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엘TV]당혹스럽고 기이한 상상의 세계를 구현하는 작가 이피 개인전
현생누대 신생대 이피세 전
2019-02-02 19:44:11 , 수정 : 2019-02-02 19:47:49 | 권기정 기자

[티티엘뉴스] 다양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특하면서도 때로는 당혹스럽고 기이한 상상의 세계를 담은 작품으로 주목 받는 이피 작가(본명 이휘재, 1981년생) 의 개인전을 소개한다.

 

<현생누대 신생대 이피세>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일상적 삶 가운데 맞닥뜨린 정치ㆍ사회ㆍ경제의 여러 현상들, 관계와 구조 등에 대한 감정과 기억들을 기이한 생물종의 모습으로 형상화시킨 작업들을 선보인다. '바닥까지비참해진희망인',  '내속에사는나를다꺼내놓고춤추는오늘의 나', '백개의다른시간을살아가느라울고싶은여자',  '지루한시간의감옥에서붓을갖게된오징어'등의 제목을 갖고 있는 ‘현생누대 신생대 이피세 대백과’ 시리즈의 작품은 개인의 삶에서 늘 부딪히는 것들이 머리 속에서 개념화되기 전의 그 자체, 원형적 경험에 관한 서사를 기록하고있다. (제목에 단어 사이의 띄어쓰기가 없는 것은 작가의 의도임)

 

 마치 수억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연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서로 소통하면서 그 모습을 달리해가고 그것이 후에 자연사적 창조의 흔적으로 기록되듯, 이피세 시리즈는 자신의 일상 속순간 순간의 감정의 변화와 비언어적 기억을 포함한 생의 총체적 경험을 자연사적 창조의 흔적에 비유한 작업이다.
 

 

▲ 작가 이피, 작품 나의 나방 (Acrylic on Korean Paper, 200 x150cm, 2009)

 

이피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첫 개인전 <눈, 코, 입을 찾아 떠난 사람>展(갤러리 바탕골, 1997)으로 화제를 모았으며,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아트링크에서의 <나의 서유기>展(2010)을 시작으로 <이피의 진기한 캐비닛>展(2012), <내 얼굴의 전세계>展(2014), <당신은 내 파이프와 구멍들을 사랑합니까?>展(2017), <피미니즘 프노시즘>展(2018), <여-불천위제례(女-不遷位祭禮)>展(2018) 등, 전시의 타이틀 만큼이나 문학적인 상상력과 환상이 가득 담긴 작품들을 통해 한 예술가가 자신을 둘러싼 이 세계를 어떻게 온 신체의 감각과 경험 등을 통해 인식, 기억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해 온 작가다.

 

 

■ 영상인터뷰

 

 

작가 이피의 작품세계의 가장 큰 특징은 “내가 생각한 상상들은 혈관 속을 흐르는 피처럼 그 이미지들이 흐른다.” 라는 작가의 말처럼 순간 순간의 자기감응, 감각과 감정 등이 현실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상상의 서사가 펼쳐진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거미를 닮았으나 실제 거미라고 할 수 없는, 자연계의 여러 동식물의 부분들이 사람의 신체와 얽혀있는 듯한 이피의 작품은 나와 세계, 인간과 자연 및 우주, 물질과 정신 등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지는 만다라와 같은 세계를 표현한다.

 

작가 이피는 '나는 보이는 몸으로서의 하나의 전체로서의 장소이지만 내 몸에는 복잡다단한 시간과 사건, 인물, 관계, 사회구조가 새겨져 있다. 나는 그런 장소의 몸을 구축한다. 나는 하나의 몸이지만 내 몸에는 내가 아닌 수천의 몸이 기생한다. 그들은 나의 감정이 되고, 감각이 되고, 사유가 되었다. 내가 느끼고, 듣고, 본다는 것은 나의 몸에 타자들을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그들은 나에게 와서 하나의 감각이 되었지만 감각되기 이전이나 이후에도 그들은 나처럼 하나의 독립적인 주체였고, 지금도 개별적 주체이다. 그들은 물질성과 주관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나에게 부딪힘으로 써, 나에게 옴으로써, 나에게 와서 느낌, 감정, 사유가 되었다. ' 라고 이야기 한다.

