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엘뉴스] 낯선 사람에게 명함을 내밀자 익숙한 질문이 들어왔다. 갓 서른에 접어든 여성에게 불쑥 던진 한 마디. 상남자 같은 스타일을 원한다면 노르웨이는 어떨까요? 순간 그녀와 나의 눈빛은 피요르드처럼 반짝거렸다.
▲ 뤼세 피요르드 프레이케스톨렌 펄핏 락 선셋
(Preikestolen,The Pulpit Rock by the Lysefjord) © fjordnorway, Paul Edmundson.)
김세희 에디터 sayzib@ttlnews.com
협조 - 노르웨이 관광청 © visitnorway
▲ 베르겐으로 향하는 횡단열차(NSB) 내부 / 넛쉘 투어(베르겐 왕복)를 위한 베르겐 역의 아침
오슬로에서 베르겐으로 향하는 횡단열차(NSB)에 올랐다. 7시간 남짓 걸리는 기차. 인생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기차를 타본 적 있었는지. 삶은 달걀과 사이다는 아니었지만, 간단한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며 맞은 편에 앉은 중국인 부부와 이야기도 나누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평온하던 공기가 조금씩 달아올랐다. 어느 달력 사진과도 같은 풍경 틈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하이킹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속삭였다. 수많은 역 이름 하나하나를 간직하고 싶어 카메라를 연신 괴롭혔다.
▲ 오슬로 중앙역 주변 / 베르겐 역 주변
지금은 오슬로(Oslo)가 수도이지만 약 200년간 노르웨이의 중심지로 나라를 다스렸던 곳. 발트해와 북해 전체를 주름잡은 해상무역의 거점으로 명성을 떨친 베르겐(Bergen)에 도착했다. 숙소를 찾아 걸어가던 길. 자전거를 탄 어느 청년이 나에게 다가왔다. 가방끈을 꼭 잡고는 걸음을 멈췄다. 눈이 마주치자 한국말을 하는 노르웨이 사람. 이게 무슨 일인가. 아마도 길을 못찾아 한국말을 연신 내뱉던 나의 목소리를 듣고는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온 모양이었다. 용산과 홍대, 소주도 잘 아는 이 사람. 이 먼 곳까지 왔냐며 인사를 건넸다. 한국 다시 가고싶다며 말하던 그는 고맙게도 숙소 방향까지 알려주고 떠났다.
▲ 스테가스타인(Stegastein) 전망대에서 바라본 송네 피요르드
(View from Stegastein, Sogne Fjord © fjordnorway, Sverre Hjørnevik)
아침 일찍 송네(Sogne fjord)로 향했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피요르드. 노르웨이 인 어 넛쉘(Norway in a Nutshell)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편리하게 감상할 수 있다. 베르겐 왕복, 오슬로-베르겐 등 코스도 다양해서 여행 루트에 따라 선택하는 재미가 있다. 베르겐에서 기차를 타고 페리와 산악열차를 타는 투어가 아무래도 인기가 많다.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상쾌할 테지만, 거침없는 노르웨이 자연에 안기고 싶다면 주변 지역의 액티비티를 즐기거나 하이킹을 하는 것도 좋다. 스위스 융프라우를 바라보는 패러글라이딩을 했으니, 훗날 노르웨이에서 해보는 게 나의 버킷리스트다.
노르웨이 4대 피요르드. 송네(Songne), 하르당에르(Hardanger), 게이랑에르(Geiranger), 뤼세(Lyse). 지금으로부터 까마득하게 오래 전부터 시작되어 1만년 전에 끝난 빙하기에 생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피요르드라 그런지 발음도 꽤 선사시대스러운 건 나뿐일까.
▲ 게이랑에르 피요르드 모습과 달스니바(Dalsnibba) 전망대(5월부터 다시 개장) © visitnorway
게이랑에르는 험준하기로 소문난 63번 도로 ‘골든 루트’와 묶어 하루 일정으로 사랑받는 곳이다. 다른 피요르드보다 접근성이 조금 어렵지만 한정된 기간에 즐길 수 있는 특징 때문에 여행자의 마음을 흔든다. 게이랑에르에는 오래된 보트 창고를 개보수해서 탈바꿈한 초콜릿가게가 있는데 푸근한 시골 정경의 목조 건물로 초록빛 잔디와 보랏빛 꽃으로 뒤덮혀있다. 유람선을 본떠 만든 다양한 맛의 노르웨이 초콜릿도 맛보는 건 어떨까.
▲ 트롤퉁가(Trolltunga © visitnorway) / 하르당에르 피요르드 정경(Ulvik in Hardanger© fjordnorway, Robin Strand)
한국인에게 인증샷 스폿으로 잘 알려진 트롤퉁가(Trolltunga). 하르당에르에서 만날 수 있다. 노르웨이에서 두 번째로 긴 피요르드로, 해발 1000m 높이의 정상에서 하르당에르를 향해 혀처럼 뻗은 바위, 트롤퉁가(트롤의 혀)를 올라가려면 거리(22km)도 길고 난이도도 높으니 미리 계획을 잘 짜야 한다. 8~12시간 정도 소요(왕복)되며, 등산장비는 필수. 오따(Odda)에서 1박 이상 하는 걸 추천한다. 하르당에르 울빅(Ulvik)은 목가적인 농촌 정경이 있어 평화롭다.
▲ 프레이케스톨렌 펄핏 락과 뤼세 피요르드 정경(Preikestolen, The Pulpit Rock in Lyse & Lysevegen © fjordnorway, Paul Edmundson)
뤼세는 비교적 아담한 규모의 피요르드다. 스타방게르(Stavanger) 시내를 거점으로 이동 방법도 간단한 편이다. 뤼세 피요르드의 간판스타, 프레이케스톨렌(Preikestolen)에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은 상남자스러운 노르웨이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 베르겐의 노을
베르겐을 떠나는 날, 플뢰옌 산 등산열차(Fløibanen)를 탔다. 10분 정도 오르자 눈앞에 펼쳐진 베르겐 시내의 일몰. 베르겐과 도저히 헤어질 용기가 나지 않아 어둠이 내려앉은 후에도 한참동안 서성거렸다. 그저 다듬어지지 않은 그대로. 천상 노르웨이. 피요르드도 노을도 툭툭 던져주는 노르웨이에게 이렇게 쉽게 빠질 줄은. 못 다한 말이 많은 노르웨이의 마음을 안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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