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강의실보다 더 강의실 같은···.
“악은 침묵을 먹고 자라지. 진실을 보고 들어도 말하지 않는다면 그게 악을 살찌우는 거야!”
생방송을 하는 기자를 인질로 잡은 피리 부는 사나이는 방송국의 마이크를 잡은 셈이었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자신이 최근에 연쇄 테러를 일으킨 장본인이라고 밝힌다. 앵커는 그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두 사람 사이에 긴박한 대화가 오간다. 테러를 통해 피리 부는 사나이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모두가 긴장하며 귀를 기울인다. 두 사람의 대화는 커뮤니케이션학 강의실에서나 들릴 법한 어려운 말들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귀에 쏙쏙 들어온다.
“이번에도 누군가를 내세우는 건 아닌가요? 당신은 지금까지 계속 자신은 숨어 있으면서 피랍노동자, 파산자, 해직기자 등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앞세우지 않았습니까? 진짜 당신이 맞다면 왜 이런 일들을 벌인 겁니까?”
“나는 그 사람들에게 기회를 준 것뿐이야.”
“기회요? 어떤 기회요?”
“공평하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
“소통요? 약자들의 분노를 이용해서 그들에게 폭탄을 주고, 총을 주고, 화염병을 들게 하는 게 소통입니까?”
“폭력이라는 것도 결국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일 뿐이야. 지금은 국가가 그걸 독점하고 있지. 시민들을 지켜준다는 핑계로. 하지만 그들이 지키는 건 가진 자들일 뿐이야. 그걸 깨달은 시민들이 얼마 되지도 않는 한 줌의 폭력을 쓰면 범죄가 돼. 그들이 정한 울타리 안에서 아무리 외치고 발버둥 쳐도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아.”
“당신이 말하는 그들은 누굽니까? 정붑니까?”
“권력자들, 가진 자들, 그리고 그들의 개들.”
“그렇다면 정부와 관료, 재벌, 경찰, 언론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들이 당신이 노리는 것….”
“그리고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
“대중들도 당신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악은 피를 먹고 자라지 않아. 침묵을 먹고 자라지. 진실에 눈과 귀를 닫고 보고 들어도 말하지 않는다면 그게 악을 살찌우는 거다.”
“당신이 말하는 진실은 무엇에 관한 겁니까?”
“이 땅의 버려진 사람들이 목 놓아 외치던 진실, 그리고 당신 같은 언론이 전하지 않고 침묵했던 진실이지.”
피리 부는 사나이는 앵커에게 다그친다. 그걸 네 입으로 말하라고. 그동안 숨겨온 진실들을 지금 생방송으로 고백하라고. 앵커는 하나씩 말한다. 앵커의 고백은 본질을 향한다.
“(…) 사실을 모두 찍었지만 상부 지시로 어디에든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그 대가로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그렇지 당신이나 주성찬이나, 그런 식으로 그 자리에 올랐지. 힘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팔아서. 네들에게 그런 일을 시킨 자들은 아무 말할 필요 없어. 너희 같은 자들이 대신 나와서 이게 최선이고 이게 진실이다 떠들어 주니까.”
무엇보다 “너희 같은 자들”이라고 지칭한 사람들, 그러니까 권력자와 재벌의 하수인이 되어 그들을 지키고자 바리게이트를 친 주구 곧 사냥개들에게로 타깃이 옮겨갈 때엔 몸서리가 칠 듯 소름이 돋는다. 기자로 살아온 시간들 속에서 나는 어쩌면 그런 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대기업의 마름으로 일하던 사람들, 권력의 시녀처럼 살던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어느 자리에선가 그렇게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모른 채 누군가의 사냥개로 전락해버렸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드라마 한 편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분량은 차고 넘치는 듯하다. 그런데 이 드라마 7회분에선 마치 쓰나미가 밀려오듯 끝 모른 채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협상팀 경위 유명화가 끼어든다. 인질이던 기자 대신 인질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게다가 유명화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13년 전 재개발현장에서 피해를 당할 때 같은 자리에 함께 있던 피해자이다. 유명화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이런 테러 방식이 옳은 것이냐고 따져 묻는다.
“그러는 당신은? 당신이야말로 죄 없는 사람들 희생시켜서 목적을 이루려는 거잖아.”
“그게 내 방식이야. 그들의 방식 그대로 갚아주는 것.”
“죄 없는 사람들이 다치는데?”
“대의를 위해, 다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하는 게 그들의 논리지. 그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려주려는 거야.”
피리 부는 사나이는 이제 ‘대의’를 말하는 사람들, 그래서 소수의 희생을 불가피한 양 눈감는 사람들의 방식에 대하여 심판하려고 한다. ‘대의’라는 말은 여기서 양날의 검 같다. 의를 다치게 하면서 의를 세우는 식이다. 여기서 ‘대의’가 의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한쪽 날의 검에 다쳐야 할 대상이 ‘나 자신’이어야 한다. 마치 한 생명의 가치를 천하보다 소중히 여기는 신이, 자신을 희생 제물 삼아 인류 구원의 아침을 열어가듯이.
그러나 우리는 ‘대의’를 말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한 번도 그 대의로써 자신을 희생 제물 삼는 것을 보지 못했다. 혁명을 말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한 이들조차 스스로는 제물 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대의는 허구였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지금, 그들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불가피한 희생자가 되어 보라며 총구를 들이댄 셈이다.
요즘 tvN 드라마는 미친 존재감으로 질주해오고 있다. 책 몇 권이 줄 수 없는, 엄청난 메시지들을, 드라마라는 장르로써, 대체 그 힘의 한계를 측정할 수도 없는 방식으로 들이댄다.
박명철 칼럼니스트
▶박명철 칼럼니스트는…
책,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을 소재로 하여 밥을 짓듯 글을 짓는 문화콘텐츠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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