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엘뉴스] 필리핀은 연간 140여만 명 한국인이 방문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외여행지 중 한 곳이다. 필리핀을 찾는 외국인 중 한국인이 가장 많다. 올해 6월 이후 필리핀으로 향하는 한국인의 발길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주요 원인은 5월 23일 선포된 계엄령이 가장 큰 원인이다.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에 계엄령이 선포됐을 때에 우리나라에선 마치 필리핀 전체에 계엄령이 선포된 것처럼 인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6월 2일 수도 마닐라에서 총격 및 방화사건이 발생하면서 필리핀 여행예약 취소율이 급증했다. 최근 계엄령 연장 발표로 8월 말에도 필리핀 관광 시장은 회복되는 속도가 상당히 더디다. 내리막길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슈 1. 연말까지 5개월 연장된 계엄령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 5월 23일 남부 민다나오 섬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령 선포기간은 60일간이다. 계엄령 선포 지역은 민다나오 지역이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세부 막탄섬, 보라카이, 보홀 지역은 해당하지 않는다.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으로 계엄령이 선포 이후 30여만 명이 넘는 피난민이 발생했고 이후로도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인다. 양측 간의 교전으로 인한 사상자가 계속 발생하자, 두데르테 대통령은 필리핀 헌법상 계엄령 기간은 60일로 제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간연장을 발의해 압도적인 표차로 의회 승인을 받아 연말까지 연장했다. 이에 반대하는 필리핀 야당은 계엄령 해제를 위한 청원을 대법원에 냈지만 7월 4일 기각됐다.
외교통상부도 필리핀 당국의 계엄령 연장 등의 상황이 민다나오 지역의 치안 불안이 지속될 수 있다고 판단해 다바오시 등에 내려진 특별여행주의보를 12월 31일까지로 연장했다.
이슈 2. 필리핀 외면하는 자유여행객
최근 필리핀 여행을 계획하는 부모의 불안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필리핀을 찾는 한국인의 상당 비중을 어린 자녀를 둔 부모가 차지한다. 항공편 이용 기준으로 4시간 20분 정도의 멀지 않은 거리, 저렴한 물가가 필리핀 여행의 장점으로 꼽는다. 여성 참여자가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살펴봐도 여행 질문에 필리핀 여행 문의보다는 베트남이나 하와이 여행문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투어가 밝힌 2017년 7월 말 8월 초 최성수기 여행객 모집 동향을 보면, 패키지 상품의 베트남의 성장률이 전년대비 34.9% 성장했으나 필리핀은 22.9% 감소했다. 모두투어는 7~8월 여름 성수기 기간의 동남아 인기 여행지를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 발표했다. 베트남은 전년대비 101.8% 성장했고 태국은 14.1% 늘었다. 반면 필리핀은 전년대비 37.3%가 줄어들며, 세 개 국가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동남아 지역의 예약자 수가 대부분 늘어났지만 필리핀은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태국 방콕과 베트남 다낭이 인기를 끌면서 상대적으로 필리핀 세부 등의 인기가 하락한 것을 알 수 있다. 자유여행 수요도 비슷한 패턴으로 움직인다고 봤을 때 필리핀의 시장은 25~30% 감소를 예상할 수 있다. 30% 감소는 현지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이슈 3. 마약전쟁·계엄령··· 필리핀 페소화 약세
지난해 6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필리핀 페소 가치는 달러대비 9.4% 하락했다. 페소화 약세로 15년 만에 경상적자를 기록했고 이에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졌다. 23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필리핀 페소는 달러당 51페소 초반대를 기록하며, 지난 11년 이래 최저수준이다. 페소화 가치는 지난해 6월 이후 9% 넘게 떨어졌다. 필리핀은 15년 만에 경상적자를 냈다. 지난 5월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23억200만 달러로, 자료 조사가 시작된 1980년 이후 최대치다. 또 연초 이후 경상수지 적자는 6억 달러를 기록했고 내년에는 16억 달러의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됐다.
선택과 집중, 필리핀 취항 항공사들
필리핀 현지의 의견은 우리가 우려하는 것과 다른 온도 차이를 보여준다. “두데르테 대통령 이후로 오히려 치안이 안정됐다”는 의견이 현지의 주된 반응이다. 유명 리조트의 대표 역시 두데르테를 지지한다는 말을 하면서 관광업이 안전한 치안으로 인해 나아질 거라는 의견을 내비쳤다. 현지 여행업에 종사하는 한인들도 문제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한국에서의 불안감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실제로 6월부터 줄어든 한국인 관광객은 호텔과 현지 업계를 어려움에 빠뜨리고 있다.
