간 좌석 업그레이드, 호텔, 1일 3식 식사, 현지 활동 등을 합치면 1인당 500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유럽, 아시아를 제외한 흔히 말하는 ‘특수 지역’ 역시 비싼 항공료와 상당한 부대비용이 든다.
이것 역시 김영란법의 적용 예외 항목인 ‘직무와 관련된 공식적인 행사’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각종 경우의 수가 생겨 해석이 분분해질 수 있다. 비용이 많이 들거나, 해당 비용을 관광청, 호텔, 항공사 등 여러 업체를 통해 분산해 지급하는 경우, 또 실 금액을 소비자가격으로 할 것인지, 원가로 정산할 것인지 등 산술적으로 총량을 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허용되는 통상적인 범위가 어디까지 인지에 대해서는 시행령에서 정해지지 않으면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규정에 직무에 따라 차등지급 부분이 있기는 하나 어디까지 인정이 될지가 관건이다.
트레이드오프·럭키드로우만이 대안인가
홍보를 위해 모든 기자를 해외 팸투어나 주요 관광전 취재를 협조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자초청 팸투어의 경우 주로 파급력이 큰 주요 일간지 기자를 우선으로 선호하고 차선으로 업계지 기자를 초청한다. 기자는 아니지만, 파워블로거처럼 팔로워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미디어오디언스도 주요 초청대상이다. 그런데 업체마다 매체에 대한 선호도가 틀리다. 이런 경우 여행홍보 등이 직무와 관련이 있어도 시행령에서 정확하게 사례를 정해주지 않으면 불법일 수 있다.
비용에 상응하는 취재비나 광고비를 받는 다소 편법이 될 수 있는 트레이드오프(trade off) 방식을 통해 취재가 가능하다. 럭키드로우 및 추첨형식으로 팸투어를 진행해도 김영란법의 위법 유무를 가리기는 사실상 어렵다. 그러나 이런 대안은 공정한 기사보다는 광고주가 요청하는 내용에 최대한 충실하게 기사를 내야 하는 저널리즘을 위배하는 사태가 만연해질 수 있다. 광고주와 기존 언론사들의 유착관계는 심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한 지자체 담당자는 기자들이 김영란법에 저촉받지 않는 개인 블로거 자격으로 변모하게 될 거라는 소리가 우스갯소리로 들린다고 전해준다.
마치며
9월 28일에 시행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구체적인 시행령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그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처음으로 시행되는 것이라 초기에는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김영란법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좀 더 투명하게 발전해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김영란법의 전문은 해석에 애매한 부분도 적지 않으나, 현재의 내용만으로는 기존의 여행업계의 마케팅 체계를 무너뜨릴 만한 법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여행업계에서 걱정하는 것이 김영란법에서 예시한 ‘14가지 부정청탁 대상직무’에 연관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8조의 금품 등의 수수금지 조항이 예민하게 다가오지만, 예외규정사항을 보면 정상적인 팸투어의 진행 역시 통상적인 업무의 일환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자가 해당 법률을 판단하고 해석할 수는 없다. 지금도 정당과 각계 부처, 업종별로 개정안을 마련해달라고 청원하고 있다. 정부 및 유권해석기관이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으로 범위를 적용한다면, 지금보다는 더욱 투명하게 관광업계가 발전해 나갈 것은 분명하다. TI
권기정 기자 john@ttlnews.com
[참고자료]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전문은 아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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