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엘뉴스] tvN 예능 프로그램 '탐나는 크루즈' 출연자들은 기항지 투어를 따내기 위한 미션에 최선을 다한다. 가끔 기준에 예외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최하위로 선택되면 크루즈 일일 승무원(크루, Crew)으로서 기항지 여행을 할 수 없기 때문. 크루즈 여행에 있어 기항지를 둘러보는 시간은 보통 8시간 내외로 짧은 만큼 강렬하다. 너그러운 소비를 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놓치기 싫은 찰나이니까.
▲부산 동구 이바구길 홈페이지(2bagu) 캡처
크루즈 여행자를 위한 투어코스는 과연 무엇일까. 크루즈 고객이 기꺼이 내려서 둘러보고 싶을 정도의 컴팩트한 루트를 고민해야 하는 까닭이다. 기항지를 대표하는 철학과 주제가 여행자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물론, 세분화된 코스로 취향에 따른 선택을 이끌어 내야 한다. 지난 14일 우리나라 해양수도로 여겨지는 부산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기항지 투어코스를 함께 걸었다. 국내외 크루즈 관련 업계 관계자들이 함께한 부산은 이전에 보았던 부산과는 참 달랐다. 우리가 잊고 있던 본질이 부산 기항지 투어의 바탕이었다.
▲ 부산 원도심 스토리 투어 안에 이바구길 코스가 있다
크루즈 여행자를 위한 부산 기항지 투어코스라는 목적은 부산관광공사(bto, Busan Tourism Organization)의 각별한 시선이었다. 부산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이 해외 경험을 통해 얻은 노하우로 크루즈 관련 업계 관계자와의 소통을 꾀한 날. 2019년 부산과 크루즈의 케미(사람 사이의 화학반응, Chemistry 에서 비롯된 유행어)가 더욱 기대되는 지점이었다.
▲ 기항지 여행코스의 가능성을 소통했던 부산 원도심 스토리투어
■ 이바구길을, 이바구 까다.
경상도 사투리로 '이바구'는 '이야기'를 뜻한다. 고로, 이바구길을 '이바구 깐다'는 건, 이야기 꽃이 피어나는 이바구길을 이야기한다는 의미. 부산 동구는 '이바구길'로 나들이해야 첫 단추를 제대로 꿰는 셈이다. 시공간을 초월한 부산의 감정을 오롯이 경험할 수 있으니까. 해방과 전쟁, 산업 부흥기를 거치며 부산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부산 동구의 스토리를 말이다.
▲ 부산관광공사 박용환 스토리텔러
이바구길 코스는 다양하다. 초량, 수정, 좌천, 호랭이, 1박2일, 올빼미 등 지역이나 특성을 고려한 루트로 다채로운 콘텐츠를 구성했다. 포털 사이트 어디에서든 '이바구길'을 검색하면 역동적인 부산의 세월로 순간 이동할 수 있다.
▲ 차이나타운 내 초량 근대역사갤러리
우린 '초량 이바구길'을 산책했다. 부산항에 도착한 크루즈 여행자들도 가깝게 누릴 수 있는 부산의 원도심. 부산 원도심 스토리텔러의 안내로 이바구길의 시간은 거꾸로 가기 시작했다. 원도심 스토리투어는 매주 토, 일 13시부터 15시까지 약 2시간 소요되는 정기투어(4명 이상 신청 시 운영)가 있으며, 투어 희망일 기준 1주 전 4명 이상 신청할 경우 주중 수시투어도 있다. 부산관광공사 사이트나 전화로 일주일 전 사전 신청해야 하며, 참가비는 무료다.
▲ 텍사스 스트리트
인천 차이나타운은 자장면이 유명하다면, 부산 차이나타운은 만두가 제맛인 사실. 부산역 맞은 편 차이나타운을 지나 키릴문자가 가득한 흡사 이태원 같은 텍사스 스트리트를 건너 도착한 곳은 (구) 백제병원. 1922년 부산 최초의 근대식 민간 종합병원으로 초량 이바구길의 시작점이다. 1층 브라운핸즈 백제 카페에 앉아 모던 걸이 되어보는 일.
▲ (구) 백제병원
코미디언 이경규, 음악인 박칼린과 같은 연예인과 정치인이 나왔다던 초량초등학교의 남다른 터에는 문학의 향기가 폴폴 배어있는 담장이 이어진다. 모노레일이 있어 각종 방송에 입소문이 났던 168 계단으로 향하는 길. 부산항에서 산복도로를 연결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한다.