 

 

 

작가노트 1. 『현생누대 신생대 이피세 자연사 박물관 프로젝트』 (2019)

 

나는 <현생누대 신생대 이피세 자연사 박물관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나는 미술적 생물들의 박물관을 구상한다. 미술관 벽 전면에 가득 붙거나 전시된, 내가 발명한 생물들의 자연사 박물관을 상상한다.


 
내 조각 작업은 일종의 ‘변신(metamorphosis)’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심해 생물에 관하여서는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는데, 이 지식은 단순히 지식에 머물지 않고 나의 손을 타고 ’세상에 없는 생물종‘을 탄생시키는데 기여한다. 이를테면 ’내가 품은 오늘의 정치사회적 분노‘를 가시화, 입체화한다면 그것은 어떤 생물종으로 ’변신‘시킬 수 있는가? 그것은 어쩌면 곤충 얼굴에 대통령의 머리 모양을 가진, 다리 12개인 심해생물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바슐라르에 의하면 상상력의 최초 기능은 짐승의 모습을 띠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나’라는 한 작가의 폐쇄된 마음에서 탈출하여 지금 막 대기권으로 여행을 시작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방랑자, 어떤 생물의 모습일 것이다. 이 생물은 상상동물이라기보다는 정치사회경제의 모습으로 나의 삶의 현상에 닥쳐온 어떤 시간의 단면도이며 그것의 의인화(personification), 동물화(anthropomorphize) 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나만의 생물 대백과, 자연사 박물관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나는 그것에 대해 <현생누대 신생계 이피세 대백과>라고 이름 붙인다. 일상적 시간의 진화의 고비마다에서 살아남아 나의 감정이 되고 사유가 되며 언어가 된 형상을 조각 설치한다.

 

조각 설치 작품에서 내가 쓰는 재료, 형상은 모두 내 손으로 주무를 수 있는, 여성적 노동 행위로 가능한 소산이다. 마치 여성들이 가사 노동으로 음식을 만들 듯, 제품을 만들 듯 나는 내 조각 작품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내 감각, 내 스토리, 내 방문 기록들은 내 손의 노동에 의해 다양한 생물종으로 다시 탄생된다.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았으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생물들이 내 손을 타고 탄생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면 ‘고백한날의침샘에사는물고기’, ‘도널드트럼프의혀는억만개’, ‘지루한시간의감옥에서인두(人頭)를갇게된오징어’와 같은 다양한 종들이 형상을 기다린다. 나는 앞으로도 <현생누대 신생계 이피세>의 다양한 종들을 조각해 나가도록 하겠다. 어쩌면 그것은 나, 이피의 미술생물학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나는 그 다양한 생물종들을 자연사박물관에서처럼 미술관에서 전시되도록 하고 싶다.

 

 

■ 주요 전시 작품들

 

▲ 난자의 난자 (Egg of Ego, 2018)

 

 

▲ 내몸을 바꾸기 위한 신체진열대. 2017

 

 

▲ 작가 이피, 감자인류, 2015

 

 

▲ 작가 이피, 나팔관 심포니, 2016

 

 

▲ 촛불을 든 백만개의 손을 위한 만다라 프로젝트, 2017

 

 

▲ 작가 이피, 웅녀 The First Woman of Korea, Mixed Media, 220x220x198cm,  2009

 

 

▲ 승천하는 것은 냄새가 난다, 50x50x132cm, 건조오징어, 2010

 

 

▲ 현생누대 신생대 이피세 대백과: 19명의성인남녀를싣고가는거미소녀(동물계, 절지동물문, 거미강, 거미목, 염낭거미과) Mixed Media, 63x63x17cm, 2017

 

 

▲ 현생누대 신생대 이피세-지루한시간의감옥에서붓을갖게된오징어

 

 

 

■ 전시

이피 개인전 – 현생누대 신생대 이피세展

롯데갤러리 잠실 에비뉴엘 아트홀(2.1~2.24),

롯데갤러리 영등포점(3.1~3.31)

10:30 ~ 19:00, 백화점 운영시간과 동일, 휴점일 휴관

 

 

■  작가 이피 약력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피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SAC)에서 예술 분야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작품의 형태는 평면에서 입체로 확장되며 다양한 설치미술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미국 유학 중에는 Voom Network HD 텔레비전의 시즌 2에 출연한 바 있으며, 이후 국내 귀국 후,  2010년 아트링크에서 연 '나의 서유기'전을 시작으로 수차례의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권기정 기자 john@ttlnews.com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