2015년 11월 한국과 필리핀은 항공기 공급좌석 확대를 합의한 바 있다. 내용에 따라, 주당 2만8500석에서 추가로 3000석(총 3만1500석/주)이 늘었고, 클락(Clark) 노선은 정부 승인 없이 운항을 자유화했다. 이는 최대 연간 163만 석의 항공좌석 공급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좌석 공급에 비해 대한항공 및 아시아나 항공의 인천- 마닐라 탑승률은 6-9월 3개월 평균 50%가 되지 않는 상황이고 저비용항공사는 저가가격정책으로 비교적 높은 탑승율을 유지했지만 이것 마저도 가격정책이 바뀐다면 어려운 상황으로 예상된다.
필리핀항공(PR)은 9월부터 10월 말까지 추석연휴를 제외한 기간에 칼리보(보라카이) 행 비행편을 운휴한다. 클락 역시 주7회 운항에서 주4회 운항으로 감편하는 등 확연히 줄어든 수요에 대처하고 있다. 그렇지만 기존 인천-마닐라 구간은 하루 2차례 A321(199석)과 A330-202(368석)을 변경 없이 운항한다. 필리핀항공은 6월 말부터 신규 취항한 보홀에 A320(156석) 기재를 단독으로 투입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감편으로 여유가 생긴 기재를 다른 중장거리 노선으로 투입하고 한국행 기재를 작은 기재로 줄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기도 한다. 또 LCC인 팔익스프레스의 코드쉐어 형태의 취항도 조심스럽게 거론하고 있다.
세부 역시 그리 녹록하지 않다. 경쟁의 격화로 수익 하락을 가져왔다. 그래서 중국 노선의 경우처럼,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은 자회사인 진에어와 에어부산, 에어서울을 통한 코드쉐어 형태로 운항할 것이라는 추측도 돌고 있다. 즉, 수익이 안 되는 노선은 과감하게 정리할 수도 있다는 복안이다.
LCC의 경우 정규 운임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닌 음료, 수화물 등의 부가서비스로 수익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라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추측이다. 세부퍼시픽(5J) 역시 인천 출발-마닐라, 세부, 칼리보 노선을 각각 하루 1회 운항하고 있다. 세부퍼시픽 역시 운임보다는 부가서비스에서 수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보라카이로 신규로 취항한 팬퍼시픽항공(8Y)의 경우 중간에 추가 비행기 확보 문제로 3달간 운휴했다가 7월 26일부터 현재 하루 1회 인천-칼리보, 주4회 무안-칼리보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팬퍼시픽항공은 총 5대의 기재 도입을 목표로 하는데, 기재 확보시 인천-칼리보 하루 2회 증편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슈 4. 중국이 필리핀으로 몰려온다
최근 필리핀은 중국시장에 눈을 돌리는 모양새다. 한 필리핀 매체의 보도에 의하면, 중국인 관광객이 필리핀 도착 10일 전에 신청할 수 있는 도착 비자 입국 제도를 시행한다. 이 의미는 한국이 차지하던 필리핀 방문 1위 자리를 중국에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할 수 있다. 중국인 관광객이 증가한 곳마다 호텔, 식당 등 여행경비가 대폭 상승한 추세를 보면, 필리핀도 곧 저렴한 여행물가 매력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이는 한국인 여행객 수도 더 줄어들 수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필리핀 가는 이유는 따로 있다
지금껏 한국인에게 필리핀이 인기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가깝고 저렴한 물가만은 아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바다, 그리고 필리핀 특유의 전통문화와 스페인, 미국 문화의 이종교배 매력이 한국인을 끌어들였다. 70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답게 풍성한 해산물 등과 관광자원도 관광지로서의 매력이 충분하다.
최근에 아이돌그룹인 방탄소년단이 필리핀 코론섬에서 진행된 화보촬영을 했다. 필리핀 코론섬은 트래블+레저(Travel+Leisure)가 꼽은 ‘세계 최고의 섬’ 중 1위로 선정된 팔라완 섬 인근에 있다. 팔라완은 청정한 화이트 비치, 풍부한 어종과 산호가 잘 보존된 해양환경, 2차 세계대전 때에 침몰한 전함을 볼 수 있는 스쿠버다이빙 포인트,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지하강 등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팔라완에 이어 보라카이도 3위를 차지했는데 필리핀은 관광자원이 무궁무진한 지역이다.
필리핀 시장이 내리막이라는 섣부른 결론은 금물이다. 필리핀 여행 시장이 정상화를 찾으려면 필리핀 정치 안정이 선행해야 한다. 정치적인 불안이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한국의 필리핀 시장에 대한 관광감소는 고착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많이 다녀온 필리핀 재방문 대신 베트남이 각광받고 있는 현실이 그 증거이다.
권기정 기자 john@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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