▲ 초량초등학교 담장 벽화
노르웨이 베르겐에도 가파른 산 중턱에 많은 집들이 있어 주민들이 케이블카를 타며 귀가하던 기억이 떠올랐던 날. 초량 주민들의 일상이 되어버린 168 계단 모노레일은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 168 계단 모노레일
168 계단을 사뿐하게 올라 마주한 부산항에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입가를 간지럽히고, 계단 곳곳에 수줍게 박혀있는 공방과 카페들은 누군가의 아지트로 귓가를 간지럽힌다. 이바구 공작소에 아카이브 되어 있는 산복도로 사람들의 흐름을 하나씩 꺼내보는 것도 꼭 해야 할 진수. 노래 한 자락에 위안삼던 부두 노동자들의 거친 삶으로 우리의 코끝이 알싸할 테니까.
■ Peace Keepers ! UN 기념공원
'For Your Tomorrow, We Gave Our Day.' 한국전쟁에 참여한 유엔군의 안식처, 재한유엔기념공원.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로서 세계 평화와 자유의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 장병들이 잠들어 있다.
▲ UN 기념공원 추모관에서 15분 가량의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게 좋다.
우리를 비롯하여 크루즈에서 내린 미국, 터키, 캐나다, 스웨덴 등의 다국적 승객들까지 언어가 아니더라도 그저 눈빛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곳. 함께 참전한 형제의 가슴아픈 사연에서부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전사자 중 최연소(17세) 호주 병사를 추모하는 도은트 수로(Daunt Waterway)까지 헤아리기 어려운 사연들이 머문다. 매년 11월 11일 오전 11시, 전 세계가 1분간 묵념하는 부산의 아침.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을 기억해야 할 우리다.
■ 일제강점기부터 우리의 부산 근현대 스토리
▲ 문화공감 수정
아이유 뮤직비디오 '밤편지'로 알려져 감성을 덧입은 수정동 일본식 가옥(舊 정란각)은 현재 '문화공감 수정'이란 이름으로 운영되는 카페다. 1943년에 지어진 고급일식 주택으로 2007년 근대문화재로 등록된 이곳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차이나타운의 청나라 흔적이며, 피란민들의 설움이 깔린 168 계단, 일본식 가옥이 품은 일제강점기 등 개항기부터 이방인들이 모여든 부산의 운명은, 크루즈 기항지로서 꼭 알려주고 싶은 한국의 이야기였다.
■ 부산의 미래를 이야기 하다
▲ 오륙도 가원 레스토랑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이미 국제도시로서 면모를 발산하는 부산. 현대적인 미가 돋보이는 오륙도 가원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한우를 즐기는 품격있는 식사뿐만 아니라 복합 문화공간 F1963에서 캐주얼한 맛을 음미하는 것도 좋다. 특히 오륙도 가원을 가는 길목은 동백꽃이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
▲ F1963
F1963은 특수선재 기업으로 알려진 곳에서 설립한 곳으로, 고려제강이란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던 공장을 탈바꿈해 2016년 9월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된 후 복합 문화공간으로 재생된 경우다. 1963는 바로 고려제강 공장 설립 연도를 가리킨다. 조병수 건축가의 감각으로 리노베이션한 F1963은 Yes24 중고서점, 국제갤러리, 테라로사, Praha993, 뜰과 숲 원예점 등이 있다. 그중 복순도가는 현대적인 분위기에서 국내산 쌀과 전통 누룩을 이용한 발효주를 맛볼 수 있어 이목을 끈다.
▲ F1963 내 복순도가
세계인의 영화 축제가 열리는 부산 영화의 전당. 영화도 볼 수 있지만, 부산 사람들의 일상을 관람할 수 있어 더 정겨운 장소다. 브라운관으로만 보았던 스타들의 레드카펫이 깔렸던 광장의 폭을 직접 느낄 수 있으며, 4천여 석 규모의 야외극장은 개·폐막식이 열렸던 순간을 상상해볼 수 있다.
▲ 영화의 전당
알고보면 쓸모있는 현대 건축의 묘미! 영화의 전당에 숨겨진 건축 키워드, '현무암, 광장, 새 조각상, 단부지지 시스템'이다. 현무암이 사용된 석재의 질감을 느껴보는 광장 외벽과 바닥의 등고선 무늬, 부산 갈매기가 연상되는 조각상을 찾아보도록 한다.
또한 영화의 전당은 규모 6.0의 지진과 최대 풍속 초속 60m, 적설량 50cm 이상에도 견딜 수 있는 설계가 되어있는데, 빅루프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 되면 지하에 숨겨있는 보조기둥이 올라와 지붕을 떠받치는 기술을 구현한다. 외국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익히 SNS에 소문 자자한 한국 건축의 현재는 영화의 전당 외에도 수많은 부산의 빌딩숲에서 누릴 수 있는 크루즈 기항지 투어의 즐거움이다.
취재협조 = 부산광역시, 부산관광공사
부산 = 김세희 에디터 sayzib@ttl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