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엘뉴스] 대통령 선거도 끝난 데다가 코로나 사태도 정점을 찍을 거라는 소식에 괜스리 몸이 근질근질하죠? 콧바람 쏘이면서 설렁설렁 거닐고 싶은 곳, 그러면서도 아직은 사람들을 덜 마주쳐야 맘이 좀 더 편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뒷짐 한 번 지고 에헴헴~ 하며 느린 시간을 즐기며 ‘그래, 오길 잘했어’라고 칭찬할 만한 3월의 여행지로 비금도를 추천합니다. 한국관광공사나 지자체들이 정해주는 웰니스는 노노노! 그런 곳은 그야말로 인파가 몰리는 관광지일 뿐 마음 가는 대로 호젓하게 움직일 수 있는 여행지는 아니란 이야기.
조선 시대에 천주교 신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내려졌던 신유박해. 그때 유배길에 올랐던 정약용, 정약전 형제가 나주에서 유배지를 바뀌었다고 합니다. 동생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지를 정하자 형인 정약전은 오히려 더 멀리 떠나는 게 덜 위험하다며 흑산도로 갔는데요, 그 흑산도로 가기 전의 중간 기착지가 바로 비금도.
비금도는 예로부터 천일염의 고장으로 알려졌는데요, 그만큼 넓은 땅과 깨끗한 공기, 일조량이 좋다는 이야기겠죠? 그 당시에는 금처럼 비싼 소금이 동네에 휙휙 날아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비.금.도.랍니다. 이만하면 그 당시에 어느 정도로 풍요로웠을 지 짐작이 가죠?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천일염전들중 가장 크다는 태평염전보다도 더 오래 전부터 시작된 곳, 역시 이 비금도에요.
정약전이 지은 해양생물 백과사전?격인 ‘자산어보’의 서문에서 밝힌 섬이 바로 흑산도인데 자산의 ‘자’는 바로 ‘검다’라는 뜻입니다. 작년 3월에 개봉한 흑백영화 자산어보의 촬영지가 원래는 흑산도 (옛날에는 ‘자산’이라고 불리웠음)였는데 아, 글쎄, 요즘에도 빠른 배로 2시간 이상 걸리는 그 험한 망망대해로 가기에는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그냥 비금도에 눌러앉아 촬영을 했다고 합니다.
제작비로 책정된 45억이 적어서 그냥 옛 풍취도 살릴 겸 흑백촬영을 하기로 결정된 이 영화의 촬영지인 비금도에서도 주인공들이 계속 나오는 무대는 도초도입니다. 비금도에서 연육교로 넘어가면 나오는 고란마을인데요, 신안군에서 가장 넒은 평야인 고란평야도 바로 여기에 있죠. 남향이라 일조량이 많은 반원형의 시목 해수욕장도 있으니 그야말로 해질 무렵에 이 길을 걸으며 느림의 미학을 즐기면 어떨까 합니다.
자산어보 책에 등장한 해양 수산물의 종류는 무려 226종이요, 정약전의 흑산도에서 처음 접한 음식이 홍어 생물이라고 해요. 그 멀리 흑산도까지는 못가더라도 비금도, 도초도에서 맛보는 싱싱한 먹거리… 상상만해도 멋지지 않을까요?
건강에 좋다는 섬초가 가득한 섬.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4km구간의 명사십리, 봄의 왈츠 촬영지 하누넘 해수욕장, 국내 최초의 천일염전, 보리 새우 시금치국… 이 정도면 웰니스 봄나들이의 모든 조건을 갖춘 셈이죠?
그런데 비금도, 도초도 나들이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영화 자산어보의 주 촬영지이자 고요함, 잔잔함, 덤덤함이 몰려있는 도초도 발매리의 초가집입니다. 뻥 뚤린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초가집 툇마루에 앉아 잠시 멍때리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기왕이면 그 영화를 미리 본 후에 말입니다.
김홍덕 외신기자 hordon@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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